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umn Leaves
몇년전까지만해도 어떤 계절을 가장 좋아하냐고 물어보면 주저없이 가을이라고 답했다. 무더운 여름이 가고 오는 시원한 가을이 좋았고, 알록달록 물든 거리가 좋았고, 떨어진 낙엽이 낭만적으로 보였다. 가을에만 볼 수 있는 청명한 하늘도 좋았고 가을에만 맡을 수 있는 시원쌉싸름한 향도 좋았다. 무엇보다 가을 다음으로 오는 연말이 항상 기대됐다.
하지만 여러번의 가을을 맞이하고 삶의 무게를 조금씩 깨닫게 되면서 어느순간부터 가을이 반갑지 않았다. 엄마와 얘기를 나누다가 "엄마 나는 언제부터인가 가을이 싫어."라고 했더니 엄마도 "나도 그래. 너도 이제 어른 다 됐네. 나이들수록 가을의 서늘함이 온몸을 파고들더라."라는 말을 했다. 나도 엄마가 가을을 싫어하는지 그때 알았다.
내가 좋았했던 가을이 왜 싫어졌을까에 대해 생각해 봤더니 가장 큰 이유는 "기대"가 옅여진 후부터인것같다. 어렸을 땐 뭐든지 할 수 있을것 같은 막연한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여러일들을 통해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좌절하면서 냉정한 현실에 대해 지각하고 막연한 희망같은건 없다라는걸 깨닫고 나서는 세상을 조금 냉정하게 보게 되었다. 그래서인가 전형적인 INFJ이지만 F인걸 알고 T 아니냐며 놀라는 사람이 많다.
그 다음 이유는 나이먹기 싫어서이다. 가을이 온다는건 적어도 1년 중 1/4밖에 남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언제부터인가 나이먹는게 싫어졌다. 나는 아직 다 자라지 않은것 같은데 나이만 먹고 어렸을 때는 미쳐 몰랐던 책임져야할 일이 많아지게 되어 버거웠다. 나도 나이가 먹는게 싫지만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 나이 먹는것도 싫다.
마지막 이유는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나도 낙엽처럼 언젠가 똑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 화려한 색으로 단풍이지고나면 언젠가 화려했던 잎들은 다 떨어진다. 낙엽처럼 똑 떨어져서 혼자가 되어 내 옆에 아무도 없게 된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가끔 나를 두렵게한다. 혼자왔다가 혼자간다고 하지만 그래도 의자할 사람 없는 온전한 혼자는 무섭다.
최근에 날이 좋아서 그런지 사람들이 날씨에 관한 얘기를 많이 했다. 날이 무척 좋았던 어느날 동료들과 점심을 먹으면서 어떤 계절을 제일 좋아하냐고 물어봤다. 서핑을 할 수 있어서 여름이 좋다는 사람, 예쁜 옷을 입을 수 있어서 봄이 좋다는 사람, 더위가 싫어서 겨울이 좋다는 사람 등 각자 여러가지 이유로 좋아하는 계절이 달랐다. 계절에 관한 얘기를 하다가 나는 언제부터인가 가을이 싫어졌다고 했더니 나와 비슷한 이유로 가을이 반갑지 않다는 사람이 있어 반가웠다.
계절이 변하듯 사람 마음도 항상 변한다. 지금은 가을이 싫어도 언젠가는 갑자기 가을이 좋아질 수도 있다. 그냥 여름에서 가을이 된건데 이상한 기분이 든다. 요 며칠 날이 좋아서 퇴근길 몇정거장을 일부러 걸어갔다. 제법 차진 바람과 한 카페에서 나오는 Autumn Leaves를 듣게 되었는데 울렁거리면서 현기증이 났다. 아무래도 가을 타는것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k9BqZxir_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