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질 듯한 심장박동과 쏟아지는 땀, 이겨내고자 하는 욕망과 승부욕은 청춘의 열정과 성장을 대변하는 것이고, 우리는 각자 좋아하는 스포츠에 열광하면서 아직 내가 늙지 않았다고 믿는다.
청춘을 상징하는 것이 땀과 노력이다 보니 필연적으로 스포츠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어릴 수밖에 없다.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주인공 나희도(김태리 분)는 고등학생 펜싱 선수이다. 드라마 <역도 요정 김복주>의 모든 주인공들 역시 풋풋한 대학생들이다. 그 유명한 농구 드라마 <마지막 승부>의 주인공들도 마찬가지다. ott 플랫폼이 많아졌다는 것은 작가를 꿈꾸는 사람에게, 나의 작품을 다양한 형태로도 보여줄 수 있다는 것과 동시에 집에서도 손쉽게 30여 년 전의 작품을 접하며 공부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마지막 승부>가 그런 작품이고, <질투>, <별은 내 가슴에>, <모래시계> 등 고전 명작이라 불리는 작품을 노트북과 와이파이만 있으면 즐길 수 있는 건 확실한 행복이다.
웰메이드 드라마라 칭찬받으며 진심을 다하는 것이 얼마나 멋있는 것인지 알게 해 준 드라마 <라켓소년단>의 주인공들은 대학생도, 고등학생도 아닌 중학생이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금메달만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늘 1등만 기억한다. 어쩔 수 없다. 모든 노력이 소중하다고 배웠지만, 현실에서는 딱히 그렇지도 않다. 뚜렷한 결과를 내지 못하면 결국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버리는 경험을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이 했다. 좋아서 하는 일과 잘해서 하는 일의 간극이 우리는 너무도 힘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드라마는 더욱 소중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중학생들은, 그저 승부욕에 불타 싸우기도 하고, 자신의 재능에 의심도 품지만 마침내 나뿐만 아니라 각자의 마음에 배드민턴에 대한 열망이 가득하다는 걸 확인하고, 한 팀으로 성장한다. 아이들은 스스로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그것을 '잘 해내려' 노력하며 성장한다. 지독한 현실을 반영한 드라마와 찬란한 희망을 그려낸 드라마 중 이 드라마는 단연 후자이다. 나태하고 사악한 어른들 틈에서 아이들은 진정한 열정이 무엇인지 깨달아 가며 드라마를 보는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주인공들이 학생이 아닌 스포츠 드라마가 있는데, 바로 단 2회 만에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스토브리그>이다.
(SBS/극본 이신화 연출 정동윤/남궁민, 박은빈, 오정세 주연)
2019년에 방영을 시작해 2020년도에 끝난 이 드라마는 탄탄한 대본이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는지 알려준 작품이었다. 시청자와 주인공들이 한 편이라는 소속감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 스포츠 드라마의 승리 요인이라면, 말했듯이 이 드라마는 단 2회 만에 성공했다. 초반에 주요 사건을 몰아치며 시청자들이 주인공 백승수(남궁민 분)의 편이 되게 만든다. 승수는 차갑고 냉정한 사람이지만, 으레 이런 인물들이 꼭 그렇듯이 내면에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양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매력적인 인물이라는 뜻이다.
승수는 첫 면접 자리에서 드림즈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콕콕 집어내며 시청자에게 쾌감을 안겨준다. 패배에 익숙해진 팀과 그런 팀을 바라보는 분노한 팬들의 대변자가 되었다고나 할까. 언제나 선수의 성장이 중심이 되었던 여느 스포츠 드라마와는 다르게, <스토브리그>의 주인공은 선수가 아니다. 새로 부임한 단장과 운영팀장을 중심으로 프로 팀이 어떻게 구성되고 굴러가는지를 보여주는 드라마이다. 외국인 선수 영입과 트레이드, 연봉 협상 등 비시즌에 일어나는 일들을 그려내면서 시청자로 하여금 진짜 드림즈의 일원이 된 기분이 들게 하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 팀이 강해지기를 기원하게 된다. 한국 드라마에서 빠질 수 없다는 로맨스가 빠진 이 드라마는 톱스타 없이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고, 배우 남궁민에게 연기대상을 안겨 주었다.
'스토브리그'는 야구에서 한 시즌이 끝나고 다음 시즌이 시작하기 전까지의 기간을 뜻한다. 새로운 계약이나 트레이트 등을 통해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기간인데, 야구가 없는 추운 겨울 동안에 야구팬들이 스토브(stove), 즉 난로 앞에 앉아 다음 시즌이 어떻게 될 것인지 이야기하는 모습이 마치 실제 야구 경기만큼 뜨겁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만큼 스포츠 경기와 팬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의 학창 시절 관심사는 오롯이 농구였다. 농구선수를 연예인처럼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난생처음으로 플래카드를 만든 것도 아이돌 가수 때문이 아니라 농구선수 때문이었다. 빠 중에 제일 진정성 있는 것이 얼빠라고, 그때는 잘생긴 농구선수와 결혼하는 것을 꿈꾸기도 했다.
그때가 나의 스토브리그였을까.
나의 찬란한 다음 시즌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었을까.
누구에게나 그런 시기가 있다. 다음을 위해 준비하는 시기 말이다. 스포츠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대체로 바로 지금이 그런 순간들이다. <역도요정 김복주>의 복주(이성경 분)와 준형(남주혁 분) 역시 다음 올림픽을 위하여 갈고닦고 있다. 라켓소년단 주인공들도 마찬가지다. 마지막 회가 되어서야 겨우 고등학생이 된 주인공들은 매일 더 큰 목표를 위해 훈련하고 서로를 응원한다.
내 인생의 스토브리그는 이미 지난 건지도 모른다. 나는 더 이상 20대가 아니며 종종 결혼은 언제 하냐는, 나도 답을 알 수 없는 질문들을 받곤 한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배움을 쉬지 않는다면 언제나 청춘이라고 말하지만, 그러기엔 나는 너무 바쁘고 피곤하다. 나이 후려치기가 너무도 심한 우리나라에서 객관적으로 나는 더 이상 청춘의 대열에 합류할 수 없다는 걸 느낀다. 나의 20대는 왜 기억할 만한 것도 없이 다 사라져 버린 건지 암담하다.
그렇지만 나의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었다. 늘 피곤하고 할 일이 많았으며 걱정거리는 더욱더 많았지만, 그 와중에도 나는 올림픽에 열광했고, 나와 일면식도 없는 국가대표 선수의 금메달에 울컥했다. 기분이 안 좋을 때는 언제나 농구 스케줄을 확인했고, 내가 응원하는 팀의 승패에 민감했다. 내 인생을 몇 시즌 정도로 나눌 수 있을까. 프로 스포츠는 보통 6개월 동안 시즌을 치르고 그다음 6개월은 또 다음의 6개월을 위해 준비한다. 그동안 치러왔던 모든 시즌을 다 삭제해도 아직 많은 시즌이 남았다(어우 피곤해). 선수는 은퇴할 때 그 선수가 가졌던 진정한 가치를 알 수 있다. 나는 쉽게 은퇴할 생각이 없는 슬로우 스타터 작가이고 내가 모든 것을 그만둘 때, 난 굉장한 업적을 남긴 선수가 되리라. 그래도 인생은 9회 말 2 아웃부터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