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에코백에 미쳐 쇼핑에 돌아있는 동안 원 없이 게임을 한 우리 딸과 아들은 기분이 좋습니다. 좀 쉬기도 했고 휴대폰도 맘껏 했고, 또 박물관 가나 헉! 했는데 운 좋게 박물관은 문을 닫아버려 못 들어갔기 때문에 기분이 더 좋습니다.
레고스토어의 아저씨가 여기 없는 것들이 햄리스 백화점에는 있을 수 있다고 친절하게 알려줘서, 아들이 햄리스 백화점에 가고 싶다고 합니다. 햄리스 백화점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장난감 백화점이며, 1층부터 5층까지 장난감만 있는 백화점입니다. 뭐 얼마나 오래됐길래 가장 오래됐다는지 싶어서, 가면서 이 백화점의 역사를 찾아보았습니다. 1760년에 처음 세워졌고, 현재 위치에는 1881년에 이전했다고 합니다. 1882년 임오군란... 이 자동으로 떠오릅니다. 한국식 주입식 교육이 참 좋은 게, 들입다 외운 것들이 이렇게 갑자기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임오군란이 뭔지 모르기 때문에 그냥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만, 조선시대 우리나라에서는 쌀로 줘야 할 군인들 월급을 안 줬다가 폭동이 일어난 시기에, 여기 영국에서는 장난감 백화점이라니, 신기할 따름입니다. 딸은 여기까지 와서 장난감 가게를 왜 가야 되냐 불만이 많지만 거기 예쁜 기념품도 많이 팔 것이라고 하니 일단은 따라나섭니다.
시간이 살짝 촉박해 이번에는 아이들을 시키지 않고 제가 직접 길을 찾았습니다. 이번에도 아이들이 버스를 탄다고 해서 버스를 탔습니다. 또 2층으로 올라가서 가장 앞자리에 착석합니다. 날은 완전 깜깜해졌습니다. 실없는 소리를 하며 낄낄대다 보니 뭔가 분위기가 이상합니다. 햄리스 백화점은 리젠트 스트리트에 있어서 가면 갈수록 번화가가 나와야 하는데, 이 버스는 가면 갈수록 거리 풍경이 어두워집니다. 급기야 묘지가 나옵니다. 유럽 도시의 중심에 있어서는 안 될 고가도로 비슷한 풍경까지 보입니다.
어? 이거 아닌데?
황급히 맵을 켜보니 완전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야야!! 내려! 빨리!!!
어느 나라에서나 버스를 반대방향으로 탄 자의 최후는 얼얼합니다. 멍청비용을 지불한 데다가 목적지에서 멀어진 것은 물론, 바보 같은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도 더해지기 때문이죠. 일정도 틀어지는 데다가 왔던 길을 또 되돌아가야 하고, 일행이 있는 경우 버스를 반대편으로 탄 책임이 나에게 있다면 그들의 엄청난 비난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 일행이 필터 없는 자식 놈들이라면 그 비난은 두배로 거셉니다.
"아! 엄마! 뭐야, 이거! 우리한테 찾으라고 하지, 엄마가 찾아서는 이게 뭐야"
"버스를 반대로 탄다는 게 말이 되는 거야?"
"바보야?"
둘이 눈만 마주치면 물어뜯고 싸우더니, 이럴 때는 죽이 척척 맞는 것이 아주 꼴사납습니다. 여튼 다시 찾아갑니다. 구글 지도 없던 시절에는 여행 어떻게 했나 모르겠네요. 버스 타면 20분이면 가는 거리를, 1시간이 걸려 도착합니다. 햄리스 백화점은 어른도 눈이 돌아갈 정도로 예쁘고 신기한 장난감들이 많았습니다.
영국에서 패딩턴처럼 사진을 찍겠다며 맞지도 않는 누나의 더플코트를 입고 하루종일 패딩턴처럼 다닌 아들은 실망했습니다. 아들이 잔뜩 기대한 한정판 레고는 없었기 때문이죠. 패딩턴으로 가득한 햄리스 백화점에서 기념사진만 찍고 소득 없이 나옵니다. 딸은 또 투덜댑니다. 별 것도 없는데 왜 왔냐, 내 나이에 지금 이런데 와야 하냐(나는? 나도 여기 올 나이는 아니거든...?), 왜 쟤한테 다 맞춰주냐, 하며 궁시렁 대지만 일단 잘 달래서 나옵니다.
