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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MMUOVERE Jan 16. 2018

새 겨울

11th, January, 2018.

ⓒcopyright by hyobin 별모래, all right reserved.



몇  달 전, 내 방 창문에 암막 필름을 붙여 놨다. 방이 밝으면 커다란 모니터에 내 자신과 방이 그대로 비춰  작업하기 힘들었던 점이 첫 번째 이유, 두 번째는 불면증이 심한 나는 밤을 지새우고 해가 뜨고 나서야  자는 일이 빈번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방은 햇살이 쨍쨍한 날에도, 흐린 날에도, 아침에도 밤에도 빛의 구애 없이 언제나 어둠 그 자체였다. 





나는 그 어둠을 즐겼다. 밝은 낮에도 창문을 열지 않았고, 2중으로 되어있는 블라인드와 커튼으로 창문을 꼭꼭 숨긴 채, 캔들 홀더의 얕은 주황빛만이 구석에서 빛나고 있는 그런 내 방을 사랑했다.





며칠 내내 눈이 와 귀가 아릴 만큼의 추위가 엄습한 오늘, 나는 창문을 활짝 열었다. 조금은 빛이 바래버린, 하얀 체크무늬의 커튼을 떼 내어 세탁기에 돌려버리고 블라인드도 끝까지 올려버렸다. 방은 순식간에 환해졌다. 창 밖 풍경은, 추운 날씨에 비해 너무나도 따듯했다. 매일 지나는 집 앞, 매일 보는 풍경이지만 내 세상이 아닌 것 같은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다. 앞 집 옥탑방의 빨랫줄이 옅은 아침 바람에 흔들리고, 기와 사이사이 녹지 않은 눈이 하얗게 코팅되었다. 하늘엔 드문드문 몽실한 구름이 여유롭게 흘러가고 있었고 햇빛이 기와집들에 생생한 명암을 불어넣었다. 새들은 여기저기서 신나게 짹짹 거렸고, 단단하게 얼어있는 고드름들이 저마다 다른 모양으로 겨울 풍경을 완성시키고 있었다. 




멍하니 창밖을 보며 아름답다는, 따듯하다는 생각을 한다. 어둠에만 갇혀 있던 난, 아니, 스스로를 어둠 속으로만 밀어 넣었던 나는 왠지 모를 슬픔과 부끄러움을 느낀다. 대상이 없는 그리움이 진하게 느껴진다. 여러 잔상들이 떠올랐다가 새들의 울음소리와 함께 아련하게도 희미해져 간다. 뒤를 돌아 다시 내 방을 보니, 햇빛으로 밝아진 방엔 그 빛이 무색해져 버린 캔들 홀더의 옅은 빛과 이루마의 chaconne, 그 연주곡의 선율만이 잔잔히 흘러나올 뿐이었다. 시린 겨울, 파란색 혹은 무채색인 줄만 알았던 겨울에서 따듯한 색들이 피어난다. 어릴 적, 눈싸움을 하다 호호 불던 붉게 부르튼 손, 한겨울에도 추운 줄 모르고 운동장을 뛰 놀며 빨갛게 달아오르던 코끝과 볼, 뭐 그런 색이 떠오른다. 그 대조되는 두 색 사이에서 복잡한 마음을 가득 안은 채 내 방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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