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중독
이 그림은 반 고흐가 그린 압생트이다. 압생트는 스위스에서 유래된 술로, 함유된 알코올 도수가 45~75도에 달하는 독주이다. 향쑥에서 추출하여 만들며 투명한 잔에 담으면 엽록소 때문에 연두색을 띤다. 그래서 '녹색 요정' 혹은 '녹색 악마'라는 별칭이 있다. 압생트는 19세기 크게 유행했으며 특히 예술가들의 사랑을 받았는데, 반 고흐는 이 압상트를 즐겨마셨다고 알려진 유명인 중 대표적인 인물이다.
압생트는 저렴한 술이었다. 동생에게 경제적 지원을 받는 반 고흐가 즐겨마셨을 법하다. 압생트의 주요 성분인 투욘이 정신 착란과 환청, 환시 등을 일으킨다고 잘못 알려지면서 반 고흐가 아를 이후 보였던 정신 질환의 증상이 압생트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실제로 압생트가 이런 증상을 유발한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다. 특히 반 고흐는 압생트뿐만 아니라 브랜디나 와인도 함께 마셨기 때문에 압생트 만으로 반 고흐가 보였던 증상을 설명하기엔 역부족이다. 압생트를 마신 뒤 보이는 충동조절장애, 흥분, 환각 등을 모아서 '압생티즘'이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결국 알코올 중독의 증상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실제로 만취했을 때와 굉장히 유사하지 않은가?)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단어가 되었다.
사실 반 고흐의 경우, 압생트를 마신 것보다 술을 마신 것, 그리고 술을 많이 마신 것 자체가 문제였다. 아마도 반 고흐는 알코올 중독을 앓았던 것 같다.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도 그가 술에 의존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문구가 종종 나타난다. 반 고흐가 귀를 자르고 짧게 입원한 동안 아를의 동네 주민 80여 명이 모여 탄원서를 냈는데, 거기에는 반 고흐가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면 안 되며, 그가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신다고 비난하는 내용이 있다. 술을 도대체 마셔댔길래 동네 주민들이 반대할 정도였을까.
반 고흐가 알코올 중독을 앓았으리라 의심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그가 정신 질환을 앓았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정신질환자의 경우, 하나의 정신 질환만 앓는 경우는 드물다. 특히 양극성 장애 환자는 알코올 중독 같은 물질 사용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Frye, 2003). 두 질환이 공존하는 원인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밝혀진 바 없지만, 개인적인 경험에 미뤄봤을 때, 경조증 상태일 때는 기분이 들뜨는 증상 자체 때문에 술을 많이 마시고 우울한 상태일 때는 우울한 기분을 잊기 위해서 술을 많이 마신다. 그리고 경조증 상태이든, 우울하든, 음주는 전혀 좋은 결과를 낳지 않았다.
알코올은 양극성 장애에 치명적이다. 치료 목적으로 복용하는 리튬 등의 약물과 상호작용을 보여 부작용의 위험을 높이고 치료 효과를 떨어뜨린다. 또한 양극성 장애 환자가 술을 많이 마시는 경우, 재발이 더 잦아지며 환각이나 망상 같은 정신병적 증상이 증가하여 입원할 확률이 높아진다. 알코올 중독 같은 물질 사용 장애를 같이 앓고 있는 양극성 장애 환자의 치료가 늦어지면, (경)조증과 우울 삽화가 반복되는 주기가 더 빨라지는 급속 순환형으로 나타날 수 있으며, 이 경우 치료가 매우 어려워진다.
또한 양극성 장애와 물질 사용 장애 모두 자살 위험을 높이는 정신 질환이다. 당연히 두 질환을 함께 앓을 때 자살 위험성은 크게 오른다. 나도 그랬다. 우울 삽화를 겪을 때 술을 마시면, 스스로를 조절할 수 없어 항상 만취할 때까지 술을 마셨고, 만취하면 자제력을 잃으면서 신체 자해 등과 같은 자기 처벌적,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잦았다. 완벽주의자인 나는 목표하는 이상과 현실의 간극이 크다고 느낄 때마다, (그리고 우울 삽화는 이런 착각을 더 악화시킨다) 스스로를 혐오했고, 벌을 내리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당연히 자살 충동을 더 자주, 더 심하게 느꼈다. 반 고흐가 완벽주의자였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화가로서 성공을 간절히 바랐지만 번번이 좌절해야 했던 그도 스스로가 불만족스럽긴 매한가지 아니었을까.
반 고흐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스스로 귀를 자른 뒤부터 정신 병원에 입퇴원을 반복한다. 그가 입원했던 19세기에는 양극성 장애나 알코올 중독에 대해서 제대로 된 진단을 받을 수도, 치료를 받을 수도 없었다. 최초의 향정신성 의약품인 클로로프로마진은 1950년에야 나왔으니까. 입원 기간 동안 그는 당시 항경련제로 알려진 칼슘 브로마이드를 투약받거나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수치료(hydrotherapy)를 받았는데, 이는 그가 앓고 있는 질환에 대한 치료 효과가 밝혀지지 않은 방법에 불과했다. 사실 입원 기간 동안 그가 받을 수 있었던 최선의 치료는 의도치 않았지만 알코올로부터의 차단이었을 것이다.
그림에 나 사진을 완전히 던져버린 채 작업을 하다가, 습작을 완성하면 비로소 깨어난다. 작품 속에 있던 비바람이 계속해서 휘몰아칠 때면, 잠시 취하기 위해 한 잔 마시곤 한다. 그것은 미련과 후회 앞에서 미쳐버리는 것과 같다.
1888년 7월, 반 고흐에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참고 문헌>
대한우울조울병학회. <양극성 장애> 제3판. 서울: 시그마프레스. 2019.
Frye MA, Altshuler LL, McElroy SL, Suppes T, Keck PE, Denicoff K, et al. Gender differences in prevalence, risk, and clinical correlates of alcoholism comorbidity in bipolar disorder. Am J Psychiatry 2003;160:883-889.
반 고흐,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서울: 위즈덤하우스,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