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의 노랑

황시증

by 경조울

반 고흐의 작품 중, <밤의 카페테라스>를 가장 사랑한다. 파아란 밤하늘에 별들이 반짝이고, 깊은 밤이지만 카페의 노랑 조명만큼은 환하게 빛난다. 조명의 빛이 미치지 않는 밤의 거리는 어둠이 가라앉아 차분하고 정적이지만, 한 캔버스 안에서도 카페만큼은 한낮의 태양이 작열하듯 밝고 환하며, 담소를 즐기는 이들도 살아 숨 쉬는 듯 활기차고 생동적이다. 어둠이 내려앉은 짙은 파랑과 불타오르는 노랑의 보색 대비, 이처럼 반 고흐의 노랑은 파랑과 함께 있을 때 더욱 빛을 발한다.


빈센트 반 고흐, <밤의 카페테라스>, 1888, 유화, 65×90cm, 크뢸러 뮐러 미술관, 오테를로, 네덜란드


반 고흐는 크롬 옐로 물감을 무척 좋아했다. <해바라기>, <고흐의 방> 등 반 고흐 그림에 '전매특허'처럼 등장하는, 작열하는 듯 강렬한 노란색이 바로 크롬 옐로이다. 노랑은 인류가 처음으로 사용한 색 중 하나이자, 자존감이 떨어진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갖게 하는 색으로 알려져 있다. 어쩌면 반 고흐는 빈 캔버스에 노란색을 몇 번이나 덧칠하면서 잃었던 자존감을 쌓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반 고흐의 독특한 화풍을 안과적 질환 때문이라고 보는 주장이 제기되어 왔다. 화가의 시력장애가 그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모네의 경우, 백내장으로 인해 말년에는 거의 실명에 이르렀고, 질병으로 인한 시력 변화는 수련 연작 시리즈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백내장을 앓지 않았던 초기에는 수련이 매우 섬세하게 표현되었지만, 백내장이 악화되면서 붓 터치가 점차 거칠고 대담해지며, 말기에는 수련의 윤곽이 뚜렷하지 않고 선의 구분이 흐릿해지며, 색도 뭉개진 듯이 표현된다.

반 고흐가 앓았다고 의심되는 질환 중 가장 유명한 것은 황시증이다. 황시증은 빛깔이 변색되어 보이는 질병의 한 일종으로, 사물들이 노랗게 보이는 것을 의미한다. 즉, 반 고흐가 황시증을 앓았고, 그렇기에 그림을 노랗게 그렸다는 것이다. 반 고흐가 그린 <가셰 박사의 초상화>를 보면, 가셰 박사 앞에 디지털리스 약초가 놓여 있다. 현재는 심장 박동을 강하게 해주는 강심제 '디곡신'의 원료가 되는 약제지만, 당시에는 구토나 발작, 우울증 등 다양한 질환에 쓰였다. 디지털리스의 부작용 중 하나가 바로 황시증이다. 디지털리스를 과잉 투약하면 마치 노란색 안경을 낀 것처럼 세상이 노랗게 보인다.

과다 복용 시 역시 황시증을 일으키는 산토닌 성분이 들어간 압생트를 고흐가 즐겨 마셨다는 설도 있다. 값싼 술이었던 압생트는 당시 가난한 작가나 화가들에게 각광받는 술로서, 19세기에 크게 유행했다. 압생트를 즐겨 마시던 것으로 알려진 예술가들로는 반 고흐 말고도 어니스트 헤밍웨이, 파블로 피카소, 오사크 와이드 등이 있다. 시인 랭보는 녹색 빛을 띠는 압생트를 두고 푸른빛이 도는 술이 가져다주는 취기야 말로 가장 우아하고 하늘하늘한 옷이라 예찬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정말 고흐는 디지털리스와 압생트 때문에 황시증을 앓았던 걸까?


