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영국에서의 첫날, 첫 일정은 <영국박물관>으로 정했습니다. 첫날은 특별한 일정 없이 (라고 하기엔 너무나 많은 일정이었..) 그냥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분위기를 느껴본다라는 컨셉으로 돌아다니기로 했습니다. 영국박물관은 숙소에서 가장 가깝기도 했고, 걸어가면서 골목도 상점도 구경하고 분위기도 느끼기에는 딱이었기 때문에 첫 일정을 정했죠. 오픈시간에 맞추어 사람들이 그나마 적을 때, 재빨리 들어가서 샤샤샥 보고 나온다는 계획도 있었습니다.
런던의 대부분의 박물관과 미술관은 무료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로 대부분의 박물관과 미술관은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어서 돈을 내지 않더라도 각 기관의 홈페이지에서 날짜와 시간을 정해서 예약을 해야 합니다. 이것 때문에 즉흥여행이 예전보다 조금 힘들어졌더라고요. 날씨를 봐서 비 오는 날에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관람하는 것으로 일정을 잡고 싶었는데, 사전예약제다 보니 그런 것들을 고려할 수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어쨌든, 미리 예약한 가장 첫 번째 타임으로 입장했습니다. 로비에 거의 첫 순서로 입장했는데 입구 옆 복도 계단에 거의 아무도 없더라고요? 영화에 나오는 무도회가 열리는 중세 유럽의 대저택의 로비 분위기였습니다. 어떤 아랍 언니들이 히잡을 샥샥 날리며 멋지게 화보를 찍고 있길래, "여기 이제 사람들 엄청 많을 텐데, 우리도 사람 없을 때 사진 찍자!"라고 아이들을 재촉해서 세우고 포즈를 잡게 했습니다. 사람도 아무도 없고, 배경도 멋지고 아이들도 기분도 좋아서 멋진 사진이 나왔습니다. 대만족.
"엄마도! 나도 찍어줘!"하고 아들에게 폰을 맡기고 사진을 찍는 찰나, 수많은 사람들이 계단을 올라가려고도 하고, 저희처럼 사진을 찍으려고도 해서 빨리 대충 찍고 내려왔습니다. "찍었어?" 하니 "응. 됐어." 해서 내려와서 사진을 확인했더니. 세상에. 사진 보실래요? 아무리 초등학생이지만 사진을 이따구로 찍는 것은 너무하지 않습니까? ㅋㅋ 한국 사람은 흙바닥에 누워서라도 다른 사람의 사진에 애정을 갖고 인생사진을 찍어주는 것이다, 너는 어떻게 이런 사진을 찍어놓고 됐다고 할 수 있느냐, 너는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이 있었는데 대체 살면서 10년 동안 뭘 배웠냐, 다다다다.. 사진 한 번 잘못 찍은 죄로 저희 아들은 잔소리 폭탄을 맞았습니다. 여하튼 저는 똥망비율에 두턱녀에 다리도 잘린 수평도 안 맞는 슬픈 심령사진을 찍고 그 복도는 지나왔습니다.
야외인 듯 실내인 듯 밝고 따스한 기운이 느껴지는 대중정에 들어섰습니다. 밝고 반들반들한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건물의 기둥과 삼각형으로 짜인 유리창에서 뿌려지는 자연광이 청명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아이들도 박물관 이래서 우중충할 줄 알았는데 의외의 탁 트인 분위기에 이리저리 구경하며 사진 찍느라 바빴습니다.
일단 인포메이션 센터에 가서 가이드북을 겟했습니다. 평소 역사에 관심도 없고 그 어떤 박물관에 가서도 흥미를 보이지 않던 저희 아이들이, 영국에 가서 로제타스톤을 두 눈으로 본다 한들 무슨 감흥이 있겠습니까? 나중에 루브르도 마찬가지지만 출발하기 전부터 박물관에서는 절대로 1시간을 넘기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갔습니다. 저는 예지력이 있는 현명한 엄마니까요. 그래서 지도를 보고 미리 점찍어둔 것들 딱 3개만 보고 나오기로 했습니다.
