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자르다

자기 징벌적 자해

by 경조울

반 고흐는 자살하기 훨씬 전부터 잦은 비자살성 자해를 보였다. 비자살성 자해는 죽으려는 의도가 없다는 점에서 자살 시도와는 다르며,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치명적이지 않은 수준의 자기 파괴로 나타난다. 왜 자해를 하는지는 아직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긴장이나 불안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완화하는 방법의 일종으로 쓰이기도 한다. 비록 전혀 건강한 방식은 아니지만 말이다.


반 고흐는 청년기부터 자해를 했다. 정식 목사가 되기 위한 신학 공부를 시작한 뒤 라틴어 학습에 어려움을 겪었고, 공부가 안되면 몽둥이로 자신을 구타하거나 집 밖 찬 바닥에서 맨몸으로 취침하는 자학 행동을 보였다. 전도사로 일하던 시절에는 벨기에 남부 탄광 지대에서 광부들과 함께 지내며, 비참한 생활을 하는 광부들과 지나치게 자신을 동일시하여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거지 같은 생활을 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아를에서 식이량을 극도로 줄였던 것과 마찬가지의 자해 행위로 보인다. 또한 본격적으로 화가가 되기 위한 공부를 시작한 뒤, 사촌 스트리커에게 반하여 일방적으로 사랑을 고백했으나 거절당하고 등잔불에 손을 집어넣는 자해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이영식, 2021).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고갱이 떠난다고 선언한 뒤 귀를 자른 일이다. 1888년 12월 23일, 고갱과 심한 말다툼을 벌인 뒤, 반 고흐는 왼쪽 귓불의 아래쪽을 잘라 수건에 싼 뒤 라셀이라는 창녀에게 건네준다. "이것을 잘 보관해 달라"는 말까지 덧붙이면서. 수건을 펼쳐본 라셀이 놀라 경찰에 신고하였고, 반 고흐는 집으로 찾아온 경찰에 의해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 뒤에는 잘 알다시피, 고갱이 도망치듯이 반 고흐를 떠났다.


Vincent_van_Gogh_-_Self-portrait_with_bandaged_ear_(1889,_Courtauld_Institute).jpg 빈센트 반 고흐 <귀에 붕대를 한 자화상>, 1889, 유화, 51×45cm, 개인소장


반 고흐가 왜 자해를 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실제로 환자들 중에서도 본인이 왜 자해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미루어 멋대로 추측해보자면, 반 고흐도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본인의 불안과 좌절을 해소하는 방법을 찾은 게 아니었을까, 싶다. 내가 기분이 나쁘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때릴 수는 없는 일이다. 자해는 나에게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부정적인 감정을 폭발시켜 분출시키는 방법이었다. 분출의 방향이 타인을 향하면 폭력이고, 스스로를 향하면 자해일 뿐이다.

나는 주로 술에 취해서 자해를 했다. 입 안의 여린 점막을 이로 씹어서 죄다 뜯어 놓거나 끊임없이 손톱을 물어뜯었다. 실수인 척 유리잔을 깨뜨린 뒤 베어 벌어진 상처를 소독하지도 않고 흐르는 피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도 있었다. 자해로 인해 쾌감을 느끼는 기전은 다양하지만, 나의 경우는 자기 처벌의 욕구를 만족시킴으로써 느끼는 만족감이 컸다. 자기 처벌은 자기혐오의 연장선상에 있다. 우울할 때 나는 나 자신을 혐오했다. 가뜩이나 낮은 자존감이 더 낮아졌다. 내가 너무 하찮은 존재여서 살아갈 가치가 없다고 느꼈다. 스스로가 전혀 자랑스럽거나 사랑스럽게 여겨지지 않았다.

우울할 때는 이런 자해가, 자기 처벌이 마약처럼 달콤했다. 자해가 나에게 주는 신체적 고통은 죄책감과 자괴감을 덜어주었고, 불안과 스트레스를 분출하게 해 주었다. 자해를 통해 순간적으로 감정을 폭발시키고 나면, 정서적으로 한 고비를 넘겼다는 안도감에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다른 설명도 가능하다. 반 고흐가 정말 경계성 인격장애를 앓던 '관종'이었다면, 자해를 통해 주변인들의 관심을 끌으려 했을 가능성도 있다. 아를에서의 자해에 대해서는 다양한 가설이 있지만, 테오가 결혼을 앞뒀다는 사실을 안 뒤에 반 고흐는 외로움을 더 생생하게 느꼈고, 그런 상황에서 고갱마저 자신을 떠난다는 사실에 큰 불안을 느꼈을 것이다. 즉, 테오가 자신에게 더 관심을 쏟게 하고 싶었거나, 어떻게든 고갱을 붙잡고 싶어서 귀를 잘랐을 수도 있다.

또한 이런 행동은 청년기부터 반복된 자해로 '자해를 하면 주변의 관심을 얻을 수 있다'는 반복 학습의 결과일 수도 있다. 자해를 하는 환자들은 인정하지 않으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바라는 마음에서 무의식적으로 자해를 하게 된다. 특히 반 고흐처럼 괴팍한 성격 때문에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 경우, 무관심과 외로움에 지쳐 타인의 애정을 갈구했을 것이다. 자해를 통해서라도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면, 그 관심을 '사랑받고 있다'라고 잘못 해석하고 채워지지 않는 애정 결핍을 채우기 위해서 자해를 반복하는 것이다.


이 쯤되면 반 고흐가 짠하다 못해 진절머리가 날 만하다. 반 고흐의 그림을 정말 사랑하는 '찐 팬'이 이 정도인데 다른 사람들은 오죽할까. 양극성 장애의 우울 삽화 중에 조절하지 못할 정도로 술을 마시고 자해를 한 뒤, 다음 날 아침 스스로에게 느꼈던 감정과 비슷하다. 자해는 일시적으로 자기 징벌의 욕구를 만족시켜 주지만, 결국 더 심한 자기혐오로 귀결되고 자해를 반복하는 악순환을 낳는다. 반 고흐도 그랬을까? 적어도 나는 그랬다.


<참고 문헌>

이영식. (2021). 현대 정신의학에서 바라본 반 고흐의 정신세계와 정신질환에 대한 고찰. 신경정신의학, 60(2), 97-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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