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도봉봉 Nov 09. 2024

세인트 폴 성당에서 퍽큐를 날리다

어디 가서 세례 받았다고 말하지 마라


오늘의 계획된 일정은 <내셔널갤러리-세인트 폴 성당-야경투어> 입니다.


야간개장으로 전날 저녁에 갔던 내셔널갤러리에 간다고 하니, 아이들이 불만입니다. 이번 여행에서 제가 가장 오래도록 있고 싶은 곳이 내셔널갤러리였습니다. 전날 저녁 기습 방문은, 고흐의 해바라기만 보고 재빨리 튀어나와 다른 그림은 제대로 감상을 못했으니 이번이 찐이죠. 그런데 아이 둘 다 입이 툭 튀어나와 있습니다. '해바라기 봤으면 됐지, 왜 또 가냐'며 투덜댑니다.




먼저, 트라팔가 광장에 내렸습니다. 분수도, 넬슨 동상도, 사자도 구경합니다. 영국의 넬슨은 우리나라의 이순신 장군과 같은 존재이고, 트라팔가르 해전은 한산도 대첩이랑 비슷하게, 영국이 대승한 전투라는 설명을 해줘도 듣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저도 하고 싶은 말을 이때까지 많이 참았습니다. 트라팔가 광장은 오늘로 땡이기 때문에 듣든가 말든가 제 머릿속에 있는 정보들을 다 방출합니다. 조사해 온 게 아까우니까요. 일단, 트라팔가르 해전은 영국이랑 프랑스-스페인 연합군이랑 싸운 거다, 영국 함선은 단 한 척의 손상도 없었고, 프랑스-스페인 함대는 1척 격침, 22척이 나포당했다, 저 넬슨 동상이 왜 저렇게 높게 있느냐? 그것은 바로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넬슨 장군의 기함이었던 배의 돛대의 실제 높이인 55m 위에 넬슨 동상을 세웠기 때문이다. 저 사자들은 그 전투에서 날아온 프랑스-스페인의 포탄을 녹여서 만든 것이다. 블라블라..



아무도 안 듣습니다. 오늘은 날씨도 흐리고 여행의 피로도 어느 정도 쌓여 아이들도 지쳐있습니다. 트라팔가르 광장 분수 앞에서 대충 사진 몇 장 찍고 내셔널갤러리로 들어갑니다.


전날 해바라기를 봐서 목적성을 잃었는지 진짜 심드렁합니다. 어제 괜히 왔었나 싶었지만 고흐의 해바라기가 있는 전시실에 인파가 그득한 것을 보고 "어제 잘 왔지?" 하며 혼자 으쓱합니다.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네오나르도 다빈치의 <암굴의 성모>, 조르주 쇠라의 <아스니에르에서의 물놀이>를 봤는데 그냥 'Just see' 수준입니다. 진짜 그냥 '구경' 그 자체입니다.



미로 같은 미술관의 전시실에서 또 다른 전시실로 이동할 때마다 딸은 전시실 가운데에 있는 의자로 직행합니다. 비슷한 나이의 현지 아이들은 일상인 듯 자연스레 앉아 명작들을 보며 크로키북에 드로잉을 하고 있는데 나름대로 미술에 관심이 있는 딸아이가 쉽게 올 수도 없는, 교과서에서 봤던 명작 그림들이 한가득인 이곳에서 휴대폰에 코만 처박고 있으니 속이 부글부글합니다. 누나가 저러니 동생도 옆에 붙어 휴대폰만 합니다. 데리고 다니다가 지친 저는 혼자라도 봐야겠다 싶어, "그럼 여기 앉아있어." 하고서는 혼자 가이드북과 챙겨 온 미술관 책을 들고 체크해 둔 그림을 찾아 뛰어다니며 도장 깨기 하듯 '보고, 가고'를 반복합니다.