로제타 스톤, 람세스 석상, 파르테논 신전.
이거 3개만 보고 나와도 성공이라고 생각하고 재빠르게 움직였습니다.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는 처음부터 알아보지도 않았습니다. 저희 아이들이 관심도 없는 유물들 보면서 귓구멍에서 흘러나오는 기계음에 절대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죠. 대신 아깝기는 하니까 제가 옆에서 몇 마디씩이라도 설명해 주려고 저는 공부를 조금은 해갔죠.
로제타 스톤을 만났습니다.
"이거, 기원전 196년에 만들어진 거래. 2200년이나 된 거야! 같은 말을 그리스어랑 이집트어로 같이 적어놔서 이집트 상형문자 해독하게 해 줬대."라며 주절대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이집트 상형문자 해독이 뭐가 신기하겠습니까? 돌덩이야 우리나라에 있는 돌들도 몇 천년은 기본 아니겠습니까? 제 설명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흘려버리고, 가이드북이었는지, 밑에 설명에서 본 것인지를 보고는 아들이 질문을 했습니다. "엄마, 이거는 이집트에 있던 돌인데, 발견은 프랑스 군대가 했다는데 그럼 왜 프랑스에 안 들고 가고 영국에 있는 거야? 나폴레옹이 영국에 선물한 거야?"
?? 읭....?
거기까지는 엄마도 잘..
의외로 저희 집 아이들은 똑똑하고 날카로웠습니다. 여행 가이드북에서 한 두줄 보고 핵심만 외운 저에게는 어려운 질문. 예상치 못한 질문에 어버버 하고 있는 순간 "야, 뭐 이유가 있으니까 여기 있겠지! 시끄러!" 라며 딸이 윽박을 질러줬습니다. 오? 이럴 때는 도움이 되네요? 일단 저도 이게 왜 여기 있는지 궁금하지만 지나갑니다. 1시간 안에 컷 하고 빨리 나가야 하거든요.
다음, 람세스 흉상을 만났습니다.
"와. 겁나 크다."
땡.
그냥 갑니다. 저 가슴팍에 뚫린 구멍에 대해서 또 쭈절대고 싶었지만 그냥 지나갑니다.
파르테논 신전으로 갑니다.
"와. 이거 뭐야? 다 떼 온 거야? 그럼 그리스에는 뭐 있어? 돌려달라고 안 해? 돌려줘야 되는 거 아니야?"
"자기들 것도 아니면서 여기 왜 전시하는 거야?"
안 그래도 사회에 불만이 많은 사춘기 딸이 전시장을 다니며 다다다다 불만을 표출합니다. 이제 유물 관람은 뒷전이고 트집잡기에 빠졌습니다.
"이건 또 어떻게 들고 온 거야? 배에 어떻게 싣고 온 거야?"
"대단하네. 다 훔쳐온 건가?"
"돈 안 받아서 좋다고 생각했더니, 돈 안 받는 게 당연한 거구만. 쳇."
아주 세계적인 문화재 반환 운동가 납셨습니다. 유네스코로 보내야겠어요..
저는 아테네도 못 가봤고, 설사 가더라도, 아니면 이 조각상들이 반환이 되어 파르테논 신전의 재건에 그대로 쓰이더라도 그 조각상들을 이렇게 가까이서 볼 수는 없을 것이니 조금이라도 더 자세히 보고 싶었습니다. 로제타스톤이나 람세스흉상 같은 것이야 저도 뭐 별 감흥이 없었지만은, 파르테논 신전 부조는 2500년 전에 어떻게 이런 예술품을 조각으로 만들 수 있었을까, 옷감의 주름, 사람의 근육, 얼굴을 대리석에 어떻게 새길 수 있었을까 생각하며 조금 더 감상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사회 정의에 불타오르는 이 사춘기 소녀가 제국주의 강대국의 유물 약탈에 엄청난 분노를 표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입을 다물고 그저 아쉬움을 접고 따라다니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게.. 나쁘네.. 옮긴 건 대단하네.." 이렇게 궁시렁 추임새만 넣으면서 말이죠.
