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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리스 h Nov 22. 2021

몸과 마음에
백신이 필요해!

삐딱선? 한잔 캬~~

가을이라 가을바람 솔솔 불어오니
푸른 잎은 붉은 치마 갈아입고서
남쪽나라 찾아가는 제비 불러 모아
봄이 오면 다시오라 부탁 하누나~


어린 시절 남동생은 나의 일기장을 훔쳐보았고, 일기를 밀리고 나서야 날씨를 확인하며 가짜 일기를 만들어 방학이면 내 일기장을 베껴쓰기도 했단다. 누나 , 누나 곰살맞게 나를 졸졸 따라다니던 막내 동생은 어느새 50이 되었다. 


난 며칠 전 동생의 일기장을 훔쳐보았다. 베낄 수가 없어 동생에게 일기를 공유해달라 부탁했다. 동생아 동생아 부르며 난 아산에 내려와 동생을 졸졸 따라다닌다. 이 가을날을 함께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남동생의 일기 중에서 


차분한 바람이 창문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쉴 틈 없이 달리던 시간을 꿀꺽 삼킨 바람 탓인지 네모난 화면 앞에 갇혀있던 나는 시선을 잠시 멈추고 바람과 마주했다. 


오랜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좀 더 느린 삶을 살기 위해 충남 아산으로 내려왔다. 8년이란 세월을 느리게 살고 싶었지만 삶의 울타리가 힘에 겨웠는지 나는 가슴에 구멍이 뚫리는 큰 수술을 하고 나서야 깨어날 수 있었다.


5분만 늦었어도 삶 대신 죽음을... 운명의 시간들을 보냈다. 생명의 실타래를 부여잡으려고 가슴에 호수를 끼우고 살려 달라고 울부짖었다. 나약함과 두려움 그리고 공포가 붉은 피로 역류하여 올 때마다 가슴과 온몸이 날카로운 송곳으로 찌른 듯 음흉하게 나를 파고들었다.


필사즉생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필생즉사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이순신 좌우명이 떠올랐다. 두려움과 맞서기로 했다. 이제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조금 알만한 나이 50살이다. 응급실 천장은 동굴 속 아래로 뾰족하고 날카롭게 뻗어 내린 종유석처럼 내 몸을 찔러 전신을 마비시켰다. 살려달라고 살려달라고 신에게 애원했다. 


2년이 지난 후,

가슴에 틈은 아물고 무뎌지기 시작했다.



동생의 일기 중 중간 생략하여 짧게 편집을 했다. 4남매 중 막내였던 동생의 수술 소식을 베트남 하노이에서 전해 듣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철부지 같고 밝고 유머가 많았던 막내 동생이었다. 술도 담배도 하지 않고 자기 관리가 철저한 동생이었다.


 베트남으로 여행을 준비하던 동생은 비행기표를 하루 남겨두고 오지 못했다. 쓰러졌다. 코 시국과 맞물려 한국으로 오지도 못하는 내 마음은 긴 시간 (2년) 먹먹하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가족 모두 놀랬고, 아내와 두 딸들의 눈물이 하늘에 닿았는지 기적처럼 수술을 마치고 살아났다. 나는 2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와 동생네 집 옆에 둥지를 틀었다. 갑자기 왜? 아산이냐고? 묻던 친구들에게 답이 되었으려나? 지금은 그저 내 마음이 그러라 시켰다. 


한동안 쉼표를 끝내고 오뚝이처럼 살아가는 동생과 가족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어서 왔는데... 사실 살짝 숟가락 올린 누나가 된 것 같기도 하다. 가까이에서 동생을 볼 수 있어서 얼마나 좋았던지... 어릴 적 나는 체구는 작았지만 당찼다. 행여 동생들을 괴롭히면 쫓아 가 싸워주는 누나였다.


딱지치기, 구슬치기, 동네 숨바꼭질을 해도 동생을 챙겼다. 학교에서 장미꽃을 꺾어 동생 친구들을 협박하기도 했고, 몸도 마음도 약했던 막내동생을 무조건 지켜내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기억 속에 있다. 




