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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리스 h Mar 30. 2021

시골이좋아?도시가좋아?

하노이& 타이빈

지금 나는 베트남 하노이의 타이빈 시골집에서 글을 쓰고 있다. 


충청도 시골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고 사춘기와 여고시절을 보냈다. 19년 동안 시골녀로 살았다. 그 후 서울로 왔으니 시골녀는 도시녀가 된 걸까? 어릴 때 방학이 되면 서울 구경하러 고모댁에 왔었고, 늘 동경하고 갈망하던 서울은 엄청 신기하고 좋아 보였다.


 백화점에서 고모가 옷도 사주었다. 기억 속 가물가물하지만 체크무늬 플레이어 스커트와 블라우스를 입고 시골로 돌아와 어깨에 뽕단듯 위풍당당하게 모델 워킹을 따라 해 보았다. 가슴을 쫙 펴고 엉덩이를 씰룩 씰룩 거리며 시골집 대문을 들어서는 순간 마법이 풀렸다.

 

나만의 생각 ㅠㅠ 시골이 싫었다. '빨리 커서 서울로 가야지... '


시골을 탈출하기 위해 시골녀는 열심히 공부했으며 드디어 서울로 입성했건만 원래 도시녀였던 친구들과는 사뭇 달랐다. 시골 출신을 숨기려고 조용하게 말도 없이 주변을 살피고, 시골에서 부모님이 아껴 쓰라며 어렵게 보내준 용돈으로 옷을 사고, 화장품을 사고, 미용실에 가서 머리도 파마했다. 시골티 즉 촌티를 안 내려고 애쓴 것이 바로 촌티였다. 자연스럽지 않게 과하게 꾸미는 게 더 시골 틱 했다.


시골녀가 아닌 척 아무리 애써도 말투나 행색이 세련미 있는 도시녀를 따라 잡기는 쉽지 않았다.피부도 뽀얗고, 말투도 이쁘고, 청바지며 티셔츠도 모든 게 어찌나 비교되던지... 게다가


충청도 말투는 느리며 말 끝에 ~슈,~유를 붙인다. 예를 들면 안녕하세요? 대신에 안녕하슈우? 라 말하고 

아니에요? 대신에 아뉴우~를 더 많이 사용했다. 끌음도 많았다. 싫어! 대신에 시이러어유~  있어요?는 이쓔우? 없어요는 없슈우~ 몰라요는 물류우 ~등등 ...


구수한 충청도 말을 갑자기 서울말로 바꾸려 해도 내입과 혓바닥은 이미 굳어진 지 오래여서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친구들은 나를 부러워했다. 도시에서 나고자란 도시녀들은 시골이야기가 궁금한 듯 묻는다.

 

"집에서 바다가 보이는거 아니니?" 

"안보이거든.. 바다 가려면 1시간도 더 걸려 차 타고.." 괜히 거칠게 대답했다. 



하지만, 서울남자를 만나 결혼 후 서울살이를 30년쯤 ~' 나도 이제 진짜 도시녀가 된 거야!! ' 그토록 동경하고 좋아했던 도시녀는 아이 둘 낳고 늘 바쁘고 힘겹게 살았다. 그럴 때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노래처럼 시골을 그리워하는 도시녀가 되어 시골로 내려가 힐링을 하며 버거운 삶을 조금씩 내려놓았다. 도시녀로 살다가 시골녀 로의 변신은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가능했다. 친정엄마와 아버지가 시골을 지키고 계셨기 때문이다.


아들들이 크고 자라면서 시골로 가는 일이 줄어들었고 명절이나 부모님 생신에만 겨우 시골을 갈 정도였다. 그런데 아들들은 어느 날부터 나의 충청도 사투리를 흉내 내며 웃곤 했다. 외할아버지나 외할머니의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를 따라 했다. 나는 특히 부모님과 전화 통화를 할 때면 평상시 쓰지도 않던 농익은 충청도 사투리 버전이 전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하며 봇물 터지듯 나왔다.


'아~~~~어쩐대유, 그래서유? , 그건 안대유~어쩌라구유~~등등 마무리 전화로 이만 끊유~~ (끊어요)

 "엄마, 그류~~~가 뭐야? 그래요~해야 지"  아들은 내 사투리에 배꼽을 잡는다. ㅎㅎ그러기 있슈? 없슈?


