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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민 Aug 07. 2021

러시아 유제품, 말라꼬 두 번째 이야기

여기는 당분간, 러시아

러시아 사워크림 스메따나, 버터 그리고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은 너무 사랑스러우니까 두 번 말하기)


아이스크림에 얽힌 임신 스토리로 시작하려 한다.


올해 2월 중순, 임신 소식을 알게 됐을 때 남편은 한국에 없었다. 이미 러시아로 떠난 뒤였다. 임신 소식은 보이스톡으로 전했고, 이후 산부인과는 혼자 다녔다. 밥도 대부분 혼자 먹었다. 코로나 때문에 자율 재택근무 시기였는데, 주 7일 혼자 밥 먹기가 너무 힘들어서 나중엔 팀장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회사를 나갔다. 사무실에 가면 적어도 점심밥 같이 먹을 사람이 있으니 말이다.


임신 8주 차, 입덧이 시작됐다. 임신 유경험자 친구들이 입덧이 24시간 내내 숙취를 겪는 것 같다고 해서 보통 고통스러운 게 아니겠구나 각오는 했지만, 막상 내가 그걸, 그것도 혼자서 견뎌내려니 생각보다 더 짜증 나고 우울했다. 끼니때마다 배는 고픈데 딱히 먹고 싶은 건 없고, 꾸역꾸역 뭐라도 입에 넣으면 몇 숟가락만에 입맛이 싹 사라지고, 머리도 아프고...


그러기를 며칠 하다가, 입덧이 숙취 같은 느낌이라면 입덧 해소에 숙취 해소 방법도 통하지 않을까 싶어서  나의 오랜 숙취 해소 메이트 아이스크림을 사다 먹었는데, "이거다" 싶었다. 스크류바 하나를 맛있게 먹어치우고, 그때부터 밤만 되면 아이스크림을 사다 먹었다. 혼자 터덜터덜 편의점에 가서 매일 종류를 바꿔가면서.


그래도 남들 이야기 들으면 내 입덧은 심한 편도 아니었던 듯하다. 먹는 족족 다 토해버리는 사람들도 허다하다니 말이다. 힘든 기간도 한 달 정도만에 끝났다. 하지만 입덧이 잠잠해진 이후에도 이른바 '땡기는 음식'은 하나도 없었다.


한밤중에 갑자기 신림동 순대곱창이 먹고 싶었다, 한 겨울에 복숭아가 그렇게 땡기더라...

친구들을 보면 기상천외한 입덧 음식에 대한 추억이 있는데, 난 1000원짜리 한 장이면 언제 어디서든 사 먹을 수 있는 아이스크림을 제외하고는 딱히 먹고 싶은 음식이 없었다.


배 속에 아기가 날 위해서 먹고 싶은 것을 참아줬나 싶기도 하다.


"뭐가 먹고 싶은들, 엄마가 사다 먹어야 하니까 그냥 참고 편의점 아이스크림이나 먹자"

이렇게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혼자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훌쩍인 적도 있었다.


모스크바에 와서 입덧 투정할 남편을 만났지만, 우리 아기는 이미 음식에 대한 욕심을 버린 건지 여전히 아이스크림이면 만족해한다.

그래서 남편이 너무 얄밉다. 힘든 임신 초기에 말 그대로 '바다' 건너 불구경' 하다가, 그 시기 다 겪어낸 나와 아기를 만나 아주 가끔 집 앞 마트 가서 아이스크림만 사 오면 되는 세상 편한 예비 아빠. 타고난 상팔자다.


아직도 입덧 생각을 하면 코 끝이 찡하지만,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 한국에 있을 때처럼 서글프지는 않다. 무임승차자이긴 하지만 남편이 곁에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모스크바 아이스크림이 너무 맛있기 때문이다.



먼저 마트 아이스크림!

유제품이 맛있는 나라라서 대부분은 밀크 아이스크림이다. 이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80 루블 짜리 초콜릿 아이스크림! 우리나라 아이스크림으로 치면 '누가바'와 비슷한 모양인데, 은박지로 시크하게 대충 두른 포장지가 인상적이다. 러시아 국민 아이스크림이라고 한다.

살짝 언 초콜릿은 언제 먹어도 정답이지만, 고소하고 진한 우유 속살이 없었다면 이 아이스크림이 이다지도 매력적이지는 않았을 거다.



마트를 벗어나 시내에 놀러 나가면, 곳곳에서 '모로줴나에(мороженое)'라고 적혀있는 아이스크림 끌차를 볼 수 있다. 이런 끌차에서 파는 아이스크림 모양은 대부분 비슷한데. 바삭한 과자에 주먹만 한 아이스크림을 턱 얹어준다.

사실 대단히 인상적인 맛은 아니고, 옛날 학교 앞 문방구에서 사 먹었던 200원짜리 본젤라또 아이스크림 맛인데, 어릴 적 생각이 나서인지 먹고 나면 왠지 신이 난다.


러시아 여행책, 블로그마다 적혀있는 모스크바 여행 코스 '굼 백화점'(크렘린 궁전, 성 바실리 성당이 있는 붉은 광장에 위치한 120여 년 된 모스크바 대표 백화점)의 100 루블 짜리 멜론 아이스크림.  