계획한 TOP 3 관람을 아주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재빨리 끝냈습니다. 그래도 여기 이제 언제 올지 모르니, 미라랑 모아이 석상만 보고 가자고 꼬셔서 미라와 모아이 석상도 봤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는데, 몰라서 보이지도 않으니 슥슥 패스하며 보기도 아주 편했습니다.
"와. 미라. 이거 진짜야?", "징그럽다" 하고 미라를 지나가고, 모아이 석상은 칠레의 이스터섬 이야기도 꺼내기 전에 모아이 석상 앞에서 사진만 찍고 돌아 나왔습니다. 생각보다 많이 봤습니다. 만족합니다.
남미관까지 다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딸이 말했습니다. "엄마, 박물관이 온도랑 습도 관리를 진짜 잘하는 것 같아." 저는 미라의 보존 상태를 보고 미술이나 문화재 관리 기술 같은 것에 관심을 좀 느꼈나 싶어서 내심 기뻤습니다. 이유를 묻기 전에 딸이 대답을 이었습니다. "나 여기 박물관에 들어오니까 코가 하나도 안 막혀. 비염에 완전 좋아, 여기. 최고야. 그러니까 미라도 안 썩고 있나 봐."
아.. 비염.. 그래. 그렇구나.
딸은 제국주의에 분노하다가 비염 증상의 호전으로 박물관의 환경 제어 기술력에 살짝 감동받았나 봅니다. 영국박물관에서 비염 이야기를 하다니. 역시 예상치 못한 전개네요. 이어서 저희 아들이 이야기합니다. "엄마, 이거 이름은 영국박물관인데 영국 꺼는 별로 없고 다 다른 나라 거야! 다 돌려주면 아무것도 없으니까 안 돌려주는 것도 맞는 거 같아!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이거랑 좀 비슷한 거 있어. 제주도에 아프리카 박물관 이거랑 좀 비슷한데?거기도 제주도랑은 상관없는 것들만 모아놨잖아. ㅋㅋㅋ"
아.. 아프리카 박물관.. 제주도.. 그래..
둘 다 아주 대단한 깨달음이죠? 역시, 1시간에 컷 하고 나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면서 저를 칭찬했습니다. 여기가 무료여서 정말 다행이다, 돈 내고 왔었으면 화가 치밀어 올라왔겠구나 싶었습니다. 이 유물들을 한 곳에 힘들게 다 모아놓고 돈도 안 받고 보게 해주다니, 해가 뜨지 않던 나라 영국에 마음 속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중정 카페에서 차라도 한잔 마시고 싶었지만 아이들이 나가자고 해서 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들이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해서 갔다 오라고 하고 굿즈샵에서 기다렸습니다. 화장실에 간지 꽤 시간이 지났는데 안 나오길래 화장실 앞에 가서 한참을 기다렸습니다. 가기 전부터 아들은 화장실 같이 엄마가 따라갈 수 없는 곳에서 돌발상황이 생기면 어떡하지 걱정했었는데, 벌써부터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서 불안이 밀려왔습니다. 종종거리며 남자화장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한참을 지나 아들이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나왔습니다.
"왜 이렇게 늦었어? 걱정했잖아."
"어. 나 쉬는 쌌는데, 변기에 물을 어떻게 내리는지 모르겠는 거야. 아무리 찾아도 없어서 왔다 갔다 하다가 결국은 몰라서 청소하는 아저씨한테 물어봤어."
"응? 청소하는 아저씨? 영어로? 어떻게?"
"아, 그게 말이지. 물 내리는 걸 영어로 뭔지 몰라서 'How can I 퓌퓨---ㅅㅅㅅ~~~!' 라고 물어보니까, 아저씨가 버튼 알려주더라고."
하우 캔 아이 퓨??? ㅋㅋ
옆에서 듣고 있던 딸이 "야 이 바보야, flush 학원에서 안 배웠냐? 으이그 쪽팔려."