가을바람이 부는 날


부모님을 만나러 남동생과 길을 떠났다. 가던 길을 멈추고 우리는 당진시 면천 읍성에서 쉬어가기로 했다. 충청도 면천. 동네가 작고 아담하다. 예쁜 카페와 상점이 보인다. 그리고 창고를 개조한 카페도 보인다. 동생은 누나의 마음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좋아하는 것도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안다. 

작은 골목길 벽화 풍경


찰칵! 찰칵! 이름을 알 수 없는 꽃을 보고 반했다. 가을과 겨울 사이 분홍빛의 꽃을 담는다. 길가에 그림도 전시해두었다. 담벼락에 그림도 그려져 있고, 걷고 걸으며 지루하지 않은 곳 이런 곳이 정말 좋다.


우체국을 개조한 그 미술관에 갔다. 오래된 풍금, 탁자와 의자 그리고 백신? 아기자기한 흙 소품들... 어쩌면 좋아?? 마음이 풍요롭고 넉넉해지고 행복해진다.

작은 문을 열고 나가니

옥상 위에 삐닥선이라 쓰여 있는 

배 한 척이 턱 하니 올려져 있다.

살면서 한 번쯤 해안선에서 

벗어나 삐딱선을 타보지 않던가?

흥칫뿡! 나도 삐뚤어질 테야~ㅎㅎ

삐딱선을 타면 어디로 데려가려나?

반듯하고 정직하게

살아온 삶이 상처되어 않도록

삐딱선을 타도 괜찮다.


연필 울타리가 된 문짝이 예쁘다.

정말 창의적인 발상이다.

버려질뻔한 나무토막으로 

사람과 강아지를 만들어 묘사했다.

자연과 어울려 미술관은 

한 폭의 풍경화 같다.

창고를 개조한 카페

자전거 수리점을 개조한 책방

오래된 미래에서 차 한잔~

비어있는 공터를 이용한 초가집과 기와집

면천읍성에서 추억하나 추가 


막걸리 한 박스를 들고 가는 동생의 뒷모습

천년을 살아낸

은행나무길을 걸어서 간다.

삶의 무게가 힘겨워 종종걸음으로 

달려왔을 터인데...

무거운 막걸리 한 박스를

들고 주차시킨 곳까지 

땀을 뻘뻘 흘리며 가고 있는

남동생의 뒷모습에 

울컥 눈물을 삼켰다.


수술 자국들이 몸에 남았다.

앞만 보고 전력 질주했던 남동생은

40대 끝자락에서

멈춤을 알게 되었고 쉼표를 찍고

다시 소나티네의 밝은 삶을 연주 중이다.

강의로 만신창이가 되었던 몸을 추스르고

기적처럼 살아난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었지만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


조금 천천히 일상으로 돌아와 회복 중이다.

이제는 골프도 치고

산책도 운동도 하며 

삶을 즐길 줄 알게 되었다.

이곳에서 함께 지내며 난 동생에게

인생의 선배고 누나로서 노는 법과 사는 법을 

슬며시 전수해 주었다.


얼마나 울었을까?

생명의 소중함과

삶과 죽음 앞에서 

힘겨웠을 동생

원망과 설움을 삼키고 

토해내고 삼키며

잘 버티어 냈다.

하노이에서

난 신에게 기도했다.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고...


다행스럽게 다시 건강을 되찾았지만 

몸과 마음에 상처가 아물기까지

긴 시간이 또 흘렀다.

사랑하며 살기

용서하며 살기

비우며 살기


매일매일 자신을 돌아보며

토닥! 토닥!

181센티 키에 핸썸하고 멋진 내 동생

두 딸과 아내는 힘든 시간을

함께 잘 극복했다. 너무 고맙다.

그 미술관에서

자식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힘겨운 삶을 살아내는 남편들

자신도 돌보며 살아가길 바란다.

행복도

사랑도 살아 있어야 

가능하니까...


가끔은 삐딱선 타고 

일탈을 꿈꾸는 청소년처럼

삶을 즐기며 사는 것도...

몸과 마음에 백신이 필요해!


면천 샘물 생막걸리를 사 왔다.

한잔 캬~~~

동생네 가족들과 속풀이 했다.


아산 오누이는 건강하고 행복한 일상을 꿈꾸며 인생 후반전을 멋지게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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