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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자현 Jan 31. 2021

박하사탕

상속지급

중앙회에서 보낸 알림 메시지. ‘상속인 정보를 확인하시오.’ 예금주 사망 시 상속인이 사고신고를 하면 중앙회를 통해 해당 금고로 알림을 준다. 그럼 직원은 예금주를 확인하여 상속처리를 위한 준비를 한다. ‘어 이분은…?’




겨울에 입사한 나는 날씨만큼이나 춥고 혹독한 신입시절을 보냈다. 서툴고 미숙하여 선배들 도움 없이는 업무처리가 힘들던 시절. 물론 처음이라 고객들이 많이 이해를 해 주시지만 신입이라 이건 못한다며 대놓고 피하거나 오래 걸린다며 직원을 바꿔달라 하는 고객들을 만날 때면 이 일은 나랑 안 맞는 건가 속상한 생각을 많이 했었다. 하는 일은 점점 많아지고 업무 종류도 너무 다양해 메모하고 외우기도 벅찼었다. 업무수첩을 가득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자신감 때문에 주눅 들어 개미 같은 목소리와 곧 터질 것 같이 빨간 얼굴로 매일을 버티며 일하던 그때, 그런 나는 위로해준 박하사탕.


매월 말일은 공과금 수납으로 창구가 붐빈다. 요즘은 매달 자동으로 통장에서 출금하여 처리하는 고객들이 많지만 연세가 있으신 고객님들은 직접 납부를 더 선호하시기에 창구에서 요금납부를 많이 하신다. 그날도 고객님은 여러 장의 지로용지를 가지고 방문하셨다. 용지에 적힌 금액을 다 더하여 금액만큼 현금을 받아 처리하는 것으로 비교적 간단한 업무에 속하지만 신입직원인 나는 이마저도 긴장하며 처리하였다. 용지에 금액을 분명 계산기로 다 더했는데 계산할 때마다 금액이 달라진다던지, 납부기한을 잘못 봐 가산세를 덜 받는다던지 실수로 엉망진창이던 그때. 


지금이야 떠올리면 웃을 수 있지만 당시에는 죽을 맛이었다. 거기에 객장은 얼마나 덥던지. 내방하시는 고객들이 추우실까 난방 온도를 높였기도 하고 지급된 유니폼을 다 껴입고 히터 밑에 앉아 긴장된 상태로 있으니 등에서 땀이 줄줄 났다. 


 “아가씨 긴장하지 말고 천천히 해. 늙은이 시간 많아.” 그날 번호표 순번에 따라 내 앞에 오신 고객님은 나에게 위로의 말과 함께 박하사탕 하나를 내미셨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물 한 모금 못 마셔 목이 타던 나는 고객 앞에서 허겁지겁 박하사탕을 입에 넣었다. 지금 생각하면 고객님 앞에서 간식을 먹어? 말도 안 되는 이 아찔한 일이 그때는 신입직원이라 가능했다. 


“처음이라 그래 하다 보면 늘어. 열심히 하는 게 보기 좋아.” 고객님의 위로의 말에 눈물이 날뻔했다. 박하사탕이 어찌나 달던지… 그 맛을 잊을 수 없었다. 그날 이후로도 고객님은 한 달에 한번 공과금 수납을 위해 방문하실 때마다 사탕을 나눠주셨다. 작은 봉지에 담긴 박하맛, 누룽지맛 사탕, 땅콩 카레멜까지 직원들과 나눠먹으라며 주신 사탕이 참 달고 맛있었다. 




그런 고객님이 마지막으로 방문하던 날이었다. 다리가 아파서 밖에 다니기가 불편하시다며 딸네 집으로 이사 가신다던 고객님. 따님과 함께 방문하시어 그동안 고마웠다며 잘 있으라 인사하셨다.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가도 꼭 새마을금고를 이용하시겠다며 웃으며 헤어졌다. 그리고 허둥지둥되던 신입 딱지를 떼고 업무수첩 없이도 업무를 처리할 수 있을 만큼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고객님의 소식을 이렇게 듣게 되었다. 등록된 대표 상속인인 따님에게 상속처리를 위한 서류를 안내하고 방문 약속을 잡았다.


예금주 사망 시 예금주의 재산은 상속인에게 지급된다.(대출도 포함) 상속인 범위는 기본적으로 1~4순위로 나눠져 있고 순위에 따라 상속된다. 1순위는 직계비속, 2순위는 직계존속, 3순위 형제자매 정도로 처리된다. 쉽게 이야기하면 피상속인(예금주)의 배우자를 포함하고 자녀분들이 있다면 배우자 포함 자녀가, 없다면 배우자 포함 부모님이 해당된다. 배우자가 없을 시엔 부모님. 지급을 위해서는 상속인 전부가 해당 관리 금고로 방문을 해야 하며 방문이 어려울 시에는 대표 상속인이 해당 상속인의 위임장(업무처리를 위한 서류를 포함하여야 한다)을 받아 처리한다. 고객님의 경우에는 상속인이 딸 한분이었다. 이후 업무처리를 위해 방문하신 따님을 통해 고객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고객님께 꼭 전하고 싶다. 덕분에 많은 위로가 되었다고.. 감사했다고 말이다.


주 고객의 연령층이 높은 새마을금고의 특성 때문에 꽤 많이 이런 업무를 처리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안타깝기도 하고 세월이 가는 것이 슬프기도 하다. 같은 시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신입에서 선배가 되는 시간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생을 마감하는 시간이 된다고 생각하니 현재를 좀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괜히 마음이 뒤숭숭 해진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일을 시작한다. 


다시 말일이 돌아왔다. 아침부터 객장은 각종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방문하신 많은 고객들로 붐빈다. 나는 이제 업무수첩을 뒤져가며 일을 하지 않는다. 계산기 다루는 것도 제법 능숙하고 빠르다. 무엇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신입직원을 피하던 고객들이 나를 찾는다. 


“아휴 옆에 직원은 처음 왔나 봐? 오래 걸리네. 저 아저씨는 아까왔는데 아직도야.” 

“처음이라 그래요. 천천히 꼼꼼하게 처리하고 있으신데요? 조금만 여유를 주셔요.” 

“그래 처음은 다 그래. 언니도 처음에 그랬잖아. 대답은 잘하는데 영 느려가지고는 뭐만 물어보면 얼굴이 빨개지고…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죄송합니다…” 

“아유 고객님 제가 언제 그랬다고!!” “하하하하” 이 고객님 기억력도 좋으셔라. 민망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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