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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hyun Hwang Nov 19. 2018

첫눈 감상

출근길 정류장 맞은 편, 붉은 기운 가득하던 나무가 허무한 모습을 드러낼 때, 문득 깨닫게 되는 가을의 끝물. 대개 끝물은 그 초라함으로 사람의 시선을 끈다. 재래 시장의 끝물이나 백화점 세일의 끝물도 그러하다. 좌판에 몇개 남지않는 상품은 반에 반값 신세 아닌가. 겨우 메달려 있는 나뭇잎 몇개의 신세도 그와 다르지 않아서 가을인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훌훌 털어버리고 후다닥 제 갈길을 가는 것이다.


찬바람은 우리를 잠에서만 깨우는 것이 아니다. 서서히 한해를 정리할 시간이 되었음을 알려주는 것도 정신을 번쩍 들게하는 만추의 새벽 공기다. 잘한 것은 잘한 대로, 아쉬운 것은 아쉬운 대로, 정리의 시간에 이르게 되면 욕심은 뒤로 물리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내가 지금 털어버려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몸속 깊이 간직하여 새봄이 오면 틔어야할 것은 또 무엇인가.


가을은 난데없는 폭설에 온다간다 말도 없이 끝나버렸다. 미련을 잘라버리는 이런 깔끔한 마무리라니. 순환은 자연의 책무지만 눈을 치워 길을 내는 것은 내가 해야할 일이다. 하얗게 내려앉아 포근하게만 보이는 이 눈은 아직 가을을 끝내지못한 지열에 녹아 질척거린다. 그렇구나. 미련이라는 것의 본성은 질척거림. 신발을 뚫고 들어오는 물기가 양말을 축축하게 적셔오는. 그러니 미련은 짧을수록 좋다.


눈 사이 길을 내는 삽을 퍼 올린다. 눈에 덮여 보이지 않던 낙엽 여남은개가 삽 끝에 메달려 나온다. 아 거기 낙엽이 있었지. 인연이란게 억지로 끊는다고 끊어지는 것이 아니구나. 미련이란 그런 것이다. 모질지 않고서야 짧을 수가 있겠나. 그러함에 인생이 모진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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