잠이 들기 전, 어김 없이 이런 생각이 저를 찾아옵니다.
‘왜 그랬을까?’
‘나 오늘 제대로 살았나?’
회사도, 아이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정신없이 지나간 것만 같습니다.
그 하루를 살아내며 미처 뒤돌아볼 틈도 없었는데 웬일인지 잠을 청하면 마음이 자꾸만 나를 평가하려 듭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런 평가의 질문 대신 다른 질문을 저에게 건넵니다.
‘오늘 나는 무엇을 지키고 싶었나?’
이 질문은 묘하게도 하루의 초점을 다시 정리해줍니다.
잘했는지를 평가하는 질문이 아니라 무엇을 지키고 있었는지를 묻는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나는 오늘 하루를 향해 조금 더 부드러운 시선을 갖게 됩니다.
나를 채근하는 하루 속에서도, 분명 무언가를 지키고 있었을 겁니다.
워킹맘의 하루는 여러 사람의 역할을 갈아입는 시간으로 이루어집니다.
아침엔 전투적으로 준비하는 엄마, 회사 문을 지나면 집중해야 하는 직장인, 밤엔 다시 아이 옆에 앉아 마음을 다독이는 양육자이자 집안일까지 해냅니다.
이 많은 전환 속에서 지친 건 나인데, 정작 나를 평가하는 기준은 더 엄격해집니다.
‘왜 아이를 또 재촉했지?’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아도 됐을텐데.’
‘오늘 이 업무를 좀 더 해냈어야 했는데.’
‘팀원들 업무를 더 봐주지 못했네.’
하루의 빈칸만 들여다보며 나를 몰아붙입니다.
하지만 아까의 그 질문을 던져봅니다.
‘나는 오늘 무엇을 지키려고 했더라?’
이렇게 되묻는 순간, 하루의 결이 달라집니다.
'아이를 재촉했지만, 사실 아이가 스스로 준비하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지.'
'업무를 예상보다 해내지 못했지만, 해낸 업무는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워킹맘의 하루에는 늘 지켜낸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요.
이렇게 하루를 살리는 질문은 곧 나를 살리는 질문이 됩니다.
자기돌봄은 거창한 휴식이나 큰 변화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 하나에서도 시작될 수 있습니다.
그 질문은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질문이 아니라, 나의 하루를 바라볼 수 있는 질문이어야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오늘도 너무 많은 것들 사이에서 무언가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버티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걸 인정하는 순간, ‘실패한 하루’는 ‘견디고 지켜낸 하루’로 바뀝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생각보다 큰 힘을 줍니다.
다음 날을 조금 더 부드럽게 맞이할 수 있는 힘,
스스로를 몰아붙이지 않을 힘,
나를 다시 중심에 세우는 힘.
삶이 빠르게 흘러갈수록, 우리는 자기 평가에는 익숙해지고 자기 확인에는 서툴러집니다.
‘나는 무엇을 잘못했는가’에만 민감해지고, ‘나는 무엇을 지켜냈는가’는 묻지 못한 채로 지나갑니다.
하지만 이 질문 하나가 조금씩 나를 바꿉니다.
오늘의 나는 무엇을 지키고 싶었는지,
내가 선택한 우선순위는 무엇이었는지,
내 마음은 무엇을 향해 있었는지.
이걸 알게 되면, 우리는 더 이상 하루를 흘려보내지 않습니다.
하루를 살아낸 주체가 됩니다.
모든 책임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삶 속에서 우리는 자주 ‘충분하다’는 감각을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오늘 하루가 끝나기 전에 단 하나의 질문을 부드럽게 건네고 싶습니다.
‘나는 오늘 무엇을 지키고 싶었는가’
이 질문은 평가가 아니라 회복을 위한 질문입니다.
자책이 아니라 인정에서 시작되는 질문입니다.
그리고 오늘도, 어쩌면 아주 중요한 무언가를 지켜냈을 겁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오늘 충분히 잘 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