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우울증이 심해지기 시작한 것은 엄마의 구직 활동이 중단되면서 부터였다. 주민번호 앞 숫자 '60'이 적힌 이력서는 통과되기 어려웠다. 사람이 일을 갑자기 멈추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매일 하던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기쁜 일일까, 슬픈 일일까?
엄마는 더 이상 생계를 위해 일하지 않아도 된다. 두 딸은 사회인으로서 부족함 없이 잘살고 있다. 꼬박꼬박 부모님께 용돈을 드릴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엄마는 아직 불안했다. 아직 갚아야 할 빚이 있었고, 우리 이름의 집이 없었다. 엄마는 아직 일을 더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집에만 있으니 지루하고 불안하다고 하셨다.
나는 이제 엄마가 편하게 쉬었으면 좋겠다. 엄마는 갑상선 항진증으로 매일 정해진 시간에 약을 먹고 아침마다 혈압과 몸무게를 체크한다. 관절이 약하고 허리 디스크가 있어서 무리한 움직임은 금물이다. 그동안 고생한 몸을 생각해서 이제는 집에서 쉬어야 할 때. 문화생활도 하고, 친구들도 만나고, 여행도 다니며 엄마를 위한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 나는 엄마에게 이런저런 활동을 권했다. 문화센터나 구민센터, 원데이 클래스나 헬스 처럼 사람도 만나고 활동도 할 수 있는 것들로 엄마의 취미가 생기길 바랐다. 엄마는 모두 거절했다. 일만 하느라 친구도 없고 문화센터나 구민센터에는 더 나이 든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과 함께하면 정말 할머니가 되는 것 같아서 싫다고 했다. 뭐하러 비싼 돈으로 배우러 다니냐고, 그 돈 아껴서 저축이나 하라고 잔소리를 했다. 엄마는 집안일을 제외하고 매일 TV를 본다. 유일한 취미활동은 영화 채널에서 방영되는 무료 영화 보기. 외부 활동은 마트에 장 보러 나가는 것과 함께 살고있는 반려견 산책이 전부였다. 그렇게 1년, 2년이 지나면서 엄마의 건강은 좋아지지 않았고, 나는 그런 엄가가 걱정되었다.
엄마는 집에만 있으니 더 우울해지는 것 같다며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해 일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오히려 우리 엄마의 요양보호가 필요해 보였는데 말이다. 하지만 집에서 우울하게 지내는 엄마가 나름대로 즐거운 일을 찾은 것 같아서 말릴 수 없었다. 그런데, 요양보호를 다녀온 엄마는 날이 갈수록 표정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생각처럼 이상적인 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요양보호 신청 및 보호사 연결 시스템에도 문제가 있었고, 가족들의 감시와 같은 시선은 부담이 되었다. 하루는 어르신을 목욕시키다가 엄마 혼자 힘으로는 어려워서 균형을 잃고 넘어져 다칠 뻔한 일이 있었다. 가까스로 위기는 면했고 어르신은 멀쩡하셨지만, 엄마의 허리 디스크가 심해져서 고액의 치료와 함께 요양을 하게 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요양보호사 일을 관두셨다. 그리고 엄마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어 다시 우울하게 집순이가 되었다.
말수가 줄었고 모든 일에 의욕이 없던 엄마가 예전처럼 다시 생기를 찾기 시작한 것은 지난 겨울날이었다. 2018년 11월, 추워진 날씨에 덜덜 떨면서 집으로 돌아온 나에게 엄마는 다짜고짜 요가복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둘째가 보냈어. 집 옆에 핫요가도 1년 회원권으로 등록을 했더라고.
엄마는 요가복을 입은 채 거울 앞에서 요리조리 몸을 보셨다. 살이 너무 쪄서 요가 레깅스만 입기엔 민망하다고, 요가 바지도 필요하겠다고 하셨다. 나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요가복을 입은 엄마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 엄마는 요가를 하러 집을 나가셨다. 엄마가 없는 저녁 시간이 무척 낯설었다. 세상에나. 엄마가 운동을, 그것도 요가라니! 내가 그렇게 운동을 권할 때는 돈 아깝다고 잔소리뿐이던 엄마가 동생이 덜커덕 등록한 요가를 하러 나가셨다. 1시간 뒤에 돌아온 엄마는 땀범벅이 되어왔다. 집에서 5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동네의 작은 요가원은 찜질방처럼 후끈하게 온도를 높인 공간에서 요가를 하는 핫요가로 유명한 곳이다. 시설이 무척 좋은 것은 아니지만, 주 3회에 1년 회원권 60만 원으로 무척 저렴하다. 현찰로 비용을 한 번에 지불해야 하는 부담이 있지만, 월 5만 원 정도로 저렴한 편이다. 엄마의 건강을 걱정한 동생이 용돈을 드리면 쓰지 않고 저축하는 엄마의 성향을 파악해 저질러버린 것이다. 그 덕에 엄마는 주 3회 꼬박꼬박 요가를 다니셨다.
나는 엄마의 변화가 무척이나 신기했다. 요가 시간에 맞추어 식사 시간도 조정되었다. 추운 겨울에 땀을 뻘뻘 흘리고 관절에 무리가 되지 않는 운동이라며 엄마는 무척 좋아하셨다. 오늘 배운 동작은 무엇이고 어떤 동작은 잘 되는데 어떤 동작은 잘 되지 않는다고 나에게 시시콜콜 이야기하셨다. 직접 몸으로 보여주시며 자세를 봐달라고도 하셨다. 2주 정도 지났을 때, 엄마는 살이 빠졌고 허리 라인도 들어갔다. 몸이 좋아졌다고 자랑했다. 예전에는 내가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시시콜콜 이야기했는데, 지금은 엄마가 요가에 대해 나에게 이야기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엄마가 연습하는 동작의 교정을 돕는다.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엄마를 따라 요가원을 향해 가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