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빌딩별 지하 맛집 탐구 - 매콤편
"오늘 어디 갈래?"
"도렴 꼬꼬뚝닭이나 로얄 문화수제비 어때?"
밥집 앞에 으레 붙는 이름은 그날 점심의 최종 좌표이자, 밥집이 위치한 빌딩 명칭이다.
회사가 몰려있는 업무 지구의 점심 풍경은 비슷하지 않을까?
직장인 생태계를 잘 알지 못했던 대학생 때는 광화문에 올 때마다, 생각보다 비싼 레스토랑과 체인점들 사이에서 어디 갈지 고민을 하곤 했다. 그때는 관광객들이 지상에서 식당을 찾는 동안, 직장인들의 발걸음은 빌딩의 지하 아케이드로 향한다는 것을 몰랐다.
광화문의 지하 밥집들은 보통 점심, 혹은 이른 저녁까지만 영업을 하기 때문에 오래 살아남기 위해선 맛이 우선되어야 한다. 가격도 중요한 요소다. 최근 물가가 많이 오르면서, 광화문 일대 만원 이하 밥집들이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맛과 가성비가 공존하는 곳들이 있다.
광화문 직장인 10년 차 짬밥으로 오늘은 지하 밥집들 중 대표적인 빌딩 네 곳(로얄빌딩, 도렴빌딩, 세종빌딩, 신문로빌딩)을 중심으로 구성해 보았다.
로얄빌딩
로얄빌딩은 광화문역 1번 출구를 나오면 바로 보이는 건물이다. 외관은 흰색과 민트색 벽돌로 되어있고, 1층엔 KEB하나은행이 있다. 건물이 커서 지하 아케이드로 내려가는 입구만 3곳이다.
중앙 입구로 내려오면 보이는 '평가옥'은 어복쟁반과 온반을 파는 곳으로, 로얄빌딩 지하에 새로 터를 잡았다. 규카츠와 오므라이스로 유명한 '후라토식당'도 이곳으로 이사했다. 그 외 스시 오마카세 집 오가와, 깡장집, 홍콩익스프레스, 모모카, 비어할레, 우동스테이션, 오한수 우육면가 등 다양한 종류의 식당이 있다. 오늘 소개할 곳은 '문화수제비'라는 곳이다.
대표메뉴: 손수제비 7,000원, 오징어덮밥 8,000원
오징어덮밥과 손수제비가 메인인 곳이다. 별미인 감자전이나 납작만두도 맛있다. 사장님이 직접 담그신 열무김치와 배추김치는 반찬으로 맘껏 덜어 먹을 수 있다. 매콤한 오징어덮밥을 시키면 사이드로 작은 사이즈의 손수제비도 함께 나온다. 점심시간에는 가게 밖 복도에도 사람이 넘치는데, 회전율이 꽤나 빠르고, 사장님이 매우 친절하다. 오후 1시 이후에는 감막세트(감자전+막걸리세트 10,000원)도 있으니 참고하여 방문해 보자.
도렴빌딩
도렴빌딩도 로얄빌딩과 쌍두마차를 이루는 곳으로, 가장 많은 밥집들이 다양하게 포진해 있는 지하식당계의 르네상스 같은 곳이다. 한식부터 중식, 양식까지 없는 게 없다. 외교부 맞은편에 위치해 있고 사거리에서 아케이드 입구를 찾을 수 있다.
오래된 백반집으로는 정원, 호호밥집, 제주바다 등이 있고, 오리고기와 쑥국수로 유명한 금강산, 쌀국수집 하노이, 일본가정식 멘븟, 파스타집 파스타부스, 떡볶이집 오늘의 즉떡도 많이 간다. 오늘은 도렴 닭집의 양대산맥 '꼬꼬뚝닭'과 '서촌닭갈비'를 소개하고자 한다.
대표메뉴: 닭볶음탕 (원조 9,000원, 수제비 10,000원, 카레 10,000원)
대학교 뒷문에서 먹는 닭볶음탕 맛이다. 자작자작 뚝배기에 끓여져 나오는 닭볶음탕은 주기적으로 생각나는데, 업무지구에서는 보기 힘든 맛을 구현해 내서 자주 찾는다.(칼칼한 msg맛이랄까!) 대학교 친구가 놀러 왔을 때 우리는 여기서 대학시절의 향수를 찾았다. 가게가 크진 않지만 사장님의 손이 워낙 빨라 금방금방 자리 안내를 해주신다. 종류가 많아 고르는 재미도 있는데, 나는 주로 원조나 카레 닭볶음탕을 선택한다.
