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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리스 h Oct 06. 2023

베이글과 바꾼 와인 이라니~

줄 서는 맛...

오전 9시.

줄을 서시오.

대기표를 받으시오.

기다리시오.

참나~~


베이글이 하노이 뒷골목에

입소문을 타고 오픈한 지 한 달 즈음

모르는 사람은 전혀 모르겠지만...

아는 사람은 줄을 서서 대기할 정도다.

베이글을 사려고 몰려든 사람들...

커피맛까지 좋다는 이곳이 핫플이 될 줄이야


미딩한인타운 CT6 근처 골목길에 숨어 있다.


큰 길가를 지나 골목길을 따라 들어서야만

겨우 보이는 커다란 나무 옆 간판이  서 있다.

베이글과 커피, 음료수를 파는 곳이다.

50,000동(한화 2500원~) 아메리카노다.

착한 가격에 줄을 서는 건지도 모르겠다.


가끔 미딩 SG골프 스크린을 치러 오는 곳  

옆 건물이 공사와 수리를 마치고 나자

어느 날, 뜬금없이 이곳에 한국 아줌마들이

줄 서기를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고?


비가 오는 날까지 설마 줄 서기 한다고?

40도 육박하는 날씨에도 뜨끈한 베이글을

맛보기 위한 애씀은 계속되고 있다.

번호표를 아도 살 수 없었다고 한다.

설마... 검증을 위해 내가 사러 가기로 했다.


헐~~ 진짜다.

 

믿을 수 없는 현실에 깜짝 놀랐다.

그날그날 매진되는 베이글...

그나마 남은 베이글도 예약이 되어

팔 수 없단다. 마음이 정말 허하다.

돈이 없어 살 수 없는 게 아니고 베이글이 없다니


 나오는 시간은 오후 3시에 한번 더 있.

3시부터 번호표 나눠 줄 터이니 그때

또 줄을 서라고 한다. 기분이 별로다.

쩝쩝 입맛만 다시고 번호표는 받지 않았다.

맛이 궁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도대체 얼마나 맛이 있기에...'


줄 서기를 하여 쟁취하는 따끈한 베이글을

맛보고자 시간을 지키고, 번호표를 받아 들고

베이글을 사수하겠다는 건지... 어휴! 참내!

내 안에 숨어있던 오기가 발동했다.


베이글을 꼭 사고 말테야~

베이글 먹기 참 쉽지 않았다.

그날그날 소진되며 줄 서서 기다리는 맛을

즐기는 거라고? 런던 베이글이 핫플이 되더니

하노이 한인타운까지 들썩이고 있다.


궁금하다 궁금해!

다이어트가 뭐야? 일단 맛이나 보자.


갓 구운 베이글을 줄 서지 않고 샀다.

야채 듬뿍 들어 있는 베이글,

속 안을 감자로 채우고 치즈를 덮어쓴 베이글,

블루베리를 곳곳에 박은 베이글,

소금맛 나는 베이글까지....


입으로 먹고, 입으로 전해져 소문난

베이글 맛에 내 마음을 뺏겼다.

그래도 줄 서기는 싫고, 커피라도 한 모금

팔고 남아있는 베이글만 겨우 맛보았다.

텅 빈 바구니가 나를 노려 보았다.


줄을 서라고... 튕기지 말고...


드디어 친구와 3시 땡 번호표를 받아 들고

줄을 섰다. 1번부터 ~~ 난 16번, 친구는 17번

금세 빵이 떨어질까 봐 우린 떨고 있었다.

불안, 초조, 긴장감이... 이런 느낌 뭐지?

돌체라떼 라도... 미리 마셔두길 참 잘했다.


진짜... 줄을 서다니 ㅎㅎ 정말 신기하다.

헛웃음이 난다. 하노이에서 이런 일이...

유행 따라 입맛도 변하고 있나 보다...

줄 서기하고 나니 보상심리였을까?

베이글이 맛도 좋고, 따끈함이 맘에 든다.

줄 설만했다. 어렵게 구한 베이글

같은 종류를 2개 이상 살 수 없었다.


 바구니가 텅 비었다가 채워지고 다시

비워지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게다가 낮 3시에 아줌마들이 줄을 서다니

어쩌다 보니 그 안에 나도 서 있었다.


달러가 또다시 고공행진 중인데...

공허한 마음을 채울 수 있는 건 베이글뿐...

동그라미 속 세상은 베이글을 닮아있다.

돌고 도는 세상, 동글동글 살아가라고

수제 베이글은 바퀴처럼 동그랗게 모여 있었다.


겉은 조금 투박해도, 속은 촉촉하다.


이웃에 사는 그녀에게 나눠 주려고 오늘은

다섯 개나 샀다. 따끈하게 김 서린 베이글이

비닐봉지 속에서 숨을 쉬고 있다.

따끈한 마음을 전해보려 했는데...

베이글이 식고 나서야 그녀와 연락이 닿았다.

덜렁 두 개를 담아 배달을 갔다.

그녀는 나보다 베이글을 더 좋아한다.


그렇게 힘겹게 줄을 서서 사온 베이글을

아낌없이 그녀에게 내밀었다. 추석날

보름달을 함께 보며 소원을 빌었는데...

보름달 같이 둥근 베이글을 나눠 먹으며

하노이에서 살아가고 있다.


겨우 베이글 두 개를 전달했을 뿐인데...

그녀는 들어온 와인이 많이 있다며...

와인을 3병이나 선물로 주는 게 아닌가?

주는 게 더 좋은데...

받으려니 부담이... 되었다.

와인 선물


추석 지나 베이글 두 개와 맞바꾼 와인 3병이

나란히 나를 내려다본다. 줄 서기 만큼이나

세상은 뭔가를 쉽게 주지 않지만 좋은 이웃은

넉넉하고 푸근하게 빈마음을 채워주기도 한다.


줄을 서지 않아도 괜찮소.

번호표를 지 않아도 된다오.

보름달 닮은 베이글을 내가 전해 주리다.

그리고 나는

와인잔에 찰랑찰랑 넘치는 사랑을 듬뿍 받았소

베이글처럼 동그랗게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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