모스크바 대학 앞, 탁 트인 전망으로 유명한 참새 언덕의 아이스크림 끌차의 땅콩 아이스크림. 여기 건 150 루블이다.



어떻게 보면 참 올드하고 유치한 모습이다. 유기농 젤라또가 인기를 끄는 우리나라에서 이런 아이스크림을 팔았다가는 당장 망할지도 모르겠다. 불량식품처럼 보인다고 부모님들이 아이에게 안 사줄 수도 있고.


하지만 철없는 아이들에게나 어울리는 이 아이스크림을 먹다 보면 어지러운 생각들이 잠깐 사라지고 '아, 달다' 단순 명료한 감상만 남는다.

어쩌면 이게 바로 힐링. 모스크바 아이스크림은 어른들을 위한 걱정 인형 같다.




다음은 스메타나와 버터 이야기.

중앙유럽과 동유럽에서 먹는 사워크림의 일종인데, 러시아에서는 우리나라 고추장 같은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펠메니라는 러시아식 만두에도 찍어 먹고, 보르쉬 같은 수프에도 넣어 먹는다. 무엇보다도 러시아식 크레페 '블린'에 얹어먹으면 꿀맛이다. 고백하자면... 난 그릭 요거트 같아서 종종 숟가락으로 퍼먹기도 한다.


생긴 것도 요거트처럼 생긴 스메타나



러시아에는 버터가 없다. 적어도 나는 못 봤다. 믿기 힘든 이야기지만 정말이다. 대신 '버터밀크'라는 게 있다. 사실 지금껏 '버터밀크'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처음엔 버터밀크가 내가 아는 버터겠거니 하고 사서 썼는데, 색깔부터 내가 아는 노리끼리? 노르스름과 거리가 멀었다. 버터를 세탁기에 몇 번 돌린 것처럼 희뿌옇다고 하면 맞을 것 같다. 맛도 버터보다 훨씬 더 가벼워서 오히려 마가린 맛에 가깝다.

이상해서 찾아보니 버터밀크는 버터를 만들고 남은 액체에 효모를 넣어 굳힌 것이라고 한다.

고깃국 건더기는 다 뺏기고 고기 향만 간신히 나는 국그릇을 받아 든 것처럼 뭔가 억울한 느낌이었는데, 이 버터밀크가 버터보다 지방도 적고 유익균도 많아서 건강에는 더 좋단다. (그래도 난 고깃국 건더기가 먹고 싶은데...)


우유가 부족한 나라도 아니고, 왜 버터가 아닌 버터밀크가 대세가 됐는지는 아직 미스터리인데, 이건 조만간 러시아 현지인에게 물어보고 다음 글의 '덧붙임'으로 적는 것으로...


유제품 이야길 이렇게 길게 늘어놓다니, 해도 해도 너무한 TMI / 안물안궁이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환경, 사람, 언어가 모두 낯선 이곳에서 이들의 먹거리를 하나하나 뜯어보면서 나는 이곳에 조금씩 적응해가고 있다.


이 사람들은 어떤 맛을 좋아하는지, 왜 좋아하는지, 무엇을 먹고 스트레스를 푸는지, 가족의 식탁에는 무엇이 올라오는지... 그런 것들을 알아가다 보면 어느새 이방인 티를 꽤 벗은 나를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덧붙임

스메타나로 만들어 본 컵케이크 레시피


스메타나가 너무 맛있어서, 빵 만들 때 넣어봤는데 달지 않고 촉촉한 게 꽤 괜찮았다.

물론 손재주가 좋지 않은 편이라 마구 홍보할 수준의 레시피는 아니지만, 스스로 기억도 할 겸 올려본다.


재료 :

밀가루 중력분 100g

통밀가루 50g (나름 건강을 생각하겠다는 의지),

버터밀크 30g(버터밀크는 버터보다 수분이 많아서, 베이킹 레시피에 나오는 버터 중량의 절반을 써야 한다고 한다)

스메타나 60g

설탕 50g

달걀 2개

우유 120ml

베이킹파우더 6g

소금 한 꼬집


만드는 순서 :

1. 밀가루와 베이킹파우더는 함께 체 쳐서 준비해두고

2. 우유, 스메타나, 계란, 중탕한 버터밀크, 설탕, 소금 다 넣고 설탕 건더기가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젓는다

3. 가루를 2번에 넣고, 흰 가루가 안 보일 때까지 거품기로 잘 젓는다

4. 컵케이크 틀에 3/4 정도 채우고

5. 180도로 예열한 오븐에서 15분 정도 구워준다 (젓가락으로 빵을 찔러봐서 반죽이 묻어 나오지 않으면 다 익은 것)   


사실 컵케이크류는 배합 비율만 적당히 맞으면 오븐에서 저절로 빵이 돼서 나온다. (적당히 맞추면 되지 않나 싶다. 묽으면 묽은 대로 되면 된 대로 먹으면 되지 뭐)


만드는 시간도 굽는 시간 빼고 30분이 채 안 걸린다.

내 실력에 감히 '이렇게 해 드셔 보세요' 하긴 좀 그렇고... 다음에 내가 또 해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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