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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어온더문 Mar 05. 2021

우리나라의 간판에 대한 단상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왔을 때 우리 아버지는 몇 년 더 일찍 들어오셔서 사업을 하시면서 일산에 터를 잡으셨다. 중1에 떠나서 대학 들어갈 때까지 한 번도 안 와본 한국을 그때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보내주셨다. 일산 집에 가서 방학을 보냈는데, 일산은 신도시였기 때문에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여 만든 곳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일산의 그리드 방식의 도시 계획도 그렇지만 블록마다 있는 네모 박스의 상가와 그 상가들에 부착되어있는 건물의 벽이 안보일정도로 붙어있는 파나플렉스의 간판들이 정말로 충격적이었다. 이 수많은 색깔들과 글자들 중에서 어떤 내용 하나도 읽히지 않았고, 어디에다 시선을 집중해야 할지 몰랐다. 몇 년 후 그런 부분에 있어서 정부나 도시도 문제점을 화두로 어느 지역들은 지역별 간판 조례라는 것을 만들었는데 사견이지만 참으로 비현실적이고 비효율적이었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건물에 입주한 수십 개의 입주사를 배려한답시고 동일한 사이즈의 글자 크기로, 어느 위치에 어떻게 부착해야 하고 가로와 세로 폭은 어느 기준을 넘지 말아야 하며 어떤 재질로 만들어야 하는지, 기업명과 전화번호 등은 어떻게 표기해야 하는지 등 상당한 디테일을 내세운 간판 조례였는데 이 교체된 간판들은 여전히 눈을 아프게 했다.


시선을 어디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

공간 관련 업무를 하며 업무차 유럽 출장을 가면 항상 감탄했던 부분 중의 하나가 사이니지였는데, 굉장히 커머셜 한 회사도 건축에 형형색색의 발광 사인은 붙이지 않았다. 건축에 걸맞고 업을 잘 표현할 수 있는 간판을 내걸었고 도시 전체적 맥락 속에서 하나하나의 간판은 독창적이면서 건축과 같은 보이스를 내었다. 절제되었고 튀지 않지만 명확한 아이덴티티가 있는 간단명료한 사이니지들… 그런 것은 단순히 어떤 엄격한 규제 때문이었을까? 공급자의 장인정신이나 미적 감각, 수요자가 공급자에 대한 전문성 인정 그리고 배려, 지자체와 국가 다 같이 협심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우리나라에서도 옛적부터 집에 걸어두는 현판, 상점이나 주점 등에서 천이나 등을 달아서 장소에 대한 표식을 했다고 한다. 간판이라는 의미 그대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910년쯤인데 하얀색 목판에다가 단색으로 무엇을 파는지, 무엇을 하는 곳인지 글씨를 썼다. 그러다가 차츰 상호뿐만 아니라 간단한 그림도 생겨났다고 한다. 그 후 간판은 금속으로 된 표면에다 유약을 발라서 만든 법랑 간판을 주로 사용했다고 한다. 주로 강판이나 주철, 철합금, 구리, 알루미늄을 활용하여 내구성도 좋고 색채도 잘 나와서 밖에 비치하기 좋았다고 하는데 예전 법랑 간판을 보면 색감도 훌륭하고 심미성도 뛰어나다.  

도시 경관 정비를 위해 꼭 획일적인 규칙을 적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업의 특징을 살리면서 도시경관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은 조화롭게 개성을 살릴 수 있도록 제한뿐만 아니라 자율도를 주는 것에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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