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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hyun Hwang Feb 25. 2019

Central Park Half Marathon

2019. 02. 24

밤새 비가 내렸다. 거의 시간 단위로 잠을 깨서 일기예보를 보지만 구름 이동이 더딘지 비는 오전내내 내린단다. 그 참. 국민학교때는 어찌 알고 소풍날에만 비가 오더니. 기온은 시간이 지날 수록 올라간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우유에 미숫가루를 타서 요기를 대신했다. 속이 허하면 쉬 지칠 것 같아서다. 지난번 달리기에는 아침에 떡을 먹고 갔다가 뛰는 도중 조금 불편했던 기억이 있다.


이런 날은 복장 맞추기가 참 곤란하다. 기온이 40도 전후이니 그렇게 추운 날씨는 아니다. 게다가 달리는 도중에 체온이 상승할테니 두꺼운 옷을 입을 필요가 없다. 그런데 비가 문제다. 웃도리는 진작에 결정했다. 안에 보온 기능성 옷을 하나입고 그 위에 대회 셔츠를 입으면 될 것 같다. 하지만 아랫도리는 어쩔 것인가. 반바지를 입어야 하나, 긴 바지를 입어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대회용으로 사놓고 한번도 안입기는 아까와서 긴바지를 입기로 했다.


달리는 차창으로 비가 후두둑 한다. 골치 아프네 하면서 일단 갈 데까지 가보자는 심정으로 악셀레이터를 밟는다. 일요일 아침, 집에서 센트럴 파크까지는 2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9시 출발에 맞춰 넉넉하게 8시에 집을 나섰다. 비를 맞는 허드슨 강은 고요하다. 바람이 꽤 분다는 예보인데 아직까지는 나쁘지 않다. 신발이 비에 젖을텐데, 모자를 썼지만 결국에는 머리가 젖겠지, 안경에 서리가 끼면 사진발이 안나올거야, 1시간 50분 안에 뛸 수 있을까, 오만 잡생각을 하면서 달리는데 갑자기 빨간 미등 행렬이다. 아차! 얼른 GPS 정보를 보니 하필이면 내가 빠져나갈 출구 직전에서 교통사고다.  


15분 지각했다. 96가 신호등이 5초인 것을 보고 전속력 질주. 도대체 이런 준비운동이 어디 있나. 공원내로 뛰어 들어가 출발점을 찾는데 누군가가 저기라고 알려준다. 스탭들이 이미 철거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내가 꼴찌로 출발한 것이다. 거진 500미터를 전력 질주했으니 초반 컨디션 조절 실패. 시작도 전에 숨이 턱에 차서 헐떡거렸지만 얼른 따라잡아야겠다는 욕심에 오버페이스. 센트럴 파크가 겉으로 보기에는 평지 같아도 실제로는 언덕이 제법 있다. 깔딱고개인 셈이다. 비는 출발 조금후 그쳤다. 바람이 간간이 불었지만 달리기에 불편한 정도는 아니었다. 13마일 표지판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갑자기 젖먹던 힘이 솟구쳐 올랐다. 기록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으나 우여곡절에도 무사히 완주.


피니쉬 라인 근처에서 사람들이 은박지를 뒤집어 쓰고 있다. 달리기 후 급작스런 체온 저하를 염려한 주최측에서 완주자들에게 나눠준 방한용 홑겁데기 덮개이다. 나도 하나 받아서 망또처럼 걸쳤다. 종이같은 이 덮개가 의외로 보온 효과가 있어서 놀랐고, 이런 세심한 배려에 고마왔다. 완주 메달과 함께 덤으로 노란 털모자도 하나 받았다. 내 핏빗은 21.1KM가 아니라 21.8KM를 뛰었다고 알려준다. 힘든 이유가 이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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