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히 나란히 나란히...

어머! 어머! 이럴 수가~

by 아이리스 H

혹시나 생각나는 동요가 있으신가요?

나란히 나란히 나란히...


파란 깃대 뒤로 나란히 선 골프공 두 개, 파 3홀에서 온 그린 하여 버디펏을 기다립니다. 라인을 잡아준다며 케디 두 명이 또 나란히 나란히 공을 닦아 에이밍을 하는 중입니다. 설정샷 절대 아닙니다.


둘이서 어찌나 정성을 들여 홀컵으로 공이 들어가기를 바라는지? 1분쯤? 요런 요런 포즈로 앉아 있는걸 재빨리 순간 포착 했습니다. 너무 귀엽습니다.


베트남 골프장은 1인 1 케디입니다.


모래주머니를 차고, 원뿔형모자(논라)를 쓰고, 번호표가 찍힌 초록조끼를 입고, 눈만 내놓고 얼굴은 가면을 쓴 듯 다 가린 채 더위와 싸우며 열심히 일을 합니다.

케디를 잘 만나는 것도 복입니다.


퍼팅을 하기 전, 깃대를 향해 뜸을 들입니다. 점수와 직결되므로 신중해야 합니다. 오늘 잔디 상태는 조금 거칩니다. 잘 굴러가지도 않고, 세게 치면 지나가고... 처음 온 골프장이라 감잡기가 힘들었습니다.


숏퍼트는 방향성이 중요하므로
퍼팅 시 흔들림이 없어야 하며
몸을 다소 숙이고 쳐야 합니다.

롱퍼트는 거리감이 중요하므로
몸을 세워서 시야를 넓혀야 하며
퍼터를 밀어내면서 팔로우를
길게 잡아야 합니다.


두둥! 과연 공이 들어갔을까요?


너무너무 아쉬웠노라고... 전합니다. 홀컵을 스르르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엄마야! 홀컵을 반바퀴 돌고 멈췄습니다. 우리는 나란히 파로 마무리 했습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없이 나란히 나란히 아슬아슬 곡예짓을 하며 구르는 공을 따라 다음홀로 이동했습니다.


이번엔 드라이버샷이 또 나란히 나란히


페어웨이에 안착했습니다. 여자들은 힘이 약해 비거리가 160 야드만 넘어도 장타라 말합니다. 제가 요즘 쫌 장타대열에 섰습니다만 살짝 정체기입니다. 살아있네 드라이브샷은... 그녀도 만만치 않게 따라왔습니다.


침착하고, 집중력 있게 쉿.... 조용히... 둘이서 황제골프를 즐겼습니다. 보통 4명이 팀을 짜서 가는데 오늘은 특별히 둘이서 공을 치게 되었으니 실력발휘 제대로 해보려 했는데 ㅎㅎ쉽지 않았습니다.


이마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립니다. 날씨가 갑자기 35도를 넘어섰습니다. 9홀까지 치고 점심 먹자던 약속을 잊은 채 우리는 2홀을 더 치고 나서야 식당으로 갈 정도로 골프에 진심이었답니다. 얼굴이 빨갛게 익었습니다. 볶음밥(껌장)이 정말 맛있습니다.





바로바로 그녀가 왔습니다.


뱀샷의 달인이었던 그녀는 2개월 만에 우드의 신이 되어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저는 정체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저조한 성적을 내고 있었으나 흔쾌히 그녀의 제안을 접수했고 오늘을 기다렸습니다.(3월 23일)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온 그녀를 호텔에서 픽업하여 골프장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녀는 회사 거래처 의류업체 실장입니다. 그녀는 40대, 나는 50대, 나이차가 많지만 마음도 잘 통하고, 잘 웃으며, 착하답니다.


두 번째 라운딩이 시작되었습니다.

태극기가 휘날립니다. 이곳은 하노이에서 조금 먼 엔바이 골프장 넓고 크고 긴 호수와 초록빛잔디가 나를 반기고 코스모스 꽃들도 자라고 있었습니다.

