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보내고 남은 사람들의 대화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고 오는 길에 지난주 반려견을 보낸 이웃집 아주머니를 만났다. 차림도 실내복에 코트만 하나 걸친 데다가 안 좋은 일을 괜히 꺼내는 거 아닌가 싶어 올라오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내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도착하기 직전 아주머니께서 먼저 말을 꺼냈다.
- "집에 강아지 두 마리는 잘 지내고 있어요?"
- "네. 잘 지내고 있어요. 지난주 잘 보내주고 오셨나요..?"
우리네 강아지들의 안부를 먼저 물어주는 것으로 대화는 시작되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나서도 쉽게 떠나지 못하고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 "최근 10일 간 진짜 잠을 한 숨도 못 잤어요. 발작은 발작대로 하고 밤새 아파서 소리를 지르는 통에..."
- "병원에 입원은 시키지 않으셨고요?"
- "계속 주간에 입원을 하고 저녁에는 데리고 왔는데.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어요"
아픈 반려견을 돌보는 보호자의 입장에서 가장 가슴 아픈 사실이자 '안락사'를 고민하는 큰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아무리 돈과 시간과 노력을 들이더라도 더 이상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 전에 방울이를 떠나보낸 이유도 이 사실이 가장 컸기 때문이다.
- "애기가 너무 힘들어하는 게 계속 마음 아팠어요. 15년간 함께 해 온 아이인데..."
- "그렇죠. 그래도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텐데 고생 많으셨어요"
-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차마 먼저 이야기를 꺼내기 힘들었어요. 그런데 병원 의사 선생님이 먼저 말을 꺼내 주시더라고요"
다들 생각은 하고 있지만 차마 꺼내기 힘든 그 단어. '안락사' 아직도 생생하다. 중환자실에 입원한 방울이를 두고 경과를 지켜보던 중 3일째 되던 날, 병원 진료실에서 펑펑 울면서 먼저 말을 꺼냈다. 스스로에게 몇 번이고 이 일이 잘하는 것일까를 물어보고 또 물어봤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모르겠다.
- "마침 집에 아이들도 있어서 몇 번 이야기를 했고 끝내 그렇게 결정을 내렸어요. 애기가 병원을 하도 자주 가니까 선생님만 보면 경기를 일으키더라고요. 차마 이 동네에서는 떠나보낼 수 없어서 보내는 병원은 저기 시흥까지 갔고 화장은 또 더 나가서 안산에서 했어요"
만약 이 동네에서 떠나보냈다면 그 주변을 지나칠 때마다 생각이 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도 아직까지는 방울이를 떠나보낸 그 동네에 가면 괜스레 울적해 지곤 한다.
- "그래도 마지막에 편하게 눈을 감아서 덜 미안했어요. 그렇게나 아파서 힘들어했는데, 마지막엔 잠자는 것처럼 편안하게 보내고 나니까 저도 마음이 좀 놓이더라고요."
그렇다. 안락사는 '프로포폴'을 이용한 수면마취 이후 심정지를 발생시키는 약물을 투여하게 된다. 수면 마취 상태에서 마지막을 맞이하기에 큰 고통은 없이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떠나게 된다. 안락사에 앞서 작은 방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별도로 가진다. 당시 집사람은 차마 볼 수가 없다고 해서 나 혼자 들어가서 방울이와 함께 했다.
무지개다리로 떠나보내는 일이 어찌 마음이 편하다고 할 수 있겠냐마는 안락사의 순간에 매일매일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며 고통스러워하던 아이들이 정말 오랜만에 편안한 모습으로 잠이 든다. 그 마지막의 편안한 모습이 보호자에게는 잊을 수 없는 반려견과의 마지막 순간이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 이별은 슬픈 것이고 힘들다. 다만, 그 동안 함께했던 행복한 기억으로 보호자들은 버티고 살아가며 추억하는 것이다.
엘리베이터가 우리가 서 있는 층에서 열리자 대화는 마무리되었고 마지막으로 새해 인사를 하며 헤어졌다. 다시 집으로 들어가면서 시간이 조금 지난 뒤에 마주치게 된다면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생각났다.
'혹시 시간이 지나고 다시 반려견을 키우실 생각이 있으신가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