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의 가치를 높이는 법
넷플릭스에서‘Selling sunset’이라는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았다.
여주들은 모두 금발의 바비와 같은 얼굴과 몸매를 갖고 있다. 그녀들은 Oppenheim이라는 부동산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 부동산 에이전트들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회사의 사장들은 머리가 벗어진 키 작은 쌍둥이 형제들이다. 그녀들이 파는 집은 미국에서도 부촌에 위치한 최고가의 집들이다. Oppenheim이라는 부동산 회사에서 일어나는 직원들 간의 사소한 트러블부터, 직원들의 패션과 메이크업, 미국에 얼마나 다양한 형태의 집이 있는지, 얼마나 럭셔리 해 질 수 있는지를 보는 재미가 있다. 아름다운 부동산 언니들이 파는 집들을 소개할 때면 항상 버드 아이뷰에서 전방위 적 샷을 보여주었는데, 단 하나의 집도 같은 집이 없었다. 구조, 방의 구성, 수영장, 가든, 인테리어 스타일링 등에서 단 하나의 유사함도 찾을 수 없었다. 물론 이런 드라마의 연출을 위해서라면 당연히 더욱 전 세계에서 가장 럭셔리한 집들 위주로 촬영을 했겠지만, 이렇게 다이내믹하고 색다른 공간이 많이 있다는 것이 참 부러웠다. 이 드라마의 제목은 Selling sunset이다. 물리적인 집을 거래하기 위한 셀링포인트를 비유적이지만 노을과 같은 현상을 거래의 가치로 만들어버린 이런 창의적인 타이틀에서 엿볼 수 있듯 에피소드 하나하나에 나오는 집들은 단순히 잘 지은 집이 아닌 주변의 컨택스트와 어우러지며 각각의 집이 뿜어내는 가치를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 공인중개사는 예전에는 복덕방이라고 불리기도 했었고, 부동산 중개업소라고 부르는데 동네마다 터 잡은 지 오래된 터줏대감급의 개인 부동산중개업소가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동네 발전 상황에 따라 새로운 개인 부동산중개업소도 다수 생겼다가 없어지고는 한다. 특이한 점은 앞서 이야기 한 미국의 TV 프로그램에 나오는 부동산 거래 시스템뿐만 아니라, 실제 경험해본 호주나 뉴질랜드의 부동산 거래는 보통 기업형 부동산 회사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한국의 주거는 ‘개인’ 중개사를 통해 한다는 점이었다. 그 점이 특이하게 생각되었고, 히스토리를 찾아보니 이러했다.
'1392년, 한성을 새 도읍으로 정한 조선왕조는 타지에 살던 관료와 상인들을 이주시키고 집 지을 땅을 차등 있게 나누어 주었다. 땅은 국유였고 집만 사유였다. 조선시대 서울은 새로 벼슬자리를 얻어 상경한 사람들과 관직을 잃고 낙향하는 사람들이 늘 오가는 도시가 되었다. 상경한 사람들에게 살 집을 찾아주는 사람을 우리말로 집 주릅, 한자어로 가쾌 (家儈)라고 했는데 보통 통수(민가 조직인 통의 우두머리)가 겸했다고 한다. 최초의 부동산 중개 관련 법령이라 할 수 있는 객주 거간 규칙이 제정되어 가쾌와 집 주릅에게 적용,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조선 후기 서울은 인구가 늘어나고 경화 세족이 관직을 세습함에 따라 집을 사고파는 일이 늘어났다. 가옥 매매를 알선하는 곳을 복덕방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도 19세기부터로 추정된다. 복은 땅이 주는 것이고, 덕은 이웃이 베푸는 것이라고 해서 집 값도 그 집이 지닌 스토리에 크게 좌우되었다고 한다.'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복덕방
집 값도 그 집이 지닌 스토리에 크게 좌우되었다는 마지막 문장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한국의 복덕방은 매매하는 가옥을 개개인에게 맞추어 다시 포장하고 스토리텔링을 하는 능력이 굉장히 컸을 것이다. 삶의 터전을 잡기 위해 있고 그 장소의 스토리에 의지를 많이 했을 테니 그 누구보다 동네 터줏대감이 믿음직스럽지 않았을까 싶다. 건설사들이 아파트 가치를 높이기 위해 아파트의 이름과 스토리텔링에 많은 비용을 들이는 것도 유사한 맥락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