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이 전부라 생각하며 살았던 우물 안 개구리 시절이 있었다. 죽을 각오로 우물 밖을 나온 개구리는 낯선 세상이 무섭기도 했지만, 온통 신기한 것 투성이었다. 얼마 못 가서 죽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적응도 되고 살만했다. 개구리는 환경에 적응하며 점차 진화해서 주변 환경에 따라 변화하는 보호색을 띠게 되었다. 무용을 전공했지만 무용이 아닌 다른일을 해도 무척 잘 지낼 수 있다는 소리다.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땐, 무척이나 괴로웠다. 고등학생으로 돌아간 것처럼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밥을 먹고 퇴근을 했다. 하는 일의 양보다는 시간대로 움직이는 기계와 같았다. 종일 의자에 앉아서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는 일이 무척 힘들었다. 몸이 견디지 못해서 자리를 이탈해 돌아다니며 일을 했는데, 자리에 사람이 없으니 일하는 사람 어디 갔냐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면 일 안 하고 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대화도 메신저로 몰래 했다. 시선은 컴퓨터에, 몸은 지정된 자리에 앉아 있어야 일 잘하는 직원이라는 꼰대 마인드. 싫은 소리 듣기 싫어서 꼰대 마인드에 맞췄더니 괴롭던 몸이 그것에 적응되었다. 의자가 침대처럼 편하게 기대어졌고 말하는 것보다 자판을 두드리는게 편했다. 한번 앉으면 점심시간이 된 줄도 모르고 일했다. 누가 말해주지 않으면 지금이 몇 시가 되었는지도 모르게 일했다. 그래도 한때 춤을 췄던 사람인지라 몸이 망가지는 꼴을 보고 있자니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서 헬스를 등록해서 아침에 2시간씩 운동하고 출근을 했다.
헬스는 생각보다 지루한 운동이었다. 자신과의 싸움을 하는 곳. 각자의 목표로 열심히 운동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빈 운동기구를 찾거나 사용할 수 있는 매트나 공간을 찾아다닌다. 극도로 친절한 헬스장의 트레이너들이 홀로 운동하는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내가 하는 운동법이 특이한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냐며 물어보고 운동법을 물어본다. 아마도 발레 동작 비슷한 모양 때문에 눈에 띄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입시 때 몸 만든다고 발레에 도움되는 PT를 받은 경험이 있어서 할 줄 아는 운동이 그런 동작들뿐이었다. 운동 초짜로 보이진 않고, 그렇다고 전문적으로 운동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으니 트레이너들의 호기심을 키운 것이다. 그들은 나에게 PT 영업을 시도하려고 접근했지만, 몸에 대해서 그들보다 내가 더 잘 알기 때문에 영업에 성공하지 못했다. 하루는 그들이 나에게 무료로 운동을 가르쳐 주겠다고 했는데, 너무 과하게 운동을 시켜서 병이났다. 그 뒤로 헬스장을 다시는 등록하지 않았다.
몸을 망치지 않으면서 운동을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필라테스를 다니게 되었다. 내가 다니던 대학 전공수업 중에 필라테스가 있어서 배울 수 있었는데, 몸의 정렬을 맞추고 근력을 골고루 발달시킬 수 있어서 무척 좋았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필라테스를 다녔는데, 단체로 진행하는 수업은 저렴한 대신에 난이도가 너무 낮았다. 내가 집에서 스트레칭하는 수준이었다. 기구를 사용하는 필라테스나 4:1 그룹 수업이 효과가 있어 보였는데 비용이 부담되었다. 그래서 필라테스는 집에서 영상을 보며 하기로 했다.
직장생활 3년 차. 두 번의 이직이 있었고, 새로운 조직에 적응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다 보니 모든 것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식습관도 엉망이고 취침 시간도 불규칙했다. 출퇴근하면서 사람들과 부대끼니 몸이 너덜너덜 지쳐서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원격근무에 자율 출퇴근이 가능한 회사로 이직을 했는데도 건강은 좋아지지 않았다. 회사에서 나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과다한 열정으로 일했기 때문이다. 원격근무는 장단점이 있다. 출퇴근 지옥철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고, 화장을 하거나 이동에서 발생하는 불필요한 시간을 줄일 수 있기에 잠을 더 잘 수 있다. 그렇지만 종일 컴퓨터 앞에서 일하는 시간이 많았고, 혼자 스케줄을 관리하며 일하기 때문에 몰입이 심하면 쉬지 않고 늦게까지 일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결국 자기 관리를 잘해야 한다는 것. 파김치가 된 내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밝은 얼굴로 요가하러 나가는 엄마와 마주쳤다.
문득 궁금해졌다. 우울의 절정을 찍던 엄마를 저렇게 에너지 넘치는 사람으로 만들다니! 도대체 요가는 어떤 운동이지? 아니, 운동이 아니라 수련인가? 시작한 지 고작 2주밖에 되지 않았는데 엄마의 몸은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좋아졌다. 표정도 밝아졌고, 엄마가 뿜어내는 좋은 기운이 나에게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나도 같이 다닐까?
요가원에 가려는 엄마를 바라보다 툭 던져진 말. 엄마는 혼자 다니니까 심심했는데 잘 되었다며 좋아하셨다. 동생이 엄마 입으라고 주문한 요가복 중에서 엄마에게 작은 사이즈라 입지 못한 요가복을 주워 입고, 쫄래쫄래 엄마를 따라 요가원으로 향했다. 어디서 무용했다고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여기저기 살이 삐죽삐죽 나왔다. 근육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 추운 겨울 날씨에 쫄쫄이 요가복을 입고 두꺼운 롱 패딩으로 무장한 채 도착한 요가원에서 나는 신세계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