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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룡 Apr 06. 2019

가파도 피크닉

가파도는 제주도 남서쪽 모슬포와 최남단 섬 마라도 사이에 있는 작은 섬이다. 모슬포 운진항에서 약 5Km 거리로 배를 타고 10여분이면 닿을 수 있다. 위에서 보면 가오리를 닮았고 옆에서 보면 구름 하나 없이 평평한 섬. 

섬을 가로지르며 푸른 청보리를 눈에 가득 담을 수 있고, 섬 가장자리를 크게 돌아도 두 시간이면 충분히 바다를 느낄 수 있다. 


내가 가파도를 처음 만난 것은 3년 전 4월, 그러니까 2016년 4월 가파도 청보리 축제 때였다. 섬 입구에서 80년 동안 단 한 번도 섬을 나가지 않았던 할머니께서 가이드처럼 안내를 해주셨던 곳에는 현대카드에서 만든 건물이 세워져 있었다. 투박하게 포장되었던 청보리 차, 청보리 가루 등은 없어지고 고급스럽게 포장된 것들이 놓여있었다. 괜히 이곳이 낯설었다. 

2016년 4월, 가파도

청보리 구경을 뒤로한 채 부랴부랴 섬을 가로질러 식당으로 향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마라도처럼 가파도에도 짜장면집이 가득했다. 우리의 목적은 짜장면이 아니었다. 밥을 먹어야지! 

짜장면집 사이에 '용궁 정식'이 눈에 보인다. 우리는 이 정식을 먹으려고 아침부터 굶었다. 

정식 3인 / 누들의 카메라

여러 메뉴들이 있었지만, 점심에는 정식 말고는 선택권이 없어 보였다. 정식에 올라가는 옥돔구이는 인원수에 따라서 크기가 정해지는 듯했다. 우리는 3인을 주문해서 조금 큰 옥돔구이를 만날 수 있었다. 제주도에서 2년 동안 일을 하면서도 처음 보는 반찬들이 있었다. 젓갈도 생소해서 맛을 보는데 무엇으로 만든 것인지 알기 어려웠다. 반찬은 모두 맛있었다. 작은 게 튀김은 바삭하면서도 고소한 게 맛이 싱싱하게 느껴졌다. 나물 무침들도 개운한 맛이었고 소라 등을 무친 반찬들도 맛이 좋았다. 국으로는 몸국이 나왔는데, 오랜만에 맛보니 속이 든든하고 좋았다. 반찬의 이름이나 재료의 설명이 가게 한편에 적혀 있었다면 좋았을 뻔했다. 반찬이 많아서 손님 응대로 바쁜 가게로 물어볼 겨를이 없었다. 공깃밥을 추가하는 테이블도 많았다. 


2019년 가파도 / 누들의 뒷모습

흐린 날씨에도 미세먼지가 없어서 맑았다. 온통 푸릇푸릇한 청보리로 가득한 돌담길을 따라 걸으며 적절한 장소를 찾고 있었다. 우리들의 목적은 '피크닉'이었다. 살짝 무겁지만 들고 다니는 동안에도 기분이 좋았다.


피크닉 세트 / 데일리제주

평평한 바닥에 자리를 깔고 미리 내려둔 커피를 텀블러에 담아 마셨다. 쓰레기를 최소화하기 위해 용기에 간식을 담았다. 생화보다 더 예쁜 조화 꽃이 색감을 자극한다. 



가파도와 너무 잘 어울렸다. 관광객이 많지 않아서 더 좋았다. 한적한 섬에서 즐기는 피크닉. 티타임과 함께 가파도의 푸른 색감을 두 눈에 담으며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꺼내었다.


피크닉을 준비하는 혜룡의 뒷모습

피크닉 세트는 서귀포에서 빌렸다. 데일리제주에서 다양한 구성의 아이템으로 피크닉 세트를 빌릴 수 있다. 커피는 대표님이 직접 내려주셨다. 온도까지 체크해서 내려주신 커피가 아주 훌륭했다. 바람이 차서 쌀쌀한데 따뜻한 마음으로 피크닉을 즐길 수 있었다. 


가파도에 유채꽃이 가득 피었다. 온통 노랗고 초록빛으로 가득했다. 한참을 유채꽃 사이에서 놀았다. 바람에 날리는 비눗방울 속에 유채꽃이 담겼다.


2019. 가파도 청보리 / 누들의 카메라


가파도 청보리가 파도처럼 물결을 이루었다. 바람에 일렁이는 사르륵사르륵 - 청보리 소리가 참 맑았다. 청보리와 바다 너머로 산방산이 보인다. 구름에 가려진 한라산도 보인다. 구름이 없었다면 마라도가 잘 보였을 텐데, 이날은 마라도를 찾지 못했다.


무척이나 여유롭고 편하게 가파도를 즐겼다. 한적하고 자연이 함께라서 정말 섬다운 섬을 여행한 기분이었다. 빌딩 숲을 벗어나 탁 트인 자연과 함께하니 저절로 힐링이 되었다. 가끔은 이렇게 멍 때리고 싶다. 


출근길 지옥철에서 사람 사이에 끼여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감한다. 

일을 시작할 때에는 온정일 네모난 컴퓨터 화면과 서류를 바라본다. 

사람을 바라볼 때에는 긴장하고 날이 섰다. 

뿌연 매연과 시끄러운 소리들로 둘러싸인 도시는 이어폰으로 귀를 틀어막고 눈을 감아도 피곤하다. 

그런 시달림 속에서 찾은 평화. 가파도에서는 한참 멍 때리며 나를 충전하고 재부팅할 시간을 준다. 

끝은 어디일까? 눈앞에 펼쳐진 푸른 청보리와 바다와 하늘. 

바람과 청보리와 파도와 새의 소리들. 

사람을 경계하지 않아서 다가오는 고양이들. 

구름이 지나간 자리에 나를 비춰주는 따뜻한 햇살. 

깊게 마시고 내쉬어보는 나의 숨.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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