런닝맨처럼 미술관을 이쪽저쪽 뛰어다니며 보고 싶었던 그림들을 다 본 후에 아이들이 있던 전시실로 갔습니다. 여전히 휴대폰 하고 있고요. 이제 머리들이 커서 가기 싫다는 곳을 억지로 끌고 다닐 수는 없으니 제가 욕심을 버리는 수밖에 없죠. '어제 괜히 왔었나, 얘들을 데리고 미술관을 오면 안 되는 거였나'하며 다음에는 꼭 혼자 와서 하루종일 있겠다 다짐했습니다. 가고 싶었지만 일정에 넣지 못한, 지도에 즐겨찾기로만 되어있는 <테이트 모던>, <테이트 브리튼>, <코톨트 갤러리> 에게 미리 마음속으로 작별의 인사를 전합니다. 안녕.. 기다려.. 다음에는 미성년자 없이 올게.. ㅎㅎ


저만 아쉬움이 남았던 내셔널 갤러리의 관람은 한 것도 아니고, 안 한 것도 아니게 끝이 났습니다. 아이들은 푹신한 소파에 편안하게 드러누워 쉬어서 그런지, 미술관을 나오자 갑자기 에너지가 넘칩니다.


"엄마! 우리 어제 갔던 그 공원 멀어? 청설모 보러 다시 가면 안 돼?"

"오! 거기 가자, 엄마!! 공원에 또 가고 싶어!"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미술관에서 너무나 빨리 나온지라 시간도 많이 남았고, 세인트제임스 공원은 걸어서 가면 되는 거리니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저도 '그래! 미술관이 대수냐. 얘들이 미술 작품 봐서 뭘 느끼는 게 이상하지. 앵무새 밥이나 주러 가자!' 하고 마음을 편하게 먹고 미술관에 대한 미련을 버리니 마음도 가뿐합니다. 마트에서 엄청 큰 견과류를 사서 공원으로 향합니다. 어제는 투어 팀의 일정에 따라서 20분 정도의 자유시간만 있었지만, 오늘은 시간 제약도 없으므로 마음껏 놀 수 있습니다. 길도 알고, 공원 지리도 알아서 어디에 무슨 동물들이 있는지 잘 알고요.



공원에 도착해서 앵무새와 청설모를 위한 무료 급식소를 열었습니다. 손 위에 견과류를 올려놓으면 색색의 앵무새들이 몇 마리나 왔다 가며 먹이를 가지고 가고, 청설모들도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않고 냉큼 다가와 야금야금 먹습니다. 저도 오랜만에 다음 일정에 쫓기지 않고 여유롭게 순간을 즐겨봅니다. 미술관에서 빨리 나와서 좋은 점도 있었네요.

이제 세인트 폴 성당으로 갈 시간입니다. 저는 미술관에서 나오는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아이들은 이 공원을 떠나는 것이 아쉬운가 봅니다. 런던에 박물관이랑 미술관들은 무료인데, 세인트 폴 성당은 입장료도 냈고, 비싸다, 시간도 정해져 있다는 핑계로 아이들을 설득하여 겨우겨우 끌고 갑니다.


맛없을 수가 없는 비주얼인데...............


배가 살짝 고프다고 해서 공원 안에 있는 예쁜 카페에서 커피와 빵 두 개를 샀는데, 화려하게 전시되어 있는 빵들에 비해서 맛은 또 아쉬웠습니다. 셋 다 "역시....." 하며 또 실패한 음식 문화를 체험합니다. 그리고 세인트 폴 성당으로 가는 버스를 탑니다.



세인트 폴 성당 안으로 들어갑니다. 저희 가족은 천주교 집안입니다. 지금은 잘 가지 않지만 한 때는 성당도 열심히 다녔습니다. 저희 딸 '로사'는 사춘기가 절정일 때 첫 영성체를 준비하다가 저와는 갈등이 폭발한 후, 무신론자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성당 가는 거 싫은데, 돈까지 내면서 성당을 왜 오냐"며 오기 전부터 궁시렁 대더니 성당 안에 들어가자 불만이 폭발합니다. 저는 나름 아이들까지 데리고 여기까지 왔으니, 분위기도 좀 잡고, 성호경도 한 번 긋고 진지하게 가족 건강과 사랑에 대한 기도를 하고 싶은데 딸이 옆에서 계속 불경스러운 소리를 합니다. (차마 여기에 옮길 수도 없습니다. ㅋㅋ)



이렇게 역사적이고 아름다운 성당에서 조금은 감성에 젖고 싶은데, 옆에서는 귀에 피가 나도록 불만분자의 무신론 강의가 펼쳐지고, 아들은 아무 생각도 없이 한 두 마디 대꾸하다가 둘이 싸움이 날 지경입니다. 제지하고 싶은데 큰 소리도 내지 못해 답답합니다. 성전 앞에서 남매끼리 험한 말이 오가다가, 급기야 몸싸움으로 번지기 직전입니다. "야!! 조용히 해!! 둘이 떨어져! 서로 말하지 마!!!!!!!" 하며 참다못해 소리를 질렀습니다. 가까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다 쳐다보고요. 셋 다 기분이 상할 대로 상했습니다. 성당까지 와서 이게 뭐죠?