처음 이 '썰'을 들었을 때, 나는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작가의 가장 사랑하는 작품이 그의 의도가 아니라 단지 안과 질환 때문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의료 전문가 중에서 나 같은 분노를 느끼는 팬들이 적지 않았는지, 반 고흐가 황시증을 앓았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이 쏟아져 나왔다. 우선 가셰의 초상화에 디지털리스가 나왔다고 해서 그 약을 반드시 반 고흐가 처방받았다는 결정적인 근거가 없다. 디지털리스가 장미나 백합처럼 흔하게 장식으로 쓰이는 꽃도 아니고, 단지 '의사'라는 직종을 나타내기 위해서 주치의의 초상에 그려 넣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빈센트 반 고흐, <가셰 박사의 초>, 1890, 유화, 67×56cm, 오르세 미술관, 파리, 프랑스


그 밖에도 안과학계의 반박은 꽤나 체계적이다. <밤의 카페테라스> 등 노랑이 대표적인 작품은 반 고흐에게 정신 질환이 발병하기 전인 1888년 여름, 아를 시절에 가장 많았다는 점에서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다. 또한 약물 중독에 의한 황시증이 생기면 흰색과 노란색을 구분하기 어렵고 청색에 대한 지각이 낮아지는데, 반 고흐의 그림에는 그런 의심이 무색할 정도로 강렬한 파랑과 노랑의 대조가 나타난다.


현대에 이르러 반 고흐가 급성 납중독에 의한 핵 백내장이나, 중심성 망막염을 앓았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반 고흐는 흙, 페인트 등을 섭취하는 이식증이 있었고, 그림 작업 중 물감이 묻은 붓을 입에 대는 습관이 있기도 했다. 실제로 동생 테오에게 1889년 보낸 편지를 보면, 물감 튜브를 빨아먹다가 발작이 진정되면 평소처럼 그림을 그리곤 했다는 문장이 있다.

크롬 옐로는 크롬과 납으로 만든 물감이다. 반 고흐가 납이 주성분인 크롬 옐로를 즐겨 사용하면서 물감을 먹는 이식증을 보였다면, 충분히 납 성분에 중독되어 위와 같은 질환을 앓았을 수 있고, 이 때문에 광륜이 보이거나(밤의 카페) 소용돌이치듯 상이 왜곡될 수 있다(별이 빛나는 밤).

물론 이에 대한 반박도 있다. 반 고흐가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릴 때, 안과적 질환 때문에 밤하늘이 회오리치듯 보인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하늘에 소용돌이 은하가 떠 있었고, 이는 아마추어 전문가들도 쉽게 관측할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Benson, 2014). 즉, 반 고흐가 그림을 그릴 당시 소용돌이 은하를 목격할 기회가 있었으며, 이를 토대로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다.


반 고흐 유족의 동의를 얻어 반 고흐의 유골에 저장된 납의 농도를 확인하면 납 중독 여부를 알 수는 있겠지만, 실제로 그렇게까지 진행하고 싶어 할 학자가 있을까, 혹은 유족이 과연 동의해 줄 것인가 회의적이다. 또한 어느 쪽 주장이든 반 고흐의 독특한 화풍을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인상주의 작가인 반 고흐는, 단순히 보이는 대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의도와 고뇌를 투영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실제와 똑같이 그리고 색칠하는 것은 화가가 추구해야 하는 일이 아니며, 그렇게 만들어낸 것은 그림이 아니라 사진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반 고흐는 진심을 다해 노랑의 생명력을 사랑했고, 소용돌이치는 듯한 별의 움직임을 직접 보았든, 혹은 상상했든, 자신의 고뇌를 담아 표현했다고 믿는다. 단순히 안과 질환 때문에 시대를 감동시키는 걸작이 탄생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끔 그런 상상을 한다. 후세에 이르러 사람들이 본인의 그림이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병 때문에 그렇게 그려진 것이라고 이러쿵저러쿵하는 걸 알게 되면 반 고흐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괴팍하다고 알려졌던 그의 성격을 고려했을 때, 오베르쉬르우아즈의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 고함을 지를지도 모른다.


인물화나 풍경화에서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감상적이고 우울한 것이 아니라 뿌리 깊은 고뇌다. (중략) 나의 모든 것을 바쳐서 그런 경지에 이르고 싶다.
1882년 7월 반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참고 문헌>

Arnold WN, Loftus LS. Xanthopsia and van Gogh's yellow palette. Eye (Lond). 1991;5 ( Pt 5):503-510.

Michael Benson. <Cosmigraphics>. Newyork: Abrams Books.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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