저희 가족은 악마입니다. 서로 이제 감싸주고 그런 건 없습니다. 한번 잡은 건수는 절대 놓치지 않고 누구 하나 흠 잡혔다 싶으면 그걸로 미친 듯이 놀려댑니다. 아침에 '계란프라이, 원.'의 망신을 이제 넘겨줄 때가 되었습니다. 저도 합세해서 같이 실컷 놀리고, 딸에게는 너는 망신당할 일이 없을 것 같으냐며 엄중 경고를 때렸습니다. "하우 캔 아이 퓨~ 하우 캔 아이 퓨~"하며 셋다 낄낄대며 굿즈샵을 구경했습니다. 다 못 본 유물들은 굿즈샵 사진으로 실컷 보았습니다. 이제 진짜 다 봤습니다. 아쉽지도 않습니다.
박물관을 나오면서 딸이 살짝 속삭입니다.
"엄마. 아까 저 안에서 투어 하는 우리나라 애들 진짜 불쌍했어. 여기까지 와서 선생님 따라다니면서 유물 설명 들어야 해? 엄마는 저런 거 신청 안 해서 너무 좋았어. 엄마 완전 고마워. 빨리 나가자!"
돈이 오가지 않는 이상 좀처럼 엄마에게 고맙다는 소리를 하지 않는 딸의 입에서 고맙다는 소리가 나왔습니다. 모든 박물관과 미술관은 1시간 일정으로 잡고 투어 따위 알아보지도 않은 저에게 다시 한번 큰 칭찬을 내립니다. 수많은 후기를 보면서 '신청할까?' 1초 정도 고민했지만, 깔끔하게 포기한 저는 진짜 현명한 엄마였습니다. 돈도 아끼고, 시간도 아끼고, 기분도 좋고. 이것이 바로 1석 3조 아닙니까?
이제, 다음 일정은 레스터스퀘어와 자연사박물관입니다.
지금 숙소 나온 지 3시간도 안 됐는데, 딸이 롱부츠 때문에 발이 아프다고 징징대기 시작합니다. 걸어가야 하는데, 아직도 걸을 일이 많은데. 어찌할까요? ㅎㅎ
다음 편에.. ㅎㅎ
1. 짧고! 간결하게!
귀 댁의 아드님과 따님이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나 아시리아 문화에 아주 큰 관심이 있나요? 이집트 문화나 고대 문명사의 미스테리를 파헤치는 것을 좋아하나요? 도서관에 가면 세계사 책만 찾아서 읽는 역사 덕후인가요? 그렇다면 박물관은 그들에게는 살아있는 거대 도서관이며 동시에 천국과도 같을 것이니, 하루종일 있어도 상관없습니다. 어떤 특별한 유물과의 교감을 통해서 역사학자나 고고학자가 되겠다는 큰 꿈을 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죠. 그러나 저희 아이들처럼 역사, 특히 세계사에는 아무 관심도 없고 무지할뿐더러 우리나라 박물관도 좋아하지 않는 보통(이라고 표현하고 싶은데, 맞죠?)의 아이들에게 박물관은 제 아무리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라 할지라도, 보고 나면 "와. 대박. 크다. 오래됐다. 신기하다."정도의 감흥뿐일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성향에 따라 짧고, 간결한 일정을 잡으시길 바랍니다. 아이들과 함께 책자나 짧은 영상이라도 보면서, '꼭 보고 싶은 것 3개만 골라보자'라고 해서, 사전에 꼭 봐야 할 것들을 선정해 놓으시길 바랍니다.
2. 박물관 투어는 신중히!
박물관 투어는 진짜 신중히 하셔야 합니다. 저는 가기 전에 박물관과 미술관 투어는 과감히 고려대상에서 삭제했는데요. 제가 가장 잘한 선택중 하나입니다. 물론, 하면 너무 좋겠죠. 좋은 후기도 진짜 많았습니다. 그 유물들이 장물이든 전리품이든 간에, 한 장소에 교과서에서만 보던 어마어마한 유물들이 모여있고 몇천 년 전의 문명을 실제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기회입니까? 전문 가이드의 설명까지 있으면 정말로 아는 만큼 보이겠죠. 그러나, 사춘기들은 그냥 남의 말 듣는 것 자체를 싫어합니다. 특히 설명? 수업? 류는 정말 극혐 합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제대로 봐야지, 여기 돈이 얼만데 알고 봐야지.' 하는 생각은 부모만 합니다. 이 (당연한) 생각이 가정불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아이들을 객관적인 눈으로 잘 파악하셔서, 이거는 우리 애가 싫어하겠다 싶으면 바로 삭제하시길 바랍니다.