세인트 폴 성당의 하이라이트는 전망대죠. 오며 가며 세인트 폴 성당의 돔이 보일 때마다, "우리도 저 위에 올라갈 거야. 저기 올라가면 진짜 좋아."라고 이야기해 둔 터라, 전망대로 올라가는 것은 아이 둘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근데 지금 이런 파투난 분위기에서 그 길고 높은 계단을 올라가야 하다니, 운명의 장난인가요. 어쨌든 갑니다. 사춘기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가 '등산'입니다. "다시 내려올 거 왜 올라가냐"는 허무주의 논리를 들이밀며 귀차니즘을 합리화하죠. 계단은 오죽하겠습니까.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계단은 살짝 무섭고 답답합니다. 둘이 서로 말하지 말라고 엄중 경고 했는데, 이 고난의 계단을 올라가면서 언제 싸웠냐는 듯, "야, 너무 무섭지 않냐?", "밀지마라잉" 하면서 낄낄대며 올라갑니다. 그럴 거면 왜 싸운 건지. 저만 성당에서 무식하게 소리 지른 진상이 됐습니다. 그래도 서로 웃으니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저것들한테 또 말렸다 싶어 짜증도 납니다.


세인트 폴 성당 전망대의 첫 번째 전망대 <스톤 갤러리>에 도착합니다. 딸과 아들이 입이 댓 발 나와서 벤치에 앉아 쉽니다. 딸은 바깥 풍경을 볼 생각도 하지 않고 벤치 구석에서 눈에 초점을 풀고 앉아있습니다. 아들이 "누나는 고작 이런 계단 올라오면서 무섭다고 찡찡대고. 쫄탱이 찐따야."라고 공격하자 딸이 매섭게 째려보더니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퍽큐를 날립니다. 제가 너무 깜짝 놀라, "야! 외국에서는 절대 그거 장난으로라도 하지 말랬잖아!!" 하며 주변에 보는 사람이 없는지 살펴보며(다행히 아무도 없었습니다), 나무라자 딸이 기괴한 미소를 지으며 낄낄댑니다. 가운데 손가락은 접지 않은 상태로요. 그걸 또 아들은 낄낄대며 사진을 찍습니다. 돌겠습니다. 제가 상상한 세인트 폴 성당에서의 모습은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요. 런던의 꼭대기에서 셋이 예쁘게 런던을 바라보며, 어깨동무하고 '우리 이 추억, 오래도록 간직하자'는 사랑 가득한 모습을 상상했는데, 이런 유튜브 병맛 쇼츠같은 모습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제정신 아닌 인간들을 데리고 성당에 온 내가 멍청했다며 한숨을 내쉬며, 꼭대기 전망대로 올라갑니다. 전망대로 올라가는 길은 더욱 좁고, 가파릅니다. 이제 돌계단도 아니고 삐걱대는 철로 된 계단을 올라갑니다. 세상 센척하는 딸이 무섭다며 소리소리를 지르며 올라가고, 그 밑에 동생은 쫄보라며 놀리며 깔깔대며 누나가 겁에 질린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고, 그걸 또 왜 찍냐며 소리소리를 지르며 서로 싸웁니다. 저도 "그만해. 하지 마. 시끄러워." 이 세 마디만 반복하며 성스러운 세인트 폴 성당의 가장 높은 전망대인 <골든 갤러리>로 올라갑니다. 올라가니 발 밑으로 런던이 쫙 펼쳐집니다.



"와! 여기 너무 좋다,! 성당 지붕도 보이고, 저기 런던아이까지 보이네!"

하며 휴대폰을 난간밖으로 내밀어 사진을 찍으니 딸이 기겁을 하며 무섭고, 휴대폰 떨어진다며 호들갑을 떨고 난리를 치며 사진도 못 찍게 합니다. 바람도 많이 불고 너무 높아서 무섭다면서 빨리 내려가자고 합니다.

각자 다른 이유로 기분이 상한 세 사람은 억지미소를 지으며 기념사진을 찍고, 결국 한 5분도 제대로 못 있고, 내려와야 했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흔들리는 철제 계단 난간에 매달려 또 무섭다며 소리를 지르고, 서로 또 놀리고, 싸우며 내려옵니다. 주여. 저는 무엇을 잘못했나요. 품 안에서 좀!!! 편히 쉬게 해 주소서.

