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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작가 Aug 26. 2024

그림책 제작 도중 수정의 늪에 빠지다

완성도를 올려 한 권의 그림책을 만들다


첫페이지에서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 여러 질감을 넣고 색감을 많이 바꾸기도 하였다.



초보자들이 흔히 그림책을 처음 제작하기 시작할 때 가장 많이 하는 착각이 있다.

"그냥 스토리 어느 정도 쓰고 16면에 적절히 그림 배치해서 그리면 그림책을 쉽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어떤 분이 "그림책으로 N잡러 되기, 그림책으로 부업하기"로 강연을 하고 펀딩을 하여 그림 작가 지망생들이 이러한 홍보 문구에 혹하여 다 달려드는 일이 발생했다.

인쇄나 감리 과정 없이 그림책을 전자책으로 변환하여 업로드해서 판매하면 누구나 그림책을 수월하게 만들어서 출간할 수 있기는 하다. 사실 흔히 굿즈나 이모티콘 제작 등 그림 부업으로 해 쉽게 돈을 벌 수 있다고 말하는 유튜브 알고리즘들로 인해 너도나도 그림을 어느 정도 잘 그리면 돈을 잘 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림에 대한 진입장벽이 낮은 분야는 수요보다 공급이 점점 많아져 내 작품은 몇 초만에 쉽게 묻힐 수도 있고 전체적으로 그림을 보았을 때 상품 가치로써 매력이 없으면 과연 구매로 이어져 수익을 낼 수 있을까? 물론 카카오톡 이모티콘은 누구나 도전할 수 있지만 승인 문턱을 넘어야 출시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카카오톡 이모티콘을 출시한다고 해서 순위가 상위권에 계속 들지 않는 이상 매출이 나온다는 보장이 없다.

그림책도 마찬가지다.  대형서점에 판매되는 수많은 그림책들은 작가, 편집자, 디자이너, 그리고 총괄자까지 열심히 협업하여 더 나은 그림책이 나올 수 있도록 수정의 늪에서 여러 시행착오들을 수년간 거쳤다.

짧으면 6개월 만에도 그림책을 제작할 수 있지만 길면 3년에서 10년도 더 걸릴 수 있다. 이렇듯 스케치부터 채색 작업까지 완료한 다음 편집을 하여 한 권의 그림책을 만들었다고 출판사에서 바로 출간을 하지 않는다.

셰프가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요리를 할 때 기본적인 레시피를 따르며 요리하기보다는 조미료를 좀 더 추가하거나 혹은 맛을 더해주는 특별한 재료들을 넣어 식감과 맛을 살리기도 하고 사진에 음식이 잘 담길 수 있도록 먹음직스럽게 보이기 위해 예쁘게 플레이팅을 하기도 한다.

그림책도 글 원고를 아이들이 좋아하게끔 재밌게 쓴 다음 이러한 글의 재미를 가미시키는 건 바로 그림책에 들어가는 그림이다. 그림책의 스토리를 글로 표현하는 것도 어렵지만 글이란 산맥을 넘은 후 그림을 다양하게 연출하여 창의적으로 풀어나가는 것도 그림책 작가들이 넘어야 할 큰 과제다.


나의 첫 창작 그림책 <크림별 선인장>이 나오기까지 1년여간의 수많은 수정을 거쳤다.

글을 쓰는 단계에서, 스케치와 채색을 하는 과정에서 수정사항은 정말 다양하게 나왔으며 채색 도중 스토리 라인을 바꾸어 그에 맞게 다시 그리고, 표지 시안 디자인도 여러 방향으로 구상하고 정말 많은 산맥을 넘었었다.


"글이 너무 길어서 필요한 부분만 남기고 압축시키면 어떨까요?"

"스케치 구도가 너무 밋밋해서 좀 더 배경이 다채롭게 보일 수 있도록 원경으로 빼서 여러 요소들을 넣어보세요."

"옷이 망가질 때 재밌는 상황과 과정들을 컷으로 연출해 보면 어떨까요? 이펙트도 함께 넣으면 좋을 거 같아요."

채색 전 스케치 과정에서는 수정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


스케치를 끝내면 가장 중요한 채색이 남았다.

스케치에서 수정사항을 다 반영하였다고 하더라도 채색을 하면 스케치만 있을 때와 다르게 그림책의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바뀌어 글 배치를 수정하기도 하고 페이지를 삭제하거나 추가하기도 한다.

"그림이 이야기 흐름에 맞게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그림 배치를 수정해 주세요."

"가게에서 옷을 망가뜨리고 왔는데 그림책은 아이들이 있는 책이다 보니 교육적인 내용도 함께 들어가야 해서 주인에게 사과하는 장면과 함께 청소하고 반성문을 쓰는 장면도 넣어주세요."

"가게들을 아기자기하게 바꾸면 어떨까요?"

"나무들과 선인장이 모두 푸릇푸릇한 초록색들로만 가득하면 단조로울 거 같아요. 선인장은 알록달록하게 칠해주시고 나무나 다른 요소들에 다양한 질감들을 추가해 주세요."


출판사에서 요청한 수정사항들은 일부분에 불과하고 사실상 모든 페이지에 다 수정사항이 적혀있을 정도로 훨씬 더 많았다. 하물며 채색을 다 완료하였어도 10페이지 넘게 수정을 하였는데 자잘한 수정사항들도 있었지만 페이지를 완전히 다시 그린 적도 있었다. 수정사항이 많이 나와 힘들 수 있었지만 묵묵히 그림책 작업을 끝까지 해낼 수 있었던 이유는 오히려 이렇게 하나하나 세세하게 신경 써 준 출판사 덕분이지 않나 싶다. 오히려 혼자서 그림책 한 권을 만든다고 다짐하면 그림책을 다 못 끝내고 혼자서 어디를 수정해야 할지 끙끙 앓다가 그만둘 수도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집자들은 내가 만든 책뿐만 아니라 다른 작가의 수많은 그림책들도 신경 써서 읽고 본다. 수많은 책들을 접하다 보니 작가보다도 책의 안목이 넓은 출판사가 책 한 권을 세상에 내놓기 위해 어느 하나 놓치지 않고 상당히 공을 많이 들인다. 1인 출판이 아닌 출판사에서 수정사항이 끊임없이 쏟아져도 겸허히 받아들이고 내가 작업할 때 있어서의 문제점이나 보완할 점들을 잘 살피며 작업에 몰두하면 어느새 그림책을 만드는 실력이 점점 발전할 수 있다고 본다.


이전에도 말했듯이 그림책을 잘 만들기 위해서는 수많은 그림책들을 읽으라고 한 적이 있었다.

여러 그림책들을 접하였으면 그림책 읽는 것으로 끝나고 그림책 만들기를 실천하지 않으면 실력은 제자리걸음이 될 수도 있다. 출판사의 선택을 당장 받지 못하였더라도 조금씩 그림책 만들기 연습을 해보면서 더 나은 그림책을 만들기 위해 한 발짝씩 나아가길 바란다. 우리가 실력을 향상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가기 위해 학원을 다녀서 몸소 배우듯이 그림책 아카데미를 신청하여 그림책을 어떻게 만들어 나가야 할지 조언을 듣고 노하우를 배우거나 혹은 출판사를 통해 책을 내는 상황이라면 그림책을 수정해 나가는 상황에서 '이렇게 하면 더 완성도 있는 그림책을 만들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며 그림책 제작을 위한 요령을 찾아나간다.


그림책 작가 지망생분들께 '그림책 한 권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도록 격려하고 싶고 앞으로의 창작 활동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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