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깊숙한 시골 안쪽이었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생필품이나 먹을 것을 사려면 차를 타고 밖으로 나가야 했다.
여기저기 마실을 돌던 할아버지가 걸어서 15분 거리에 동네 작은 슈퍼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셨지만, 가는 길이 매우 어려웠다. 논밭을 건넌 뒤 오른쪽으로 갔다가, 왼쪽으로 갔다가, 어느 모퉁이를 돌아섰다가.. 아무리 알려주어도 내 머릿속에서는 지도가 그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곳을 가는 것은 어쩌다 한번 할아버지와 사촌들을 이끌고 가는 대모험의 길이 되었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논과 논 사이에 불룩하게 다져진 흙길이 또 다른 놀잇감이 되었다.
그 길은 그간 자전거를 타고 다니던 흙길보다 훨씬 더 울퉁불퉁하고 좁았으며, 진흙이 엉켜있는 길이었으므로, 신발이 더러워질 것도 각오해야 했고 중심을 잡기 위해 두 팔을 벌리곤 집중해서 걸어야 했다.
그 날 입은 치마가 생각난다. 긴 치마에 끝자락이 나풀거리는 짙은 자주색이었다. 자전거를 끌고 가는 논길이 험난했다. 논두렁을 벗어나 평평한 도로가 나오자마자 지니 언니에게 맡겨두었던 자전거에 올라탔다. 그 길만 아니면 자전거 타고 이 마을까지 다녀볼 수 있을 텐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장벽에 가로막혀 좀 더 넓은 곳까지 놀러 다닐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도란도란 이야기 소리를 내며, 허리가 굽은 할아버지를 선두로 쪼르르 따라가는 여자아이 세 명과 남자아이. 어린 다니는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걸어갔다. 주변이 온통 논밭이던 이층 집과 다락방 집 주변과 달리 단순하고 아기자기한 집들이 하얀 길가를 따라 쪼로록 세워져 있었다.
그런 마실을 나가는 것이 좋았다. 할아버지는 이 길을 그렇게 혼자 걷곤 했던 걸까.
그 날 저녁엔 이기적인 행동을 했다고 혼이 났다. 불편할 땐 짐을 맡겨두고 편할 땐 다시 가져가는 것은 이기적인 행동이었다. 부모님과 다닐 땐 당연하게 하던 행동들이, 또래라는 대상에겐 당연하지 않은 행동이었다. 어릴 때는 생각의 범위가 타인의 입장까지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불편한 만큼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듣고 나서야 나는 그 입장을 되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