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이 되면 학교에서 생존 수영을 간다. 한 번도 현장학습을 가 본 적이 없기 때문에 학교에서 단체로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경험 자체가 처음이었다. 비록 15분 거리의 수영장까지 가는 거라고 하지만 아이는 설레고 있었다. 준비물을 몇 번씩 확인하고 반복해서 이야기하느라 나도 외울 지경이었다. 수영을 안 다니는 친구의 엄마는 수영복, 수모, 수경까지 갑자기 사느라 분주해 보이기도 했지만 우리 어린이는 수영을 다니고 있어서 늘 챙기던 수영가방이면 족했다.
아이가 다니는 수영장은 주 1회 수업을 하는데 한 달에 15만 원을 받는다. 구립 체육 회관에서는 월 3만 원이 안 되는 금액으로 수영 강습을 하지만 어린이 수영장은 비용이 몇 배나 비싸다. 그 두 수영장의 가장 큰 차이는 선생님이 아이가 씻고 머리 말리는 것까지 도와준다는 데 있다. 머리도 길고, 집에서도 늘 엄마나 아빠가 머리를 말려주곤 하기 때문에 좀 더 큰 다음에 옮겨주면 모를까 지금은 그냥 그렇게 다니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 보내고 있다.
그래서 생존 수영 소식을 듣고 조금 막막했다. 학교에서 단체로 가기 때문에 누가 씻는 걸 도와줄 수도 없고, 머리를 말리고 올 수도 없었다. 심지어 수영장에 도착해서 분주할까 봐 걱정이 되었는지 수영복을 옷 안에 입고 등교하라고 할 정도였다. 작년 3학년 아이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제대로 닦지도 못한 채 나와서 머리카락에서 물이 뚝뚝 흐르다 못해 등이 다 젖어서 하교했다는 아이들도 적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미리 머리를 15cm 정도 잘라냈다. 그래도 불안해서 수건을 2장 챙겨주면서 먼저 머리를 잘 닦고 난 후에 다시 새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감싸고 짜듯이 꾹꾹 눌러서 닦아내라고 연습을 시키고 당부도 했다.
수영장을 다녀와서 점심을 먹고 수업을 하고 나서 아이는 방과 후도 있었기 때문에 내가 더 불안했는지도 모른다. 방과 후가 시작되기 전 아이를 만났는데 머리가 뽀송뽀송했다. 옷도 멀쩡하니 젖은 곳이 없었고, 생각보다 스스로 잘 정돈한 모습을 보니 대견했다. 내가 걱정이 많은 거지 아이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잘 해낼 수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씻겨주고 닦아주고 말려주고 하는 것이 너무 아기 때부터 당연하게 해주었을 뿐이지 아이는 진작부터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 아이에게 맡기는 것보다 내가 해주는 게 빨라서 성격 급한 엄마가 알아서 해줬을 뿐이다.
어버이날이라고 아이가 효도 쿠폰을 만들어 주었다. 자기 딴에는 날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며 골랐을 그 쿠폰이 마냥 귀엽기만 해서 지금까지 받고 사용한 적은 없었다. 아이가 왜 안 쓰냐고 물어보면 나중에 사춘기가 온 너에게 사용하겠다며 그때 거부하면 안 된다며 단호하게 대답하곤 했다.
내가 아무리 힘들고 지친 하루를 보냈다 한들 작고 작은 너에게 어떻게 나도 하기 싫은 설거지를 맡길 수 있겠냐 싶은 마음인데 아이는 아닌가 보다. 신랑을 시키면 시켰지 누가 열 살짜리한테 설거지를 시킬까 싶은데 한 번 해보고 싶은지 자꾸 도전을 하기는 해서, 적당한 순간이 오면 살짝 넘겨봐야 하나 고민이 된다. 설거지 쿠폰이 매년 빠지지 않는 아이템인 걸 보니 자신만만한 것 같기는 하다. 이렇듯 아이는 내가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쑥쑥 자라고 있다.
오늘도 나에게 사랑만 주는 너에게, 나도 사랑만 주는 하루의 마무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제발 이따 집에 와서 우리 서로 짜증 내지 말자. 내년엔 짜증 멈추기 쿠폰 좀 만들어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