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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hyun Hwang Aug 01. 2018

1994년, 2018년

폭염과 혹한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무엇이 더 나을까? 더워 죽겠다 라고 말하지만 사실 더워서 죽는 경우는 흔치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추워서 죽는 경우는 비교적 흔하다. 그러니 생존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폭염이 혹한보다 선택받을 확율이 더 높을 것 같다. 내친구 이정모 관장의 포스팅을 보니 세계 평균기온이 가장 높았던 20년을 뽑으면 1998년부터 2018년 여름이라고 한다. 1999년은 이 20위에서 빠졌다. 21세기 들어서 기온은 계속 올라가는 것이 데이타로 증명된 셈이다.


대학교 신입생 때의 일이다. 강의실 보다는 대강당에 있는 동아리 방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때 한 선배가 위와 비슷한 질문을 하는 것이다. 여름이 좋나, 겨울이 좋나. 글쎄,,, 여름보다는 그래도 눈도 내리고 군고구마도 구워먹고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서 책이나 볼 수 있는 겨울이 좀 더 낫지 않나 싶어 겨울이 좋다고 대답했다가 한동안 정신교육을 받아야만 했다. 집도 절도 없는 사람들은 그나마 여름이 좀 살만하다고 하는 것이 그 선배 교육의 요체였다. 이 정신 교육이 좀 사상적 편향이 있기는 했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어서 나는 그때 이후 겨울이 더 좋다는 말은 가급적 삼가하는 편이다.  


올해 우리나라의 폭염은 기록적이다. 신문을 보면 1994년 이후 최고라고 한다. 94년 여름의 폭서는 경험하지 못해 그게 어느정도 였는지 잘 모른다. 그 해에 내가 연수차 미국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94년의 더위가 내 평생을 따라다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둘째를 6월에 출산하고 산후 조리를 하던 집사람이 여름 내내 얼음을 입에 달고 살았다는 이야기를 지금도 계속하기 까닭이다. 그 94년 기록을 깰 정도라니 나는 올해 더위보다 내가 겪지 못한 94년 더위를 비로소 실감할 수 있겠다.


그 무더운 여름에 태어나 유랑하는 애비를 따라 북경으로 보스톤으로 뉴욕으로 떠돌던 둘째가 이번주부터 새로운 길을 간다. 욕심도 많고 승부욕도 강하고 자존심도 쎈 아이다.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교까지 둘째를 가르친 분들로부터 한결같은 평가를 받은 아이다. 바쁜 와중에도 아파트를 얻고, 가구를 장만하고, 차를 구입하고 그렇게 차근차근 준비를 마치고 지난주에 집을 떠났다. 아마 이제 다시 우리집으로 들어올 일은 없을 듯 하다. 그나마 멀지 않은 곳이라 주말이면 브런치 정도는 같이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게 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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