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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리스 h Jun 17. 2022

이것이 무엇인고? 미라이사?

200번째 글을 쓰며...

"엄마, 나 믿지? 놀라지 마세요."

"응, 무슨 일이야?"

"엄마, 내가 내가..."

"뭐야? 뜸 들이지 말고 어서 말해"

"엄마가 원하는 풀옵션 집을 구했어요"

"오잉? 뭐라고? 갑자기..."


하노이와 타이빈을 오고 가며 애쓰고 있는

아빠와 엄마를 위한 집을 하노이에 얻었다.

"뭐 대단한 일도 아니네~"  할 수 있다.


이곳은 해외이고 소통이 자유롭지 않은 상황에서

맘에 드는 집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통역사를 끼거나 한국 부동산을 통하면

집값(월세)이 비싸진다. 코 시국이 풀리면서

'미딩 한인타운'은 월세가 많이 올랐고

집 구하기가 어려워졌으며 집이 없다.


아들은 현지 로컬 부동산과 벳남어와 영어로

통화를 하여 사진으로 전송받은 여러 집 중에

나름 관리가 잘된 집을 찾느라 고생했다고 한다.

급기야 계약금을 걸고, 한 달 넘게 대기했다가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엄마, 이사 준비하세요~"   


아들이 얻어 놓은 집으로 무사히 이사를 마쳤다.

지금 나는 새로운 집에서 첫 번째 글을 쓰고 있다.

이사 이야기와 아들 이야기로 200번째 글을 채우려 한다.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나도 성장했지만 아들도

폭풍 성장을 하고 있었음을.... 알린다.


"아들아, 고맙고 미안하다"


코로나가 온 세상을 초토화시켰엄마가 잠시

한국에 다녀오는 동안 이곳 베트남은

심한 봉쇄조치와 거리두기로 더 힘들었다.


아들은 집콕 생활을 하며 혼자서

비싼 월세집을 탈출하기 위해 엄마의 짐을

박스에 싸기 시작했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코로나와의 전쟁은 아들에게 살아남기를 가르쳤다.





"아들아, 이게 다 뭐라니?"


쌓아두었던 박스를 펼치며 놀라웠다. 한 푼이라도

아끼겠다고 엄마의 소중한 옷들을 압축해 두었고

그릇과 유리제품을 키친타월과 화장지로 돌돌 말아

박스에 넣고 박스마다 번호를 쓰고 내용물을 명시!

철두철미하게 박스를 포장하여 10개쯤 타이빈 집으로

보내어 보관 중 이었다.

아들이 싸놓은 이삿짐


다다 버리고 처분한 줄 알았는데... 살아남은 옷과

신발들 그릇들이 박스 속에서 여러 달을 고스란히

숨죽이며 엄마손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야 비닐 압축도 풀어주고 미라 되었던 그릇들도

풀어 숨통을 열어 주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미라
화학물 또는 춥거나
건조한 환경에 노출되어
 피부와 살이 말라서
보존된 상태
 포르투갈어로 고대 이집트에서
 미라를 만들 때 방부제로 썼던
몰약을 부르는 말이다.


노옵션 집에서 식탁도, 소파도, 티브이도 없이 지냈다.

( 앞전 글: 70일 동안 엄마가 집을 비우면...)

이제 다다다 두배로 넘치게 있다.


겁 없는 아들 덕분에 이 시국에 호강을 한다.

우연이지만 200번째 나의 글은 풍요롭다.

'엄마가 돌아왔다.' 슈퍼맨도 아니고...

엄마가 좋아하는 노을 뷰도 놓치지 않았다.

전망 좋은 노을 맛집이 될듯하다 ㅎㅎ

하노이로 돌아온 지

55일 만에 일어난 일들이 기적 같다.

이사온집의 안방뷰&거실뷰

파란만장했던 코로나 시국을 잘 버티었다.


단순한 삶을 지향했지만 압축된 옷들을 보니

그러지 못했음을 반성했고... 번호를 써놓고

함께 짐 정리를 도와주었던 아들의 여사친에게도

진정 고마움을 전한다. 작년에 한국으로 귀국했지만

좋은 곳에 취업이 되었다니 정말 좋은 일이다.


키친타월과 화장지를 돌돌 말아 깨지지 않게

감 쌓던 그 마음을... 나는 고맙고 미안해서

한동안 눈물을 훔쳐냈다. '엄마가 돌아왔고, 아팠던

아빠가 돌아왔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단순한 삶을 위해 짐을 줄이고

행복한 미래를 위해 미움을 줄이고

건강을 위해 뱃살을 줄여야 한다.


"엄마, 연어초밥 한 세트 배달시켰어요."


이삿짐으로 피곤했던 팔다리와 손끝 발뒤꿈치까지

고생고생을 했지만 그래도 좋다.

나의 소울푸드 연어초밥


아들의 맛난 저녁 한 끼가

흐물흐물했던 세포들을 살렸다.

3일째 정리하고, 치우고, 정신이 없었다.

아들을 바라보면 그저 고맙고 대견하다.

어느새 보호자 놀이를 자처하며


"내가 사회복지학 노인케어 전공이라니까...

아버지 , 엄마, 형 다다다 지켜줄 거야..."


압축되어 박스 속에서 빛을 본 옷가지들과

미라에서 벗어난 와인컵들과 유리그릇들

코로나로 몸살을 앓아온 시간들이

소중했음을... 켜켜이 쌓아놓은 짐들이

추억과 행복을 이어주고 있었다.


오호라! 짐이 행복이었네!


탈탈 먼지 털어 짐들을 정리했더니

행복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엄마가 하노이로 돌아왔다.

멈추었던 시간들이 마법처럼 풀리고 있다.

실물 보면 놀랄까 봐? 스티커 처리를 했다.

200백 번째 내 글 주인공이다.


**아들 예명은 희망이다.**


희망이 안 보여서 붙여놓은 예명이

이제사 희망으로 빛나고 있다.

초록 초록한 금요일 행여 미라 된 감정들이

있다면 훌훌 털어버리고 반짝반짝

광나는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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