3. 아무리 겉핥기라도 엄마는 공부를!
겉핥기를 하려면 엄마는 속까지 핥아야 합니다. 대충 한 두 마디라도 해주면서 넘어갈 수도 있으니까요. TOP3을 정하고, 3개만 딱 보고 나오자고 해도 그것을 찾아다니는 동선 중에 지나치게 되는 시그니처 유물들이 많습니다. 내가 알고 있으면 아이들은 그냥 지나가더라도, "얘들아, 잠깐만"하고 나만 슬쩍 구경하고 와도 되고요. 아이들에게 "얘들아, 이것도 꼭 봐야 되는 것 중에 있었어. 한 번만 보고가!"라고 네비역할을 해줄 수도 있고요. 미리 많이 공부하고 와서 혼자라도 알찬 관람이 되었다면, 조금은 덜 억울하니까요!
여기 있잖아, 여기를 'The Great Court'라고, 우리말로는 '대중정'이라고 하는 곳이야.
분위기가 좀 신기하지? 실내기는 한데, 뭔가 바깥에 있는 느낌도 들고. 그치?
'밀레니엄 프로젝트'라고 영국에서 2000년을 맞이해서 영국에서 주요 지역에 상징적인 랜드마크나 건축물을 세우는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이 영국박물관의 대중정도 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세워졌대. 세워졌다기보다는 리모델링을 했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원래 여기는 야외공간이었는데, 박물관의 동선이 너무 지저분하고 로비역할을 하는 중앙공간이 없었대. 그래서 접근성과 이동 흐름을 개선할 것, 원래 있는 역사적 건축물과의 조화를 이룰 것, 자연광을 활용할 것, 새로운 공간 기능을 제시할 것과 같은 조건을 걸고 설계안을 공모했고,
지금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현대 건축가 중 한 명인 영국의 건축가 '노먼 포스터'의 설계안이 채택되었대. 노먼 포스터는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하는 '프리츠커 상'을 받은 사람이야. 우리가 곧 가볼 '밀레니엄 브릿지'도 이 건축가가 설계했대. 그리고, TV에서 봤지? '애플 파크', 애플 본사 말이야. 도넛같이 생긴 거. 그것도 이 사람이 설계한 거래. 대단하지? 어쨌든 철근과 유리를 활용해서 구조를 노출시키면서도 햇빛을 잘 이용해서 조화롭게 건물을 설계하는 게 특징이라는데, 여기만 봐도 철근, 유리, 햇빛. 이건 너무 잘 알겠다!
출처 : https://www.fosterandpartners.com/
저 유리패널이 3000장이 넘는데, 같은 모양이 하나도 없대. 유리라서 가벼워 보이지만 엄청 무겁대. 그런데 설계를 통해서 안정적으로 지탱할 수 있도록 했다니, 저런 걸 설계하고 계산하는 데도 다 수학이 쓰이고 공학이 쓰이고 그러는 거야. 그니까 수학 쓸데없이 왜 배우냐는 소리 좀 그만하라고. ㅋㅋ
여기 중앙에 동그란 곳이 'Reading Room'이라고 원래는 도서관이었는데, 너네는 잘 모르겠지만 버지니아 울프, 칼 마르크스, 마하트마 간디, T.S.앨리엇.. (간디는 알겠지?) 등, 여하튼 영국에서 '나 좀 지식인일세.' 하던 사람들은 다 여기서 공부하고 토론하고 그랬나 봐. 너무 신기하다. 여하튼, 엄마는 파르테논 신전이나 람세스보다 여기 이 공간이 제일 좋더라! 다음에 너네 없이 또 오면 저기서 얼그레이 티나 한잔 마셔야겠다.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