저는 이상한 여행 취향을 갖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 가면 랜드마크는 꼭 낮에도, 밤에도 보고 싶습니다. 아니,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풍경이 다르니까요. 그래서 저는 가기 전부터 빅벤과 런던아이, 타워브리지, 세인트폴 대성당은 꼭 낮과 밤의 모습을 다 보겠다 생각했습니다.
저희의 일정은 일반 패키지여행보다 훨씬 빡빡한 여행이기 때문에, 다른 날은 밤의 일정이 꽉 차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 온 김에 빅벤과 런던아이를 꼭 보고 집에 가야 했습니다. 밤 일정이 비어있는 날은 이날뿐이었기 때문이죠. 이미 시간은 9시 정도 되었습니다. 시차적응도 안 되었는데 숙소에 바로 가서 자도 모자랄 시간대였죠. 그렇지만 저는 극한 엄마이므로 버스를 타고 웨스터민스터 다리로 갑니다.
기필코 봐야겠거든요. 밤의 반짝이는 빅벤과 런던아이를.
그래서 다시 버스를 잡아 타고 웨스터민스터 다리로 갑니다. 버스를 타는 순간 후회했습니다. 아이들이 둘 다 앉자마자 잠에 빠졌거든요. 내릴 때가 되어 내리자고 깨우니 둘 다 짜증이 폭발합니다. 빅벤을 밤에 보려면 오늘 밖에 일정이 안된다고 달래서 내렸습니다. 웨스터민스터 다리 위로 갔는데 진짜 춥습니다. 다리 위에서 바람이 세차게 불고 으스스한 추위에 턱이 덜덜 떨려 이빨이 부딪힙니다. 아이들은 화를 내고 머리카락은 입으로 자꾸 들어갑니다. 사진 한 번만 찍고 가자고 하니까극강의 분노를 표출합니다.
"사진은 무슨 사진이야!! 춥고 바람도 불고 배도 고프고 잠도 오는데!!! 여기 왜 왔어!! 추워!!!"
"대체! 왜! 빅벤을! 두 번이나 보는데! 왜!!"
앗. 오늘이 어쩐지 순탄하다 했더니 굴려도 너무 굴렸나 봅니다. 미안하다.
솔직히 오늘 이건 무리데쓰다. 쏴리.
다리 위에서 빅벤과 함께 찍은 유일한 사진....
누가 봐도 욕하는 듯한 춥고 배고픈 기념사진을 남기고 (이 사진도 목숨 걸고 찍은 거..) 갑니다. 가자. 오늘은 미안하다. 호텔로 재빨리 가서 씻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누웠습니다. 피시앤칩스 말고는 먹은 것도 없는데 너무 지쳐서 뭘 먹을 힘도 없습니다. 아이들이 휴대폰을 하고 싶다고 하길래 그래도 오늘 잘 따라와 줘서 고맙다고 하면서 허락해 줬습니다. 휴대폰을 손에 쥔 지 5분도 안 되어 그냥 잡니다. 별로 노력한 것도 없는데 자동으로 시차 적응이 되었습니다. 그것도 하루 만에. 완벽 적응.
다음날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의 일정은 미리 예약해 두었던 모닝투어입니다. 웨스터민스터 역에서 9시에 모여서, 걸어 다니며 명소를 구경하는 워킹투어입니다. 아이들에게 집합 시간을 8시 30분이라고 속이고 더 빨리 나섰습니다. 아침 빅벤을 즐겨야 되니까요. 아침의 빅벤을 보니, 어제 밤에 괜히 왔다 싶습니다.
올라오는 햇빛에 빅벤이 반짝반짝 보석처럼 빛납니다. 어떻게 이런 예쁜 시계탑을 디자인했을까요. 높고 멀어서 보이지도 않지만 금색으로 곳곳에 달린 장식물들이 아침햇살을 받아 더욱 반짝입니다. 하늘은 무슨 일이죠, 런던 흐리다고 누가 했나요. 빅벤 앞으로 빨간 이층 버스 지나가고요, 런더너들 조깅하고 있고요. 아이들 입에서도 탄성이 나옵니다.