대표메뉴: 철판닭갈비 10,000원, 철판쭈꾸미 10,000원
광화문에서 은근히 찾기 힘든, 귀한 닭갈비 집이다. 서촌닭갈비의 좋은 점 중 하나는 미리 예약을 하면, 사장님이 앉자마자 먹을 수 있게 준비해 주신다는 것이다.(예약번호: 02-730-2440) 닭다리살을 사용한 닭갈비와 깻잎, 양배추, 고구마, 떡 등을 양념과 함께 철판에 볶는다. 콩나물국이 제공되며, 치킨무와 옥수수콘을 기본 반찬으로 주신다. 마지막에 볶음밥을 해먹을 때는 남은 옥수수콘을 같이 볶아먹는 센스를 발휘해 보자!
세종빌딩
세종빌딩은 로얄빌딩 옆에 위치한 건물로, KMI건강검진센터가 있는 건물이다. 1983년 설립되어 지하 아케이드 중에서도 비교적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는 곳이기도 하다. 오징어야채를 볶아주는 석정, 소국밥집, 육회비빔밥, 세종슈퍼 같은 곳들이 있는데, 해장하기 좋은 메뉴들을 소개한다.
대표메뉴: 오징어야채+볶음밥= 10,000원
로얄빌딩에 오징어덮밥이 있다면, 세종빌딩엔 오징어야채볶음이 있다. 직접 철판에 볶아야 하는 수고로움은 있지만 가끔 매콤한 불맛이 생각날 때 가면 좋다. 오징어 위로 콩나물이 수북이 쌓여 나오는데, 숨이 죽을 때까지 열심히 볶아줘야 한다. 함께 나오는 공깃밥은 반정도 남겨두었다가 마지막에 볶음밥을 해 먹으면 좋다. (메뉴판엔 없지만 사장님께 얘기하면 참기름과 김가루를 뿌려주신다.)
대표메뉴: 부대찌개 9,000원, 계란말이 8,000원
광화문에서 유명한 부대찌개 집으로 '송백'이 있다. 1987년도부터 장사했으니 이곳에서 30년 넘게 잔뼈가 굵었다. 도렴빌딩과 세종빌딩 두 곳에 위치해 있는데 같은 집이다. 부대찌개 재료는 꽤나 심플하다. 콩나물과 햄과 소시지가 주재료로 시원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라면을 넣고 펄펄 끓여 먹으면 되는데, 라면과 공깃밥이 무한리필이다.
대표메뉴: 라면 3,500/4,000원, 김밥 3,500원
언뜻 슈퍼처럼 보이는 이곳은, 봉지라면을 고르면 사장님 부부가 즉석에서 직접 라면을 끓여주는 곳이다. 계란을 함께 풀어주시고, 꼬들면/퍼짐면의 조절도 가능하다. 라면과 곁들여 먹을 수 있는 김밥은 추가로 구매 가능하고, 김치와 단무지가 제공된다. 라면은 짜파구리(짜파2+너구리1), 짜구리(짜파1+너구리1), 짜불(짜파1+불닭1)과 같은 콤비네이션 메뉴도 있다. 새벽 6시 30분에 문을 열기 때문에 출근 전 이른 아침 잠시 들려도 좋을 곳이다.
신문로 빌딩
신문로 빌딩 지하에는 밥집이 많지는 않지만, 알짜 밥집들이 있어 보너스로 소개한다. 세종빌딩 맞은편에 위치해 있으며 1층에 야마야가 있고, 지하에는 '영양버섯칼국수, 한정식 돌담집, 일본라멘 시미즈'가 있다.
대표메뉴: 우렁쌈밥 9,000원, 제육쌈밥 9,000원
둘이 간다면 우렁쌈밥, 제육쌈밥을 하나씩 시키면 된다. 인근에서 가장 아낌없이 쌈이 나오는 곳이다. 뚝배기에 끓여 나온 우렁된장은 잘 비벼서, 상추 위에 밥 한 숟갈, 우렁된장 한 숟갈, 제육 하나 얹어 싸 먹다 보면 밥 한 공기가 뚝딱 사라진다.
대표메뉴: 버섯영양칼국수+볶음밥 9,000원
추운 겨울 생각나는 칼국수 집으로, 버섯이 정말 많이 들어간다. 매일 손반죽한 생면으로 칼국수를 만들고, 별미는 역시나 마지막에 볶아먹는 밥이다. 어느 정도 칼국수를 먹고 나면 직접 볶아주시는데 밥에 얼큰한 양념이 잘 베어 들어 맛있다.
세종빌딩(1983년), 도렴빌딩(1984년), 로얄빌딩(1985년) 모두 30년이 넘은 오래된 빌딩들이다. 지하 아케이드들은 30년 넘게 이곳 광화문 직장인들과 함께 해왔다. 스트레스 받을 때는 매콤한 게 생각난다던데, 쓰다 보니 얼큰한 밥집 특집이 되었다.
일도 중요하지만, 직장인에게 건강한 밥 한 끼는 매우 중요하지 않은가. 이 글이 작게나마 소중한 점심시간을 맛있게 채울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