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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니 Aug 01. 2020

데드팬 / 반풍경

조문희

조문희의 <반풍경>은 건축물의 인덱스를 제거한 작업이다. 표정이 사라진 건물, 대상과의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는 ‘데드팬’을 연상시킨다. ‘사라짐’을 통해 그가 말하고자 하는 건 신도시 지역을 감싸고 있는 기이한 느낌이다.


데드팬 Deadpan

팬(pan)은 ‘얼굴’을 지칭하는 연극적인 은어다. 데드팬은 말 그대로 ‘무표정한 얼굴’이다. 표정이나 동작의 변화 없이 유머를 제시하는 코미디 장르를 지칭하는 말로, 지금은 사진에서도 통용되고 있다. 20세기 초 ‘신즉물주의 사진’을 효시로 볼 수 있으며, 대표적인 작가로 아우구스트 잔더, 베허 부부, 토마스 루프를 꼽을 수 있다.


상점 shop, 25x13, pigment print, 2019


출제자가 그린 그림을 보고, 이에 들어맞는 단어를 맞추는 게임 ‘캐치마인드’가 떠오르는 첫인상이다. 으레 파사드(façade)에 있어야 할 쇼핑몰 이름과 아파트 브랜드, 건축물의 개성 있는 외벽 등이 지워져 있지만, 서울 근교의 신도시 지역을 자주 돌아다녔다면 프레임 안 장소가 어딘지 금세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자본주의의 핵심 개념인 ‘시뮬라크르’ 때문일 테다. 한편, 작업은 형식적인 측면에서 토마스 루프의 <Häuser>, 박찬민의 <Blocks>와 묘하게 닮았다. 그러나 조문희의 작업은 <Häuser>보다 원근감이 약하고, <Blocks>와 달리 기표로서의 텍스트를 제거했다. 이러한 조문희의 <반풍경>은 (전시 서문에 의하면) ‘신도시라는 공간, 그곳에 들어가 보이는 것을 의심하고 질문하는 작가의 태도, 그가 발견한 언캐니(uncanny)의 감정, 실재와 허구 사이에 걸친 이미지의 위상을 포괄하는 풍경’이다. 작업은 망원렌즈로 건물로 평면적으로 촬영한 다음, 기표와 건축물의 질감을 제거하는 후보정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출입제한 Restricted access, 140x140cm, pigment print, 2019
옥상 roof top, 140x140, pigment print, 2019                                


조문희의 작업은 다양하게 읽힌다. 기표에 종속된 우리의 시각/논리 체계에 관한 이야기 같기도, 사물 본질에 관한 이야기 같기도 하다. 그중 그가 우선시하는 건 ‘언캐니(기이한 느낌)’다. 이는 신도시 지역에 감도는 ‘껍데기 행복’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것과 진배없을 것이다. <반풍경> 속 형식(따스한 색감)과 내용의 대비는 분명 여느 사회 비판적인 작업과 궤를 같이하지만, 조문희는 현실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 “너무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것보다는, 은유적이며 서정적인 작업을 지향한다.”라는 예전 그의 말과 어느 정도 상응하는 부분이다. <반풍경>에서 조문희는 대상과의 심리적 거리를 두는 ‘데드팬’ 형식을 견지한다. 표면적으로는 파스텔 색조가 작업을 탐미주의적 방향으로 이끌 수 있으나, 이 유혹을 이겨낸다면 ‘사태 자체’에 다다를 수 있다. 다시 말해, ‘냉정함’으로 대표되는 ‘데드팬’의 핵심은 ‘사진이 더는 진실을 말하지 않으니, 보는 이는 어떤 판단과 선입견에서 벗어나 사건에 접근해야 한다.’라는 것. 마찬가지로 <반풍경> 역시 눈에 보이는 (행복한) 이미지가 실제와 다르니 둘 사이의 괴리를 사유해야 한다고 넌지시 말하는 듯하다.




Cho, Moonhee 지우거나 오려내는 방법을 통해 이미지가 해체되고, 본질이 없어져 버린 모호한 장면을 만들어낸다. 이를 통해 보는 이는 일상이라는 보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개인이 만든 이미지가 관념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맞은편 across, 15x15, pigment print, 2019
핑크 pink, 140x140, pigment print,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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