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 여보, 안경 맞추러 갈래?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니 남편 안경을 바꿔줘야겠다. 아무래도 따뜻해 보이는 뿔테가 좋겠지. 남편은 안경알에만 이상이 없다면 1년이고 2년이고 같은 안경을 계속 쓴다. 연애하는 6년 동안 안경을 바꾼 적이 있었던가? 그때는 내 거(?)가 될지 말지 알 수 없으니 단벌 안경이든 말든 신경 쓸 바가 아니었지만 결혼한 이후에는 계절마다 남편의 안경을 새로 맞춰주었다.(수험생활 중이었던 최근 3년은 아니지만) 계절이 바뀌면 옷이 바뀌듯 안경도 달라져야 한다. 본인은 전혀 그런 유형의 사람이 아니지만 사람들이 남편을 보고 신경 써서 옷을 입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나에게 남편의 안경은 옷이다. 남편에게는 생존템이지만.
남편은 안경을 쓴다. 어릴 때부터는 아니고 고등학생 때부터 안경을 썼다고 하니 컴퓨터 게임을 너무 열심히 한 탓이겠거니 한다.(공부는 아니다에 한 표. 시부모님이나 시동생 중 안경을 쓰는 사람은 없으니 유전적 요인도 아니다.) 남편에게 안경은 공기처럼 자연스럽고 익숙하다. 안경을 쓰고 잠드는 건 다반사이고 어느 날에는 세수를 하려고 얼굴에 물을 끼얹는데 손이 안경에 닿아 당황해할 때도 있다. 그제야 한 몸이나 다름없는 안경을 벗으며 머쓱해진 그가 말한다. “어쩐지 잘 보이더라...”
나는 안경을 쓰지 않는다. 지금도 안과 검진을 가면 시력이 좌우 1.2는 나온다. 기계적 수치일 뿐이지만 비교적 멀리 있는 글씨들도 읽을 수 있는 걸 보면 아직은 쓸만한 시력임은 분명하다. 남편은 안경을 끼지 않고는 나와 아이들의 얼굴도 아주 바짝 마주 해야만 보인다고 한다. 그가 보는 흐릿한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그와 나의 세상은 세상과 두 눈, 그 중간에 자리 잡은 안경 렌즈의 두께만큼 차이가 날지도 모르겠다. 혹 안경을 쓸 때보다 쓰지 않을 때 내가 더 예뻐 보이는 건 아닌지. 안경 속 세상은 늘 궁금하다.
안경을 쓰고 싶던 때가 있었다. 시력은 인간의 몸이 가지는 다섯 가지 복에 해당된다던데 그런 건 모르겠고, 안경 낀 친구들이 부러웠던 철부지 시절의 이야기이다. 그 아이들은 하나같이 가운데 손가락으로 안경 코받침을 들어 올리거나 오른쪽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안경다리를 집어 올려 안경의 매무새를 바로 잡았는데 그 모습이 어쩐지 똑똑하고 세련돼 보였다.(똘똘이 스머프를 보고 자란 영향일 수도...) 시력이 나빠지게 하려고 텔레비전도 일부러 가까이서 보고, 눈을 찔러보기도(계속 눈을 감아서 실패..,) 가운데로 모아 보기도 하는 등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으나 효과는 없었다. 안경은 얻지 못하고 텔레비전에서 멀리 떨어져 앉으라고, 눈 똑바로 뜨라고 엄마한테 등짝만 맞았다.
철없던 시절 내가 안경을 쓰고 싶어 했던 것처럼 실제로 시력과 관계없이 안경을 착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안경으로 시선이 분산되면서 인상이 달라져 보이고, 개성 있는 안경테로 개성을 살릴 수도 있기 때문일 테다. 렌즈 착용이나 라식, 라섹 같은 시술 대신 안경을 착용하는 사람들도 비슷한 이유로 안경을 고수하는 게 아닐까. 땀이 오면 안경이 흘러내리고 겨울에는 수시로 김이 서리는 불편을 감내하면서 말이다. 개그맨 유재석 님의 안경이 그의 이미지를 대표하면서 안경 벗은 모습이 개그적 요소로 활용되고 영화평론가 이동진 님의 빨간색 뿔테 안경이 평론가로서 지적인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크게 기여한 바를 보면 안경의 역할이 결코 사소하지 않다.
안경이 사람을 조금 근사해 보이게 할 수 있을지언정 본연의 임무는 역시 시력 교정이다. 경계 없이 허물어져 보이는 세상에 윤곽을 더해주고 흐릿하게 퍼져 보이는 사물을 또렷하게 보여주는 마성의 안경. 그런데 세상을 선명하게 보는 것과 세상의 이치를 분명하게 아는 것 중 무엇이 더 중요할까? 눈으로 사물을 생생하게 보기 위해 안경 끼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면서 마음으로 섭리를 밝게 헤아리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서울 북촌에 <어둠 속의 대화>라는 공연이 있다고 한다. 완전한 어둠 속에서 시각 이외의 감각으로만 세상과 소통하는 새로운 방식의 공연이다. 공연을 소개하는 글 중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이지만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존재합니다.’라는 문장이 특히 인상적이다. 취학 아동부터 입장이 가능하다고 하니 내년에 아이와 함께 방문해보려고 한다. 눈이 아닌 모든 감각을 통해 세상을 보고 만지고 느끼면서 우리는 어떤 감정에 사로잡힐지 기대가 된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에 집중한 나머지 것들을 놓치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뒤돌아 보기 좋은 때이다. 11월도 반이 지났으니 올해도 남은 날이 많지 않지만 지나온 시간을 점검하고 새해맞이 준비를 하기엔 모자라지 않다. '한파 속 치매 노인에게 겉옷을 벗어 준 여성*'에 관한 기사를 봤다. 길거리를 헤매고 있는 치매 노인을 ‘보기’만 하지 않고 도움을 건넨 손길이 더없이 다정하고 온화하다. 세상은 눈 앞에, 안경 너머에만 있지 않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 또한 많다. 결정은 나의 몫이다.
* 한파 속 떨고 있던 치매 노인… 외투 벗어주고 곁 지킨 여성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s://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8883229&code=61121111&cp=n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