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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리스 h Nov 25. 2021

게국지 담느라 게고생?

서산 게국지를 아시나요?

첫눈이 밤새 내렸다.

하얗게 쌓인 논 뷰는 흰 뷰로 바뀌고

붉은 태양이 인사를 했다.

가을이 겨울에게

완전 백기를 들었다.

11월 23일 아산 첫눈 아침 풍경

온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세상에...

 

나뭇가지와

소나무 위에도

흰 솜사탕이 걸려있는 듯 

ㅎㅎ 너무 예쁘다.


3년 만에 보는 

진짜 눈송이 

눈이 안 오는 나라

베트남에서

잠시 귀국 중이라

더욱 반가운 눈이다.


노란 은행잎이 바닥에 뒹굴고

눈 속에서 덜덜 떤다.

울 엄마 배추 사러 갔단다.

갑자기?

추워지니 게국지나 담을까? 

전화가 자꾸만 온다.

무 사러 또 가셨단다.

아이고? 추운데

어쩔까나? 귀찮은데...

이것저것 사서 나르시며

올래? 딸?

ㅎㅎ마음이 약해진다.


게국지는 서산의 김치!

대대로 내려온 비법 전수받으러

노우? 예스? 

비장한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예스다.


꽁꽁 싸맨 옷자락을 

단단히 붙잡고 두 손을 

주머니에 의지한 채

고속터미널로 가는 길이다.


눈 속에 은행잎이 

꽂혀있다.

가을과 겨울 사이를

넘나드는 날씨

눈송이도 살짝

만져본다. 사르르 녹아내린다.

눈은 언제 봐도 좋다. 

겨울이 있는 나라

눈처럼 깨끗하고 하얗게 살고 싶다.

버스를 타니

차창 밖으로 설경이 

펼쳐졌다. 너무 멋지다.

잠시 

겨울에 태어난

아름다운 당신은~

노랫말을  떠올리며

설경 감상중...

엄마가 날 부른다.

엄마의 콜이 고맙다.

나오길 잘했다.


도착하니 보라색 우산을 들고

아버지가 마중 나오셨다.

눈이 오락가락

내려서 조금 늦어졌다.


아들 바보였던 아버지는

늦게서야

딸 바보가 되었다.

눈발에 옷이라도 젖을까?

엄마는 마트 앞에 차를

대기시키고

왕비 모시듯 

딸을 태우러 오셨다.


친정집에 도착하니

어머나 세상에?

모든 야채 들을 벌써 다듬어 바닥에

전시해 두셨다.


밤새 썰어놓은 무

깎기 힘들다는 늙은 호박

양파에

갓까지...

뭐야? 다 해놓으셨네.


베란다에 가보니

소금에 절여진 배추가 

날 쳐다보며

"이제 왔니? "눈인사를 한다.

미안함에  그제야

절인 배추를 듬성듬성 썬다.

절인 배추 머리만 자르고

길게 담기도 한다.

오징어 3마리 손질해서 잘라놓고

박하지, 능쟁이, 꽃게, 매운 풋고추,

홍고추, 물 새우, 마늘 , 생강 다진 거,

새우젓, 멸치액젓, 갓, 말린 홍고추,

대파, 쪽파, 늙은 호박, 무, 뉴슈가(달고나)

무청.. 굵은소금 등등 


적당히 눈대중으로 개량하지 않는다.  


이 중에서 박하지 손질이 개고생이다.

살아있는 박하지를 급랭 시켜

기절시킨 후 살짝 녹여

2분의 1쪽으로 자른다. 탕탕

굵은 다리도 탕탕

발끝 뾰족한 곳도 탕탕 잘라 버리고

부서질 듯 탕탕

인정사정없이 탕탕

칼을 날로 등으로 요령껏

조각을 낸다.

피가 나지 않아 다행이다 ㅎㅎ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게 섰거라!

어제 사온 능쟁이

 능쟁이 혼자 탈출 시도

다 죽은 척 누워 있건만

혼자서 살아서 꿈틀거린다.

조금만 더 살고 싶단다.

도망가봤자... 게걸음

옆 걸음 쳐서 도망간다.

ㅎㅎ 산더미처럼 쌓여가는 

게국지 재료들 사이를 

돌아다닌다.

게 섰거라!


고무장갑을 장착하고

게들을 숨죽여 게국지의

재료들을 버물버물 두 손으로 

비비기 전

능쟁이 한 마리를 살려준다.

좋아서 게 난리를 친다. 


쓱쓱 비벼 비닐에 담았다.

이제 높아진 다라 안의 재료들을

섬세하게 비빈다. 

게의 공격이 남아있을 수도 있으니

조심조심 살살 

바닥까지 들어 올려 비벼준다.

약간의 고춧가루를 넣어주고 

드디어 게국지 마무리!!

그 후로 동치미랑 섞박지를

두통 더...


뒷정리만 1시간째

목이 탄다.

엄마가 좋아하는 막걸리 한잔

캬~~ 덩달아 나도 헤롱헤롱 ㅎㅎ

며느리 말고 딸이 

게국지를 전수받았다.


줄을 서시오

김치 아니고 금치였다.

똥 손 아니고 금손으로 만들었으니...

옛날엔 이것저것 막 썰 어담고 

배추 겉잎 푸성귀로

푸릇푸릇 담갔다고 한다.

새끼 새우부터 손톱만 한 능쟁이(작은 게)

손바닥 만한 박하지(꽃게)까지

바다를 품은 게국지를 완성했다.


서울남자인 남편도

게국지 맛을 이제는 잘 안다.

처음 접했을 때는 못 먹었다.

게국지는 생으로 먹는 게 아니고

뚝배기에 물을 자박하게 부어

바로 끓여먹는 김치이다.

짭조름한 국물 맛이 끝내준다.

겨울철 별미 김치다.

시집갈 준비를 마쳤다. 게국지


니들이 게맛을 알아?

ㅎㅎ 나는 그 맛을 알고 있다.

탕탕 게 난도질이 무섭지만

개고생 하며 게국지를 담그지만

그 맛에 한번 빠지면

늪처럼 헤어 나올 수 없다.

게국지를 새옹 지라고도 했다.


게눈 감추듯 홀릭되는 그 맛!

시어머니에게 물려받은 비법을 

9남매의 첫째 며느리는

딸에게 늦게서야

가르쳐 주었다.

몇십 년째,

혼자서 게국지를 담가서

자식들에게 보내온

엄마의 사랑을 

오늘에야 알게 되었다.

참 미안하고 고마웠다.


며칠 전부터

엄마는 게국지를

담그려고

아픈 다리로 종종걸음을 

걸으셨을 터인데...

"우리 딸 고생했네 "하시며 

게국지에 물을 붓고 바로 끓여

저녁을 준비하셨다.

기호에 따라 육수를 만들기도 한다.

맹물에 다시다를 약간 넣어

간을 맞춘다.


바다와 육지의 만남

우리 집만의 게국지 

게국지 식당의 맛과는

차별되는 그 맛

개운하고 시원하다.


바로 이 맛이야!

첫눈처럼 오랜만에 

엄마표 게국지를 함께

담아 먹으니 손맛에 정성까지

두배로 맛있고 행복했다.


엄마의

쭈글쭈글해진

손끝에서 마법의 가루가 

아직도 생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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