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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봉봉 Jul 31. 2024

약보다 의사보다 친구가 최고다

나와 친구가 되어줘서 고마워 엉엉



이번 회차부터는 '우울함'에 대한 이야기보다, '소중함'이나 '고마움'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올 예정입니다. 우울증 혼자 치료하는 방법, 각종 자가치료 잡기들을 소개합니다.






 친구가 최고다.

 약보다 의사보다 친구가 최고다.



 써놓고 보니, 할머니 같기도 하고 요즘 밈이 되어 떠도는 조현아의 노래 같기도 하다.

 그래도 올해 나의 슬로건을 뽑자면, '사람이 재산이다'.

 이것도 퇴임한 교장선생님 카톡 프로필 같긴 하지만, 어쨌든.


 20살 때 만난 대학동기인 A는 같은 과를 나와서, 같은 직업을 같고, 고향에서 빠져나와 같은 지역으로 이사와 가까운 곳에 거주지를 두고 있는 친구이다. 결혼도, 육아도 비슷하게 함께하는 이 친구와는 남편의 직종도 비슷해서 남편의 지방근무와 해외근무로 인한 주말부부, 독박육아 등 사실상 워킹싱글맘 체제의 극한 육아를 버티며 생활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

 본인은 부정할 수도 있지만 내가 봤을 때는 그 역시 나처럼 완벽주의자이다. 욕먹기 싫어하고 일이든, 수업이든 깔끔하게 끝내려는 성격도 나와 비슷하다. 학교일뿐 아니라 쇼핑, 일상, 남편, 시가, 친정 이야기까지 남편한테도 못하는 이야기를 발랑 까놓고 모두 터 놓을 수 있는 친구이다.


 이 친구가 의사보다 나았다.

 초반부터 이 친구에게 모든 것을 말했다. 똑같은 이야기를 해도 같은 직종에 있어야만 찰떡같이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다. 알려지지 않아야 되는 이야기들을 편하게 할 수 있고, 다른 이에게 경솔하게 유포하지 않는다는 신뢰가 있으면서, 나의 상황을 100% 이해해 준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친구.

 스무 살에 만난 친구와 벌써 20년을 함께 지냈다. 지금부터는 몰랐던 시절보다 알고 지낸 시간이 더 길어진다 생각하니 신기하기도 하고, 이렇게 나이가 먹었나 싶기도 하다. 그래도 척하면 척이라 별거 없이 만나서 차 한잔만 마셔주어도 고마웠다. 만날 수 있는 날 보다 못 만나는 날이 더 많았으므로, 답답한 마음에 전화를 걸어 별 다른 해답이 없이 전화를 끊어도 답답함이 조금은 풀렸다. 이 친구가 없었다면 나는 누구에게 미주알고주알 모든 걸 이야기했을까. 의사에게는 절대 못 했을 것이다. 돈 내고 내 힘든 이야기를 하는데 왜 나는 의사의 눈치를 봐야만 했을까. 왜 눈치가 보일까. 그런데 친구에게는 눈치 안 보고 쌍욕이든 뭐든 다 이야기할 수 있어 너무 좋았다. 그걸 다 들어줘야만 했던 친구에게는 미안하지만.



 의사보다 나았던 친구가 한둘이 아니다.

 나이가 같은 친구만 친구인가.


 모든 상황을 옆에서 눈으로 지켜보고 나와 같이 고민해 주었던 같은 교무실 선생님들.

 내가 몇 년 전부터 솔로몬으로 모시고 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배 선생님.

 힘든 학교에서 근무하다 절친이 되어버린, 언제나 나보다 더 똑똑하고 상황판단 잘 되는 언니 선생님들.

 이러저러해서 응급실 다녀왔다니까, 단박에 "야, 미치면 안 된데이. 정신 차리고 쉬어라."며 속 시원하게 쉬어라고 해준 간호사 내 친구.

 만나서 밥이나 먹자 해놓고, 내 이야기는 뒷전이고 각자 자기 딸들 욕만 하다가 결국에는 자기반성에 샤브샤브 집에서 눈물 찔끔하던 동네 언니들.


 나와 대화를 나누었던 그 모두가 친구였다. 내가 모든 것을 털어놓고 이야기하지 않았어도, 대충만 설명해도 같이 한숨 쉬며 걱정해 주던 친구들.


 만나주고, 고민을 나누고 들어주는 것이 친구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마음과 시간을 진심으로 내어주는 것, 그 자체가 정말 고맙다.


 "돈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라는 말을 한다.

 해봤자 도움 되는 게 뭐 있겠냐는 소리다. 친구 고민 들어주는 것이 딱 이거다. 돈도, 밥도 안 나오는데 심지어 돈 쓰며 밥을 사주면서 까지 친구 이야기를 들어준다.

 아. 고마워라.



 우울증의 가장 큰 문제는 '고립'이다.

 남들이 나를 외면하거나 따돌리지 않는다. 스스로를 가두어 고립을 자초한다. 밖으로 나가기 싫고, 사람도 만나기 싫다. 외로운 것이 싫다, 좋다 느낄 새도 없다. 나가려면 움직여서 씻고, 입고 해야 하지만, 욕실까지 갈 의지도, 힘도 없다. 우울증이라면 방에 틀어박혀 누워있는 것은 기본 옵션이지만, 이것이 타인과의 관계를 차단시킨다. 그래서 더 우울하게 만든다. 혼자만 있으니까.