투어를 함께 할 사람들과 가이드님을 만났습니다.
저희 3명, 엄마와 중학생 아들 한 팀, 남매와 부모가 있는 4인 가족. 이렇게 세 팀이 모였습니다.
자상한 아빠와 온 가족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니 남편도 같이 왔으면 좋았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완전체 가족여행이 살짝 부러웠습니다. 한껏 꾸미고 나온 저희에 비해서 지나치게 수수한 차림의 엄마와 아빠가 대비되었습니다. 부모가 차분하고 수수하고 그래서 애들도 저렇게 온순한 건가? 교수? 연구원? 공부하는 직업인가? 혼자 생각하던 중에 그 집의 화장기 없는 수수한 엄마가 가이드에게 말했습니다. 공항에서 수화물이 분실되어서 지금 짐이 하나도 없고 옷도 속옷도 아무것도 없다면서 울상을 지었습니다. 아. 안 꾸민 게 아니라 못 꾸민 거였습니다. 짐 없는 거보다 남편 없는 게 낫죠? ㅋㅋ 저희는 짐은 넘쳐나니까요.
그에 비해 사춘기 아들과 함께 온 엄마는 명품 패딩과 풀 메이크업으로 화려한 외모를 자랑했습니다. 저 엄마는 사춘기 아들이랑 둘이 여행도 오고 좋겠다, 생각했는데 자세히 관찰해 보니 아들은 장발의 머리에 감춰진 귀에 에어팟을 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누구의 말도 듣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어떻게 저걸 여기까지 들고 왔을까 싶은 스케이트 보드를 옆구리에 끼고 있었습니다. 저걸 타고 돌아다니겠다는 건가? 싶었는데 진짜 그걸 타면서 돌아다녔습니다. 가이드 설명도 안(못) 듣고 자기 마음대로 돌아다니면서 말이죠.
이어폰을 끼고 가이드의 설명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어제 추위에 덜덜 떨며 비명을 지르면서 지났던 다리를 지나고, 런던아이도 보고, 설명도 들었습니다. 가이드님이 사진 포인트를 꼭 집어 주시고 사진도 많이 찍어주셨습니다. 3일 만에 세 명이 모두 웃고 있고 구도도 멀쩡한 가족사진을 찍었습니다. 이어폰을 끼고 있으니 아이들이 말도 안 걸고 참 좋습니다. 능숙한 가이드의 설명은 더욱 좋고요. 제가 말하면 듣는 척도 안 할 영국의 역사들도 잘 설명해 주시고 아이들은 강제로 듣고 있으니 너무 좋습니다. 3시간을 걷는 워킹투어라 계속 걸어야 하는데,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 아이들이 징징대지도 않습니다. 저희 아이들은 집에서는 새지만 밖에서는 안 새는척하는 기적의 바가지들이라 애써 조용히 있는데 그것도 너무 좋습니다.
빅벤을 지나 웨스터민스터 사원을 지나갑니다. 빨간 공중전화박스가 보이는 포토스팟에서 또 멀쩡한 가족사진을 건져서 기분이 매우 좋습니다. 이것만 해도 이번 투어는 가치가 있습니다. 저희 아이들은 가이드가 서라고 하니 서고, 사진도 곱게 찍어줍니다.
그런데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아들을 둔 저 집의 엄마는 좀 불쌍합니다. 저 아들의 이어폰은 노이즈캔슬링을 해놨는지, 음악이 나오는지 도통 아무것도 듣지를 않아 흐름은 계속 놓치고 심지어 엄마랑 사진도 안 찍어줍니다. 엄마는 엄청 사랑이 넘치는지 아들에게 계속 "아들, 사진 한 번만, 응? 같이 찍자, 응?" 하며 매달려도 보고, 가이드도 보드 보이와 엄마를 어떻게든 사진에 담아주려고 하지만 그 아들은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아들이 저 지경이면 화가 날 만도 한데, 엄마는 아들에게 계속 애교를 부리며 사진 찍어달라고 매달립니다. 그 목소리가 매우 카랑카랑하고 커서 투어하는 내도록 저희도 같이 시달립니다. '야, 엥간하면 좀 찍어드려라.'라는 마음의 소리가 튀어나올 뻔했습니다.
