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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멋대로 유럽(4)

밤베르크의 양조장

by 효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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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세트장처럼 느껴지는 예쁜 건물들과 골목 사이를 구경하며 밤베르크를 떠나기 전 무얼 하면 좋을까 고민했다.


그러던 중 이곳에 지역 고유 맥주를 생산하는 양조장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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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맵으로 위치를 찾아가니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두 개의 양조장이 마주 보고 있다.


각 양조장 앞에 쓰인 메뉴판을 보며 갈팡질팡 하던 나는 고민 끝에 Brauerei Fässla라는 곳을 선택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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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가게 안으로 들어섰을 때는 누구 하나 반겨주지 않고 영어 안내도 전혀 보이질 않아 몹시 주눅이 들었다.


게다가 정말로 이 마을 사람들만이 오는 곳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는데, 특히 중장년 층이 마치 계모임이라도 하는 듯 모여 앉아 웃고 떠드는 공간 속에 나 홀로 불청객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용기를 내어 직원에게 말을 걸자 그녀는 나를 다른 사람들이 앉아있는 테이블에 합석시켰다.


쭈구리처럼 한쪽에 앉아 조심스레 메뉴판을 살핀 뒤 생맥주와 소시지를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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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하게 앉아있던 것과는 별개로 맥주는 감탄이 나올 만큼 맛있었다.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생각이 날 만큼 부드럽고 적당히 쌉싸름한 정말 맛있는 맥주였다.


내 대각선 자리에 혼자 앉아 계시던 할아버지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외향적인 성격임에도 사실 낯을 가리는 나는 기를 쓰고 그의 눈빛을 모른 척하며 꿋꿋하게 맥주만 꿀꺽꿀꺽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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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어 함께 주문한 소시지와 감자튀김이 나왔는데 그 양이 무척 많아 또 한 번 기가 눌렸다.


그때 내게 계속해서 관심을 보이던 할아버지가 "Enjoy your meal."이라며 따스운 인사를 건네주셨다.


약간의 알콜 기운과 함께 그제야 긴장이 조금 풀린 나도 조심스럽게 "Danke(=Thank you)." 하며 인사했다.


할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 내게 이런저런 질문을 건네기 시작했는데, 단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독일어를 못한다는 내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분은 계속해서 내게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셨다.


나중엔 반쯤 넋이 나간 상태에서 그저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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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리를 뜨기 전 내게 기념품이라며 뮌헨의 라이터를 주었고, 코스터에 Servus라는 글자를 써 건네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독일어로 헤어질 때 건네는 인사말이라고 한다.


비록 대화는 전혀 통하지 않았지만 맛있는 맥주의 술기운과 나를 향한 그의 호의 어린 호기심으로 가슴이 뜨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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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도 나는 맥주를 두 잔 더 마셨고, 얼큰한 기분으로 양조장을 나섰다.


즐거운 밤베르크 양조장 체험을 끝마치고 다시 뉘른베르크로 돌아오자 이미 날이 어둑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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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뉘른베르크의 시내를 나는 약간의 술기운과 추위를 둘러매고 부지런히 걸었다.


다음날은 체코 프라하로 갈 예정이었기에 가서 무얼 하면 좋을지 머릿속으로 고민하며 즐거웠던 하루를 마감했다.


안녕, 밤베르크! 안녕, 뉘른베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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