 우울증의 무한루프랄까.  



 정말 듣기 싫었던 소리다.

"어디든지 나가"

"운동이라도 해"

"걷기라도 해"

"나가서 커피라도 마셔"

 심지어 우울증에 관련된 책을 보다가도 저런 말이 있어서, "아. 짜증 나. 진짜. 나가기 싫다는데 왜 이래, 정말."하고 책을 탁! 덮어버린 적도 있다.


 아무도 만나기 싫다. 아무 데도 나가기 싫다.

 우울증이 아니었던 사람들은 절대로 모를 것이다.

 뭐 그게 어려운 일이냐? 그냥 나가면 되는데.


 그때는 안 들리고 안 보인다.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으니 누구와도 만나고 싶지 않다. 그러나 허리가 아플 정도로 누워있다 보면, '아, 계속 이러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이 번개처럼 탁! 스쳐 지나갈 때가 있을 것이다. 바로 그때, 그 생각의 모가지를 확! 낚아채서, 휴대폰을 열고 만날 친구를 찾아서 약속을 잡아야 한다. 그것이 우울을 끊는 길이다. 그래야 침대에서 벗어날 있다.


 누구를 만날 기분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나가야 한다.

 나가서 누구라도 만나야 한다.

 일어나 어디라도 가야만 한다.


 절친한 친구에게 조차 털어놓지 못하는 어둡고 심각한 것들로 고통받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말도 속 시원하게 못 하는데 친구라고 만나서 뭐 하나?

 하지만 친구에게 모든 것을 다 털어놓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친구는 고백성사해 주는 신부님이 아니니 말이다. 뭐, 설사 신부님이라 하더라도 모든 것을 다 말할 필요는 없다. 지금 죽을 것 같더라도 아무 일 없는 척해도 된다. 그냥 친한 친구 한 명 만나서 연예인 이야기도 좀 하고, 예쁜 카페에 가서 커피라도 한 잔 하는 것이 집구석에 계속 누워있는 것보다는 백배 낫다. 누워있는 것보다 친구 만나는 것이 덜 우울하리라는 것은 근거를 댈 필요도 없는 당연한 소리다.


 꼭 친한 친구가 아니더라도, 누구라도 만나는 것은 좋다. 누구든, 사람과 만나서 나누는 스몰토크는 잠시만이라도 탁한 마음에 작은 숨통을 틔워준다.


 수영장에서 그날 처음 만난 할머니가 평영 발차기를 잘한다고 칭찬해 줬을 때, 길거리 노점에서 꽃 파는 아저씨와 예쁘고 오래가는 꽃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서점에서 내가 찾는 책이 어디에 있는지 직원에게 물어봤을 때, "고맙습니다", "아니에요"의 대답을 만들어내며 처음 보는 사람과 이야기했던 것이 '나가길 잘했다'라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나를 모르는 제 3자와의 작은 대화의 경험도 친한 친구와의 만남 못지않다. 사람과 이루어낸 모든 대화와 시간이 소중하다. 모르는 사람과 두세 마디라도 짧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 방구석에 쭈그려 앉아 유튜브로 '우울증 이겨내는 법'따위를 보고 앉아 있는 것보다는 백배 낫다.



 우울증에는 친한 친구도 친구이며, 모르는 사람도 친구이다.

 나와 말만 섞어도, 눈만 마주쳐도 다 친구이다.


 내 우울한 이야기를 다 말하지 않아도 된다.

딱히 누구와 만날 약속이 없더라도 집에 있지 말고, 억지로라도 씻어보고, 주섬주섬 아무 옷이나 주워 입고 선크림 대충 바르고 '인간'들이 나돌아 움직이는 곳으로 사람 구경이라도 하러 가자. 지하철에 옆에 앉은 할머니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엿들어도 보고, 서점에서 다른 사람은 무슨 책을 들춰보나 구경이라도 해보자.


 우울감이 전염되듯이, 행복도 퍼져나간다. 행복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래도, 나보다 안 우울한 사람들을 만나서, 행복한 놈들 기를 쪽쪽 빨아먹고 오자. 행복 흡혈귀가 되어보자. 그럼 조금 덜 우울할지도.


 뭐, 다들 친구니까.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나와 이야기 나누어주었던 모든 친구들께 인사 전합니다.

고맙고, 따뜻했고, 좋았어요.

감사합니다.




우리,

서로 질척대면서, 징징대면서 오래오래 봐요.

저도 밥 사주는 사람이 될게요.


진심으로, 고마워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여기 다 있네ㅋㅋ






다음 이야기 : 미니멀리즘에 빠져버리기 전에 가방 샀지롱 

+ 옷장을 보니 정신이 사나워 집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 창고도 치운다

+ 주방도 치운다

+ 책도 다 버린다

+ 미니멀리즘 책을 보기 시작했다

+ 어... 빠져든다

+ 더 빠지기 전에 가방을 샀다. 더 빠져들면 못 사쟈나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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