남편과 연애할 때였다.  전철을 기다리다가 "디께루가유" "뭐라고?" 앞쪽에 사람이 많으니 뒤쪽으로 가서 타자는 얘기를 못 알아 들었다. 한국사람끼리 소통이 안되다니...ㅎㅎ


이것저것 이란 단어보다 이늠 저늠이 편한 충청도 사투리는 한동안 도시녀를 시골녀로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친정에 가면 모국어 사투리가 불쑥불쑥 더 많이 튀어나오니 정겹다. 남편은 도시 남이라 시골에 가보는게 소원이었고, 나는 시골에서 나고 자랐으니 도시로 간 것이다. 우리는 둘다 소원을 풀었다.



하늘엔 조각구름 떠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있고
   저마다 누려야 할 행복이...
 
노랫말처럼 현실도 가능한 걸까?

그러던 중 나는 베트남 하노이로 와서 도시녀가 되었다. 시골을 갈 수 없으니 여행을 다녔다. 그러나 호텔과 리조트 쿠르즈를 타며 도시녀에 맞는 품위와 품격을 지키며 살았다. 차를 운전해 주는 기사도 있고, 집안일을 도와주는 시간제 파출부도 있다. 그야말로 럭셔리 도시녀가 되었다.ㅎㅎ

하노이 도시 집에서 바라본 전망

 

6개월 전 , 난 도시녀에서 시골녀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되었다. 하노이 도시에서 2시간쯤 떨어진 타이빈이란 곳에 세컨드 하우스를 월세로 얻게 되었다. 그곳엔 남편이 운영하는 봉제공장과 회사가 있는데 인건비가 그나마 저렴하고 직원을 구하기도 편리하고 봉제공장이 몰려 있는 곳이다. 남편이 하노이로 오거나 내가 타이빈으로 가기도 하며 바쁘게 생활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내가 시골녀, 남편은 도시남이었는데 베트남에서는 내가 도시녀, 남편이 시골남이 되어 살고 있다. 행운인가? 도시녀가 시골 가고 시골남이 도시남이 되는 애매모호한 관계 속에서 우리는 돈을 벌고  있으며 따분하고 지루한 일상 속 작은 행복들을 누리며 살고 있다.

타이빈 시골집 빌라형 소형 아파트


시골녀로 변신하러 가는 그곳엔 짐이 없다. 심플한 자취집 같지만 나름 그곳이 좋아지고 있다. 풀옵션이다.

도시녀로 돌아와 사는 하노이 집은 짐도 살림살이도 많다. 복잡한 듯 하지만 타국 살이 속 한국 같은 느낌으로 꾸미고 살고 있다. 이렇게 두 집 살림을 하며 시골녀가 되었다가 도시녀가 된다.


시골이 좋아? 도시가 좋아?


이분법적으로 딱 잘라 대답을 할 수 없다. 둘 다 좋다.


나이가 들면 작은집이 좋고 부부가 노후를 함께 할 시골집과 도시 집을 갖는 일은 나름 괜찮은 생각이란 걸...

집 한 채가 십억? 이십억?.. 하는 세상이라지만 난 베트남에서 월세집으로 도시 집과 시골집을 마련했다. 시골녀로 살다가 도시녀로의 변신도 무죄다. 난 다시 30대로 돌아간다면 내 집 장만을 위해 목숨 걸고 일하고 싶지 않다. 이제는 작은 집도 만족하며 살 수 있는 마음과 여유로움이 생겨서...


베트남 하노이엔 도시녀가 살고 있으며 가끔 가는 타이빈에는 시골녀가 살고 있다. 같은 인물 다른 공간을 오가며 즐겁고 행복한 도시녀와 시골녀의 삶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즐기며 살고 있다. 충청도 사투리 대신 벳남어를 쓰고 영어를 쓰며 잘살고 있다. 


언제인지? 정확하지 않지만  한국에 가게 되더라도 나는 도시 여사와 시골 여사로 살아가려고 준비 중이다. 노을이 아름다운 바닷가에 손을 잡고 거니는 노부부의 시골집과 작지만 소박한 도시 속 그림 같은 집을 상상을 하니 행복하다.


누구에게나 꿈꾸는 미래는 시골이든 도시든 행복하길 바란다.번거롭고 불편하다는 생각보다는 새소리 물소리 자연의 소리를 듣기도 하고 때로는 시끄럽고 복잡한 도시의 소음과 매연도 즐겨 봐야 하지 않을까?


시골집에선 글도 막힘없이 잘 써진다. 편안하게 쉴만한 쉼터가 있음에 감사하는 하루다. 다시 짐을 챙겨 내일은 도시집으로 가야 한다. 또 다른 나의 삶이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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