우여곡절 끝에 내려옵니다. 성당 지하에 가서 아까 광장에서 봤던 넬슨 장군과 나이팅 게일, 크리스토퍼 렌의 묘지를 구경하고 나옵니다. 미술관에서 나올 때는 아쉬움이 그득했는데, 이 성당을 나가면서는 후련한 마음이 듭니다. 이제 마음껏 소리 지를 수 있으니까요. 성당 안이라 어찌나 조심하고 참았는지요.


이제 열받게 하면 나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를 다짐하며 성당을 나왔는데, 나오고 나서는 요놈들이 또 순둥이가 되었습니다. 버스정류장에서 페파피그 버스가 지나가자 반가워하며 사진을 찍고, 성당이 보이는 길목에서 춤도 추고 서로 동영상도 찍습니다. 웃으면 안 되는데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터졌습니다. 제가 졌죠. ㅋㅋ


저녁에 있을 야경투어의 집결지는 세인트 폴 성당 주변인데, 성당에서 예상보다 일찍 나와버려서 시간이 또 남습니다. 이 사춘기들은 마법의 시간 단축자들이네요. 파이브 가이즈에 계속 집착하는 저는 세인트 폴 성당 앞 파이브 가이즈에서 햄버거를 먹자고 제안했지만, 아이들은 햄버거도 싫고, 성당이 보이면 더 싫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계속 아무 생각 없이 춤이나 추고 있는데, 어떡하죠?


황급히 지도를 켜서 갈 곳을 찾아보니 시간이 없어서 못 간다고 생각했었던 <버로우 마켓>에 갔다 올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너네, 시장 가 볼래?"라고 하며 사진을 보여주니 완전 좋다며 쌍따봉을 날립니다. 버로우 마켓으로 바로 날아갑니다.


관광화 되어있긴 하지만, 처음 보는 생경하고 활기찬 시장 모습과 휘향 찬란한 먹거리들에 아이들이 눈이 돌아갑니다. 그러나 실패의 경험이 누적되어 쉽사리 저녁으로 먹을 음식을 고르지 못하는데요. 결국 고른 것은 그나마 맛을 보장할 수 있는 말레이시아식 치킨덮밥과 사람이 엄청 많았던 가게의 라자냐였습니다다. 오! 그나마 가장 맛있는 음식을 찾았습니다. 시끌시끌 분위기도 좋고 아이들도 만족합니다. 인기템으로 보이는 생딸기에 초코를 부어 만든 디저트도 사 먹고, 저는 올 수 없을 것 같아 포기했었던 <Monmouth Coffee>에서 맛있는 커피도 사 먹습니다. 샤드와 버로우마켓이 같이 나오도록 사진도 찍고요. 하루종일 투닥투닥하며 싸워대고, 저도 미술관도, 성당도 아쉬움을 가득 안고 나섰지만 시장에서의 먹부림과 따끈한 커피 한잔이 아쉬움도, 피곤함도 달래줍니다.



다시 야경투어 집결지로 모였습니다. 세인트 폴 성당부터 밀레니엄 브리지, 셰익스피어 글로브, 런던브리지, 헤이즈 갤러리아, 타워브리지까지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워킹투어를 마쳤습니다. 저의 계획대로 세인트 폴 성당과 타워브리지는 낮과 밤의 모습을 모두 보았고요. 야간 스냅사진이 포함된 투어라 저희가 혼자서 다녔다면 절대로 못 찍을 전문가 수준의 야간 사진과 셋 모두가 온전한 고화질 가족사진을 얻게 된 아주 만족스러운 투어였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다녀서, 아이들이 더 이상 으르렁하며 싸우는 일이 없었다는 점도, 추운 밤에 3시간을 걸어 다녔지만 불평 없이 끝까지 잘 걸어 다녔다는 점도,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투어였습니다. 사춘기들 데리고 중간중간에 투어 끼워넣기, 정말 강추합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호텔로 가는 버스 안에서, 저 멀리 타워브리지가 또 반짝이네요.

오늘 하루가 정말 깁니다.

내일은 옥스퍼드와 코츠월드 투어가 계획되어 있는데요, 내일은 안 싸우고 잘 다녀올 수 있을까요? ㅎㅎ





가기 싫다는 사춘기들을 억지로 어딘가에 데리고 가야 할 때, 어떡해야 하나요? 