탁 트인 시야에 호수(해저드)가 멋지지만 그 해저드를 넘겨야 하니 쉽지 않은 코스였습니다.

35도까지 올라간 날씨지만 간혹 불어오는 바람과 자연은 힐링 그 자체였습니다. 해저드에 빠지고, 벙커에 빠지고, 숲 속으로 종횡무진 돌아다니는 공과 함께 땀을 냈지만 이렇게 골프가 재미있기는 오랜만입니다.


멋지게 쓩~~ 깃대에 붙었던 공,

안타깝게 깃대를 훅~지나가고 말았던 공,

아슬아슬하게 벙커 앞에 딱~ 멈춘 공,

얄궂게 해저드에 퐁당~ 빠진 공,

나 찾아봐라 풀 속에서 까꿍 했던 공,

페어웨이를 말없이 지킨 고마운 공들이


나란히 나란히 우리를 따라다녔습니다.


하하 호호 우리는 마음도 생각도 잘 맞습니다. 점수는 케디에게 맡기고 우리는 잠시 프로선수가 된 것처럼 공을 열심히 칩니다. 나이스샷! 굿샷! 을 외치며 나란히 나란히 서고, 걷고, 뛰며 쌍둥이처럼 공을 보냅니다.

힘을 빼고 채를 던져야 하는데 힘이 듭니다.


경쟁을 멈추니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뱀샷으로도 그린에 올리는 그녀의 실력은 녹슬지 않았고, 더 정교해져 멋진 샷을 보여주었으며, 나도 정체기를 이제 툭툭 털어내고 다시 열심히 골프를 즐기며 마음을 비우고 18홀까지 잘 마무리했습니다.





신통방통한 공 때문에 웃어봅니다

.

"오늘 정말 나란히 나란히 잘 쳤어요..."


이런 느낌, 이런 사람, 처음 봅니다. 두 번째 치는데 정이 듬뿍 들었습니다. 여리여리 약해서 힘이 없을 듯 한 그녀가 드라이버장타에 우드장타라니 깜짝 놀랍니다.


샷에 섕크샷, 실수샷을 하던 그녀가 오늘따라 공이 잘 맞는다고 좋아라 합니다. 비즈니스골프, 봐주기 골프 아니었고 최선을 다했지만 지고 말았습니다.

벙커에 들어가도 웃고, 해저드에 빠져도 기분이 괜찮아지는 마법 같은 그녀의 미소가 맘에 듭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기분 좋은 골프 파트너가 되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기려고 애썼던 날들... 화가 나서 못 칠 것만 같았던 날들... 스트레스 풀러 나갔던 골프장에서 스트레스받았던 날들, 잘한 홀을 기억하기보다 못하고 실수했던 샷만 떠올라 골프가 싫어졌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공이 잘 안 맞아도 웃을 수 있는 여유는 바로 실력입니다. 그녀는 나이가 어리고 골프친지 2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자신의 감정을 티 안 내고 어찌나 잘 치던지 배울 점이 많았습니다.


게다가 옆사람을 배려하고 기분을 살피며 조율하는 능력자 ㅎㅎ 사진도 잘 찍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트리플 A형 이라며 자신을 인정하며 당당하게 소심했습니다. 쿨하다고 주장하는 나는 B형인데... 그날 공을 여섯 개나 잃어버리고 속상했습니다.




그녀는 3박 4일을 보내고, 오늘밤 한국으로 돌아갑니다. 베트남을 좋아하고 열대과일을 특별히 좋아합니다. 잭프릇과 두리안을... 해맑은 미소로 맛있게 먹습니다. 인생에서 귀한 동생을 알게 되었고...


내 인생 속 인연 레이더 망에 그녀는

걸려들었습니다. 하하하하....


누군가와 나란히 인생길을 걸어가고, 나란히 나란히 줄을 맞춰놓은 물건들을 보면 나는 기분이 좋아집니다.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인생이 즐겁습니다. 그녀가 일도, 골프도 사랑하며 행복하기를...

바라며 다시 세 번째 라운딩도 기다려 봅니다.

행복했던 날은 사진으로 남겨두며 꺼내 보는 겁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