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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니 Jul 07. 2019

서울야누스

모지웅


맥거핀으로서의 서울?

맥거핀(MacGuffin)이란 극의 초반부에 중요한 것처럼 등장했다가 사라져버리는, 일종의 ‘헛다리짚기 장치’를 의미하는 영화 전문 용어다. 하지만 지금은 ‘바람잡이’ 혹은 사람들을 낚는 ‘떡밥’ 등으로 의미가 확장돼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모지웅 작가의 작업을 보았을 때 문득 떠오른 단어가 바로 이 ‘맥거핀’이었다. 그의 사진들과 ‘SEOUL 2010s’라는 작업 제목 사이에서 느껴지는 괴리감 때문이었다. 

<SEOUL 2010s>는 모지웅을 일약 신진작가 반열에 올려놓은 작업이다. 제목만 보면 2010년대 서울을 기록한 사진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전형적인 다큐멘터리 사진과는 거리가 멀다. 작가의 스승인 김홍희의 말을 빌리자면, 사진에 사람들도 등장하고 거리도 나오고 가로수나 고양이도 나타나지만 이들이 명확하게 어떤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 촬영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의 피사체로 등장하는 것들은 하나같이 모호하고 거칠 뿐 아니라 일그러져 있고 왜곡돼 있다. 게다가 서울을 지칭하는 코드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작업 제목만 놓고 봤을 때는 작가에게 낚인 것이 아닌가 싶다.

일반적으로 무엇인가를 기록한 사진에는 ‘구체적’, ‘사실적’이란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그런데 모지웅의 작업은 서울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추상적’, ‘감상적’이라는 단어와 더 매칭이 된다. 다시 김홍희의 말을 빌리자면, 그가 촬영한 것은 2010년대의 서울이라는 물리적인 공간이라기보다는 서울에서 살아가는 자기 자신에 가깝다. 또한, 자신과 같은 서민들이 느끼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향한 불온한 공기도 사진 주변에 감돈다. 마지막에는 이 모든 것에 자신을 투사하고 있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사진, 카타르시스를 위한 출구

모지웅에게 서울은 그다지 품격 있는 도시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 사진 속 서울은 불안함과 음울함 그 자체다. 사람들도 침체돼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에게 서울이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피로한 도시이다. 그는 성인이 되자마자 짐 나르는 일부터 시작해 대학로 극장 관리, 사진기자, 매거진 포토 에디터 등 다양한 경험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그는 자신의 생활을 돌아보고 진로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돌아온 답은 사진이었다. 

가장 먼저 자신의 가족을 찍었다. 유년시절 그의 아킬레스건은 가족이었다. 대화가 부족했고, 그만큼 갈등도 많았다. 하지만 사진을 시작한 뒤로는 이러한 갈등에 정면으로 부딪히기로 결심했던 것 같다. 첫 번째 작업 주제가 ‘가족’인 것에서 이를 유추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완성된 <불완전가족>(2009)을 보면 그의 노력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알아챌 수 있다. 여전히 가족과 거리를 두고 있음이 확연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은 <SEOUL 2010s>(2015)에서도 이어진다. 가족과의 갈등을 넘어, 서울에서 생활하며 겪었던 분노와 욕망을 분출하고 극복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 것처럼 보인다. 대상에 대한 애정도 부족해 보인다. 오히려 대상을 자신의 틀 안에 가둬놓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유년시절부터 그를 옥죄던 ‘결핍’이 작가의 마음의 눈을 가로막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분명 그의 사진은 관조적인데, 왠지 모를 팽팽한 긴장감마저 느껴진다. 



‘나’에게서 ‘우리’로, ‘불온’보다는 ‘온건’

모지웅에게 <SEOUL 2010s>란, 자신 감정과 부합하는 서울의 파편을 포착한 결과물이다. 예를 들어, 골목길 고양이의 뒷모습에선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은 자신의 감정을, 버스에 앉아 있는 어떤 남자의 뒷모습에선 밥벌이의 고단함을 느껴 셔터를 눌렀다고 한다.  이처럼 작가의 작업은 의도적으로 서울을 부각시키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지 않다. 그렇기에 서울과 관련된 코드를 읽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의 사진은 거칠고 노이즈가 심하다. 콘트라스트 조절을 제외하면, 별도의 후보정도 하지 않는다. 애초에 고감도(ISO 25600)로 촬영하기 때문이다. 이는 작업 당시의 심리상태를 반영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대부분의 사진가들은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웬만해선 고감도 촬영은 하지 않는다. 그런데 모지웅은 오히려 고감도를 선택한다. 보통의 사진가들과 거리를 두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를 고립 혹은 결핍의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이후 감정이 고조되면 그는 뚜벅이처럼 서울을 돌아다니며, 마음이 동할 때마다 셔터를 누른다. 촬영은 캔디드 형식이다. 이는 실제 눈이 아닌, 마음의 눈으로 사진을 찍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서울에 대한 기록임에도 불구하고, 몸보다 마음이 괴롭겠다는 생각부터 든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는 사진을 통해 감정을 풀어냄으로써 갖고 있던 트라우마를 극복해가고 있다고 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나’에서 ‘우리’로 향하니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최근 그가 낸 사진집 <SEOUL 2010s> 마지막 페이지를 가족사진으로 마무리했을 만큼 관계도 완화됐다.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한 덕분이다. 이처럼 서서히 결핍이 메워지고 있는 모지웅의 서울은 앞으로 분명 변할 것이다. 모든 것이 해소되었다는 신호도 더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훗날 그의 사진은 ‘불온’보다는 ‘온건’에 더 가깝지 아니할까. 마지막 인사를 나눴던 그의 따뜻한 시선이 여전히 눈에 선하다. [2016.10]




모지웅 두 개의 눈으로 현실과 이상을 동시에 바라보는 사진작가다. 언론사 사진기자를 거쳐 커머셜 작업과 순수 작품 활동을 넘나들고 있다. 다양한 경험이 작품에 녹아들길 원하며 인생의 가치 탐구에 뜻을 두고 있다. 2010년 <十八色氣展>을 시작으로 14회의 단체전과 2회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woong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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