1. 내려놓아야 합니다.

진짜 말 안 듣습니다. 말 안 듣는 게 하루 이틀입니까? 정해진 일정에 따라 움직여야 할 때, 비싼 입장권이나 관람료를 이미 지불한 곳에 안 간다고 고집을 부리거나, 들어가서도 입을 댓 발 내밀고 있을 때, 어떡해야 할까요? 방법은 없습니다. 노답. 그냥 이 상황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그래. 학원도 돈 내고 가서 배워 오는 것도 없는데 너네는 여기서도 돈을 버리는구나. 나니까 너네 키운다...'생각하시고 혼내거나 속상해하지 마시고 내 마음을 바꿔먹는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 이 사춘기들은 잃을 것도 없고, 자기밖에 모르는 놈들이니 그냥 가기 싫다, 하기 싫다 하면 땡입니다. 유명한 그림 하나 안 보면 어떻습니까. 그냥 돈 아까워도 부모가 내려놓는 수밖에 없습니다.


2. 내버려 두어야 합니다.

그 많은 외국인들 사이에서도 가끔 들리는 한국말은 어쩜 그렇게 잘 들릴까요? 제가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종종 들었던 한국말 중에 하나가 "여기까지 와서 뭐 하는 거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집이나 저 집이나 다들 휴대폰만 하고 있는 사춘기들 때문에 큰 소리 나는 거죠. '여.기.까.지. 와.서.'라는 마인드를 버리고, 그냥 조금 구슬려서 데리고 다니다가 정 싫다 하면 카페나 굿즈샾에 가둬놓고 내버려 두는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 딸이 여행 말미에 저에게 한마디 갈겼죠. "엄마, 나 우리나라 중앙박물관도 싫어해. 내가 우리나라 역사도 제대로 안 보는데, 여기 와서 남의 나라 유물 보게 생겼어?" 맞는 말이죠? ㅋㅋ 의외로 사춘기들이 똑똑하다니까요. 그니까 '거기까지 가서' 서로 언성 높이고 싸우지 말고, '잘' 갔다 오는 것에 목적을 두고, 우리가 양보하자고요.


3. 나라도 즐겨야 합니다.

진짜 중요합니다! 싫다는 놈들 억지로 끌고 다니지 마시고, 어디 가둬놓고 뛰어서 다니더라도 보고 싶은 것들 다 보고 오세요. 부모는 아이들 시중들고, 여행 일정 짜고, 음식 대령하랴, 정보 찾으랴, 얼마나 힘듭니까! 물론 여유 있는 감상은 못하겠지만, 후다닥이라도, 혼자서라도 아까운 기회를 놓치지 마시고 최대한 꾀를 써서 '나라도' 많이 즐기고 오세요! 혼자 돌아다닌 기억도, 나만의 소중한 추억이 될 수 있으니까요.


세인트 폴 성당에는 <위스퍼링 갤러리>라는 곳이 있거든. 계단으로 막 올라가다가, 돔 바로 밑에 있는 난간 있던 곳 생각나지? 패딩턴에서도 나왔던. 우리도 아래로 내려다보니 무서워서 빨리 지나왔잖아.

그런데 여기 이름이 왜 '속삭이는' 갤러리 일까?

출처 : https://londonist.com/2016/05/how-does-the-whispering-gallery-at-st-paul-s-actually-work


여기에서 벽에 대고 속삭이면, 반대편에 있는 사람에게 소리가 선명하게 전달된대. 이 갤러리의 소리는 벽을 따라서 '수평 반사'방식으로 전달되는데, 원형의 돔 구조의 특이성 때문에 소리가 벽을 반사하며 전해져서 상대의 속삭임이 그대로 들리는 거래. 돔 모양의 벽의 곡면이 소리를 흩트리지 않고, 소리를 효과적으로 가둬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야. 이 성당을 설계한 크리스토퍼 렌이 수학에 조예가 깊어서 이렇게 설계를 했다는 말도 있고, 의도하지 않았지만 완공 후에 관람객들에 의해 이 음향 효과가 발견되었다는 말도 있네. 너네가 무섭다고 난리만 치지 않았다면, 우리도 반대편에서 서로 속삭여 보는 건데 말이야. 엄마는 "말 좀 들어라! 이 진상들아!!"라고 속삭였을 텐데!



이전 07화 타워브리지에서 아들이 없어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