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본성의 법칙>을 보고,
과학적 리더십이 필요하다면 스콧이 있다.
빠르고 효율적으로 이동한 사람은 아문센이다.
하지만 절망적 상황에서 퇴로가 보이지 않는다면
무릎을 꿇고 섀클턴을 내려달라고 빌어라.
에드먼드 힐러리(에베레스트산 최초 등정한 탐험가)의 말, <인간 본성의 법칙>에서 인용
이 문장에서 내가 원래 알고 있던 사람은 아문센뿐이다. 남극점에 처음 도달한 사람의 이름이다. 스콧은 대영제국에서, 아문센은 노르웨이에서 남극점을 향해 경쟁하며 출발했던 두 사람의 이름이라는 걸 이번에 알았다. 그리고 섀클턴은 그 이전에 남극점의 가장 가까운 곳까지 도달한 사람이었다. 섀클턴은 예전에 성장해빛 강의에서 지나가듯 들었던 이름이었다. 그때 듣고도 정확한 이름을 기억했다기 보다 남극점이라는 목표를 향해 가는 도중 위기를 만난 리더가 과감하게 목표를 변경해서 대원들 모두가 살아서 돌아오게 되었다는 스토리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라 목표를 정한 것을 수정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기 때문에 기억에 남아있었다.
오늘 <인간 본성의 법칙>을 읽던 중에 섀클턴의 이야기를 자세히 알 수 있었다. 배를 버리기로 결정한 건 그의 대단한 면모 중 사소한 한 가지일 뿐이었다. 모두의 생사를 책임지게 된 상황에서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을 내린 섀클턴은 대원들의 사기가 떨어지지 않도록 매 순간 모두에게 레이더를 펼치고 있던 리더였다. 책에서 정리한 그의 임무 방식을 보면서 나에게 적용할 점을 찾아보았다.
섀클턴의 접근 방식 (출처: <인간 본성의 법칙>)
리더의 비언어적인 태도가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개인과 집단에 각각 똑같이 주의를 기울였다.
부정적인 분위기가 형성되려고 할 때 오히려 부드러운 태도로 대했다.
집안의 분위기는 엄마에게 달려있다. 물론, 다른 집은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빠가 분위기를 주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집은 나에게 달려있다. 그래서 내가 컨디션이 좋은 날과 나쁜 날의 분위기는 말 그대로 극단적이다. 신랑의 컨디션이 떨어지는 날이어도 내가 괜찮으면 쿠션 역할을 해줄 수 있기 때문에 내 컨디션이 아주 핵심적이다. 그래서 나를 우리 집의 리더라고 생각하고 적용해 보기로 했다.
가족을 향한 나의 태도에 한숨과 비난의 눈빛이 있다면, 그 자체로 내가 분위기를 망치는 길이라는 걸 기억하기로 했다. 아이들 앞에서 함부로 한숨을 쉬지 말 것. 장점을 발견하기 위해 관찰하는 시간을 더 길게 가질 것. 남편의 부족한 점을 발견하자마자 득달같이 분노하지 말고 언제나 잘 하려고 하는 그의 의도를 먼저 생각할 것. 이 정도가 섀클턴의 첫 번째 방식과 연결되는 지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방식은 애초에 나에게 필수로 요구되는 능력이었다. 아이가 둘이라는 것은 엄마에게 정말 험난한 일이었다. 한 명만 억울하고 한 명만 화가 나는 상황은 없다. 둘이 같이 억울하고 같이 울음이 터지며 동시에 절규한다. 애초에 개인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다만 전체적인 분위기, 우리 집의 분위기의 흐름에서 늘 아이들에게만 레이더를 향했기 때문에 신랑에게도 레이더를 펼쳐보기로 결심했다. 그래야 우리 집의 분위기가 감정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부정적인 분위기가 터져 나오기 전에 먼저 내가 조율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러지 못했다면 그 상황에서 함께 날선 태도로 대응하지 않아야 한다는 걸 기억하기로 했다. 남편의 짜증에 함께 기분 상하기 보다 조용히 다독일 수 있고, 아이의 짜증이 터지려고 할 때 기분을 전환시켜줄 수 있는 시도를 할 수 있고, 절규하기 시작한 아이를 먼저 안아줄 수 있다. 왜 나만 해야 되나 싶은 벅찬 기분이 드는 건 사실이지만 이 책에서 너무 힘이 되는 문장을 발견했다.
우리는 모두 사회성을 타고났고, 아직 개발하지 못했을 뿐이라는 말이 왠지 용기를 주었다. 나는 감정적인 사람이다 못해 격정적인 감정의 기복을 가진 사람이고, 컨디션에 휘둘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는데 우리에게는 모두 개발될 사회성이 있고, 나도 노력할수록 변화될 수 있다는 단언이 너무 힘이 되었다. 그래, 나도 할 수 있다. 나도 무릎을 꿇고 섀클턴의 태도를 내려달라고 하는 간절함을 가져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