이 집이나 저 집이나 사춘기 자식 놈과 사진 한 장 찍기가 이렇게 힘듭니다. 여러분.
버킹엄궁 근위병교대식을 보러 갑니다. 가이드님이 딱 알려주신 명당에서 근위병이 나오는 것부터 봤습니다. 아무 관심 없을 줄 알았던 딸이 휴대폰을 꺼내 영상을 찍기 시작합니다. 아들도 실제로 보니까 멋있고 신기하다며 연신 사진을 찍어댑니다. 별거 아닐 거 같은데 볼까 말까 하다가 교대식이 있는 날 투어를 신청한 제 자신을 또 칭찬합니다. 근위병의 행진을 따라 버킹엄궁까지 오니 초록색 잔디밭과 옅은 청록색의 궁전 지붕과 앞에 있는 금색 동상 전부가 반짝반짝하며 '런던 보석 여기 또 하나 있소' 소리칩니다.
아. 맑은 하늘도 한몫하네요.
버킹엄궁 옆 세인트 제임스 파크로 갑니다. 런던에 큰 공원들이 많지만 겨울이라 저희는 하이드파크를 비롯한 공원들은 아예 코스에서 빼서 아쉬웠는데, 버킹엄궁 옆에 이런 공원이 있는 줄 몰랐지 말입니다. 그 공원의 호수에 있는 오리나 공원 풀숲에 사는 새들을 비롯한 동물들은 모두 왕실이 관리한다고 했습니다. 가이드님이 주신 견과류로 청설모나 앵무새들을 유혹하며 놀았습니다. 앵무새가 아들의 머리 위에 몇 마리나 앉았다가 가고 청설모도 손에 얹은 견과류들을 쏙 빼가서 먹는 것을 보는 재미에 아이들이 완전히 매료되었습니다.
"엄마, 여기 또 오자. 런던에서 여기가 제일 좋은 거 같아. 호두 엄청 많이 사서 내일 또 오면 안 돼?"
도심 속에 이런 공원이 있다는 것을 너무 부러워했고, 이 공원은 남은 기간 중에 한 번 더 오기로 약속했습니다. 사춘기니 뭐니 난리를 쳐도, 아직 아이 같은 순진한 면이 있구나 싶어서 내심 귀엽고, 한 겨울에도 초록색 잔디와 꽃밭을 품고 있는 이런 공원이 있다는 것이 저도 부러웠습니다.
마지막 코스는 코벤트가든이었습니다. 가이드님은 런던 맛집 리스트를 공유해 주시며 코벤트가든에서 모든 투어가 끝이 났습니다. 배가 고파 그 맛집 중에 어디라도 가고 싶었지만 스테이크는 먹기 싫다 하고, 파스타도 싫다고 했습니다. 그런 것들을 빼고 나니 남은 맛집들은 인도 음식, 태국 음식... 다른 나라 음식 밖에 없었습니다. 다 싫다고 합니다. 여기 와서 카레 먹고 싶겠냐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안 먹던 쌀국수를 여기서 먹어야겠냐고 합니다. 다 맞는 말입니다. 햄버거 먹자하니 그것도 싫답니다.
결국에는 아무 카페나 들어갑니다. 그래도 어제 피시앤칩스의 사태를 겪었기 때문에 카페를 고를 때 사람이 좀 많이 있는 집으로 골랐습니다. 저는 커피를 시키고 샌드위치와 잉글리시 블랙퍼스트를 시킵니다. 한 입 먹고 딸이 말합니다.
"엄마, 이거 다 얼마야?"
"응. 한 8만 원 정도?"
"헐. 이렇게 맛없는데 8만 원이라고?"
하더니 명언을 납깁니다.
"엄마. 영국에서는 이제 음식을, 돈을 주고 사 먹지는 말자."
그리고, 실제로 그리하였습니다. 밖에서 사 먹는 모든 끼니를 거부하고 이들은 남은 일정동안 아침은 조식으로 때우고 점심은 안 먹고 저녁 늦게 라면을 먹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매일 얼굴이 퉁퉁 부은 채 돌아다닙니다.
