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자현 Feb 13. 2021

나이를 먹어도 자식은 영원한 부모님의 아기


“돈 오만 원 출금해줘요. 만 원권 4장이랑 오천 원권 2장. 부탁해요.”

“안녕하세요 고객님. 오랜만에 오셨네요. 오천 원권은 용돈 주시는 거죠?”

“네. 새끼들 용돈 줘야지. 여기 직원들이 친절한 게 너무 감사해.”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30년대 초반에 태어나신 이 고객님은 우리 금고 최고령 고객님이시다. 노인정에 가셔도 놀 친구가 없다는 고객님은 산책 겸 종종 금고에 들리신다. 다리가 안 좋으셔서 지팡이를 사용하시지만 계산도 정확하시고 이것저것 이야기도 재밌게 하셔서 직원들에게 인기가 좋다. 항상 오천 원권 2장을 바꿔가시는데 아마도 손주분들에게 주시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러던 어느 날 고객님께서 헐레벌떡 금고로 오셨다. “아직 안 왔네? 우리 새끼가 올 거야. 내가 여기 금고 칭찬을 했더니 여기 거래한다고 하네. 지금 올 거야.” 환하게 웃으면서 이야기하시는 고객님 얼굴에서 손주들을 향한 마음이 느껴진다. 감사하기도 하여라 할아버지 이야기 듣고 직접 거래하러 오신다니 작은 기념품이라고 챙겨드려야지. “저기 온다. 더운데 오느라 고생했어. 여기 인사해.”


옆에 앉은 선배도 뒤에 앉아 계신 책임자 부장님의 당황한 얼굴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할아버지의 안내를 받아 들어오신 ‘새끼’는 머리가 희끗하신 할아버지 고객님이셨다. 바로 아들. 웃는 모습이 닮은 이 고객님이 오천 원씩 용돈을 받는 자녀분이었다니… 처음에는 당황했다가 이내 피식 웃음이 났다. 고객님께 오천 원 용돈 이야기를 하니 웃으시며 말씀하신다. “제 나이에 용돈 주시는 부모님이 살아 계시다는 게 얼마나 큰 기쁨인데요. 감사한 일이죠. 용돈도 물론 감사하고요. 하하하”





금고에 방문하시는 고객님들께 자주 자녀분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공부를 잘한다던지 승진을 빨리한다는 자랑 섞인 이야기들 뿐만 아니라 일이 잘 안 풀려 걱정이라는 이야기까지. 또 가끔 자녀분의 예금을 대리로 관리하시는 분들이 계시다. 미성년자가 아닌 성인인 경우에는 부모님도 일반 대리인이 된다. 이 경우에는 위임장과 인감증명서 인감도장 등 대리업무를 위한 서류가 필요하다. 하지만 종종 자녀분이 시간이 없어 서류조차 떼 올 수 없다며 우리 아들 딸은 이런 거 할 줄 몰라 내가 대신해준다고 말씀하시는 고객님들이 계시다. 부모님들의 걱정과는 다르게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잘하고 계실 텐데 말이다. 상담 중에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듣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자식들은 부모님의 영원한 아기다.





“가서 아이스크림을 좀 사와라. 여기 직원들이랑 다 같이 나눠서 먹자. 여기 돈은 내가 줄게.”

“네. 아버님 다녀오겠습니다. 잠시만 계셔요.” 업무를 마치신 아들 고객님이 만원을 받아 들고 창구를 나서려 하신다. 당황한 내가 “고객님 제가, 제가 가겠습니다.” “아이고, 저희 아버님 심부름인데 제가 가야지요. 업무보고 계셔요. 하하하” 어쩔 줄 모르는 나의 모습에 고객님과 직원들이 함께 웃음을 터트렸다.


고객님이 가시고 나서 나의 부모님 생각이 났다. 지방에 계신 부모님은 타지에서 생활하는 나와 동생 걱정을 많이 하신다. 나도 나의 생활이 많아지면서 부모님과의 통화나 집에 내려가는 횟수가 잦아졌다. 그래서 가끔 하는 전화통화에서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회사생활은 어떤지 궁금해하시며 항상 잔소리 아닌 잔소리로 여러 가지 걱정들을 쏟아내시곤 하셨다. 부모님의 걱정에 ‘내가 애야. 잘하고 있으니까 걱정 마’ 라며 퉁명스럽게 말하기도 하고 가끔은 잔소리가 귀찮게 느껴지곤 했다. 부모님의 그 걱정은  나에 대한 사랑이다. 나도 고객님의 나이가 되어서도 용돈을 받고 싶다. 고객님의 말씀처럼 부모님이 오래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딸 퇴근했어? 날이 춥다던데 따뜻하게 입고 다니지? 치마에 스타킹 입고 다니면 다리가 추워. 바지 기모 있는 걸로 입고 다녀. 참 김치는 먹고 있니? 다 먹었으면 조금 보내줄까? 이번에 너 좋아하는 깍두기도 만들었는데. 저녁은 꼭 집에서 만들어 챙겨 먹어. 배달음식 자주 먹으면 건강에 안 좋아.” 어.. 엄마.. 그..


“아니 뉴스에 보니까 요즘 젊은 사람들이 주식 투자를 많이 한다던데. 그것도 공부해서 잘 알아보고 해야지 그냥 모르고 막 하면 투기야. 여기저기 막 투자하지 말고 공부해서 시작해. 티브이에서 그러는데 안 그럼 돈 잃는 건 한순간 이라더라. 돈은 잘 모으고 있지? 적금 꼭 들고 일단 아껴 써야 해. 돈 펑펑 쓰지 말고. 듣고 있어?”


어머니… 어머니 딸이 새마을금고 직원입니다. 그런 걱정 마시고 엄마 감기 안 걸리게 따뜻하게 입고 돈 아끼지 말고 밖에서 맛있는 것 좀 사 드셔. 딸이 용돈 보냅니다. 끝.




이전 07화 박하사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