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는 나의 남동생이었지만 우리는 종종 다니를 여장시키기도 했다. 어려서 눈망울이 크고 똘망똘망한게 귀엽기도 했고, 남자아이라고 핀을 꼽지 못하고 치마를 입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싶었다.
어디서 찾아냈는지 어릴 때 입던 한복 치마를 입히고 머리 장식을 달아주었다. 집에 돌아온 할머니가 보고 경악하자마자 혼날 것을 직감한 우리는 냅다 다락방 집으로 도망가기도 했다.
다니가 좀 더 큰 뒤에는, 그러니까 걸어 다니고 어느 정도 말을 할 수 있게 된 4살 즈음에 우리는 공연을 즐겨했다. 4명의 서커스단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연례행사였는데, 어른들의 생일이나 기념일에 축하를 해줘야 한다고 뜻을 모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돌아가면서 진행을 맡기도 하고, 진행 순서에 대해서도 공지를 했다. 행사를 기획하는 것은 시간이 걸렸고, 완벽하기 위해 여러 번 논의를 해야 했다. 물론 그것도 놀이의 일종이었다.
이층 집과 다락방 집의 어른들 모두를 불러다 거실에 앉혀놓고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쪼로록 나이 순서대로 지나가며 인사를 했다. 텔레토비 흉내도 냈다. 나이 순서대로 지니 언니가 보라돌이, 내가 뚜비, 무니가 나나, 다니가 뽀 역할을 했다. 그저 안녕~하며 손을 흔들고 지나가는 게 뭐가 그리 대단한 공연이라고, 40분이 넘어가자 어른들은 좀이 쑤시는 듯했지만 우리는 몰랐다.
어디서 넌센스 퀴즈 같은 것도 알아와서 문제를 내었다.
“어부들이 가장 싫어하는 연예인은?”
“배철수. “
고모부가 유독 잘 맞췄다. 어느 날 바쁜 일정으로 인해 공연시간을 30분으로 단축하겠다고 공지하니 어른들이 엄청 좋아하셨다.
몇 년 뒤 우리 가족들뿐만 아니라 외부인들이 있는 자리에서 마지막 공연을 하였고, 우리는 그만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