이제 오후는 타워브리지로 가는 건데요,
타워브리지에서는 또 무슨 일이 있을까요?
다음 편을 기대해 주세요!
1. 잘 고른 투어 하나, 비싼 패키지 안 부럽다
패키지여행에서 가장 좋은 점은 무엇일까요? 이동이나 일정의 편의성도 있지만 현지의 유적이나 관광지에 대한 정보, 역사나 문화에 대한 가이드의 설명도 큰 장점 중의 하나죠. 자유여행을 하지만 투어상품을 적절히 이용하면 적은 돈으로 재미있는 설명을 들으며 알차게 여행할 수 있습니다. 특히, 스냅사진을 보내주는 투어상품은 사진 찍기 싫어하는 사춘기들과 함께하기에는 정말 좋은 상품이었어요. 부모가 찍자고 하면 싫다고 하지만, 남들이랑 같이 있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같이 찍긴 하더라고요? 사진도 아주 멋지게 남았고요. 투어 상품은 우리나라 여행 사이트에서도 충분히 검색할 수 있으니, 후기와 별점을 참고해서 선택하시길 바랍니다.
2. 예약은 때와 장소에 따라
인기 있는 투어는 예약이 빨리 마감이 되어서 먼저 예약해 두는 것이 좋아요. 특히 박물관이나 미술관 투어는 인기 있는 가이드의 경우 금방 예약이 끝나더라고요. 야외 활동을 많이 해야 하거나, 두세 시간 정도 걸어 다니는 워킹투어인 경우 날씨에 따라 변동이 있을 수 있으니까 현지에 도착해서 날씨예보를 보고 예약하는 것도 추천드려요!
3. 가이드님께 모든 것을 다 물어보자
현지의 투어 가이드님은 한국말을 잘하는 현지인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우리 입장에서는요. 그래서 궁금한 것들을 마구 물어보면 정말 친절하게 알려주시더라고요. 맛집이나 선물 리스트, 가성비 상품, 포토 스팟이나 일정이나 여행지 정보 같은 것들을 물어보면 바로바로 척척입니다. 같은 돈을 내고 가지만 사춘기 아이들은 따라와 주는 것만 해도 감사하다 생각해야 하니, 이왕 간 거 부모님이라도 지적 호기심을 잔뜩 충전하는 기회로 삼아 본전을 쫙 뽑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영국 근위병'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이런 거지?
엄마도 이런 차림의 근위병을 기대했는데, 우리가 본 근위병은 겨울이라 회색 코트를 입어서 빨간색 옷을 입은 근위병 모습을 못 봤네.
그래도 근위병의 최고 시그니처는 까만 털로 된 저 길고 큰 모자 아닐까?
패딩턴에서도 나오잖아. 저 모자에서 먹을 거 꺼내서 패딩턴한테 주는 장면, 봤지?
저 모자는 진짜 털일까? 얼마일까?
저 모자는 천연 불곰 모피 모자래. 영국군에 근위 보병이 현재 4천 명 정도가 있는데, 모자는 2천 개 정도밖에 없어서 돌려가면서 쓰고 있대. 자연산 불곰 모피라 한 개당 1300달러(한화 약 180만 원) 정도 제작비가 들고 있다고 하는데 매년 100개씩 제작된대. 그럼 무슨 소리야? 불곰들이 100마리씩 계속 희생된다는 소리겠지.
동물보호단체에서는 합성모피를 사용하도록 계속 주장하고 있는데, 합성 모피는 방수랑 통풍, 보온 이런 것들이 천연소재랑 달라서 어려움이 있나 봐.
그런데, 왜 저렇게 거대하게 만들었을까?
저 모자를 지금은 전통으로 쓰고 있지만, 처음에는 1800년대에 만들어졌는데 적군을 위협하고 자신을 보호할 목적으로 크게 만들었대. 무슨 이야기냐고? 옛날 말을 타고 싸웠던 기병들은 적군을 조준할 때 머리를 조준했는데, 저런 모자를 쓰면 머리가 대빵만 해 보일 거 아니야. 그럼 총을 쏴도 헛빵이겠지?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