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별이 빛나는 밤에

by 경조울

의과대학 동기들 중에는 유독 미술관 관람을 좋아하는, 그림을 사랑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나는 친구들을 통해 새로운 화가나 작품을 알게 되기도 하고, 함께 전시회를 가기도 했다. 때로는 '미술알못'들끼리 모여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역사상 가장 뛰어난 화가라며 뜨거운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친구 중에 한 명이 피카소를 유독 좋아했는데, 그는 피카소야말로 전무후무한 천재라고 했다. 나는 그의 말에 어느 정도 동의했다. 피카소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두각을 나타냈고, 이미 14살의 나이에 옛 거장들의 구도나 색채 등을 완벽하게 구사했다. 92살의 나이로 사망하기 직전까지 왕성하게 활동을 펼쳤고, 예술 세계가 워낙 방대하여 초기, 중기, 후기로 나뉠 정도이다. 나는 특히 피카소의 초기라고 불리는 청색 시대 작품을 좋아했다. 이 시기에 피카소는 매춘부나 거지, 광대와 같이 사회 하층민을 대상으로 그림을 그렸고, 주로 검푸른 색이나 짙은 청록색의 색조를 사용했다. 특유의 음울함 때문에 당시에는 인기가 없었으나 현재는 그의 작품 중 가장 인기가 많은 작품에 속한다. 피카소의 청색 시대 작품은 반 고흐의 파랑을 떠올리게 만든다. 우울한 색조 속에 묻어나는 모델을 향한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유독 인상적이다.

하지만 전무후무한 천재라니, 그 사실만큼은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반 고흐가 그린 그림을 본 적은 있냐며 유치하게 반박을 시도했을 때, 친구는 코웃음을 치며 살아생전, 그리고 사망한 뒤 피카소가 받은 인정을 보라고 했다. 우습게도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반 고흐를 떠난 고갱에게 혼자 미워하는 마음을 품었던 것처럼, 피카소를 향해서는 질투와 시기를 느꼈다.


피카소는 정말이지 '확신의 천재'라서, 자기가 어떤 예술품을 만들어도 사람들이 열광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야말로 "일단 유명해져라, 똥을 싸도 박수를 쳐줄 것이다"의 표본 같은 존재였다. 유년기부터 노년기까지 화풍을 몇 번이나 바꾸었고, 그림에 멈추지 않고 조각이나 도예 등에도 거침없이 도전했다. 시도 쓰고, 무대 의상이나 연출을 맡기도 했다. 그리고 매번 성공했다. 얄미울 정도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평생 업으로 삼고, 그 일의 결과물을 전 세계 사람들이 사랑해 준다면, 정말이지 성공한 인생이 아닌가. 반 고흐의 팬이 아닌 한 명의 사람으로서도, 피카소의 삶이 참 부럽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화가 반 고흐가 살아생전 피카소만큼 인정받지 못했다는 사실은 늘 씁쓸함을 남긴다. 반 고흐의 팬이라면 누구나 영국 드라마 <닥터 후>의 반 고흐 에피소드를 보면서 눈물 지었을 것이다. 반 고흐가 그린 그림 속에 이상한 괴물이 있는 것 발견한 주인공은 그가 살던 시기로 타임머신을 타고 떠난다. 우여곡절 끝에 반 고흐와 주인공은 괴물을 물리치고 들판에 누워 별을 바라본다. 현대로 돌아오기 전, 반 고흐가 마음에 걸렸던 주인공은 반 고흐를 현대에 데려와 오르세 미술관으로 향한다. 자신의 그림이 사방에 걸린 방에 반 고흐가 도착하고, 수많은 관객이 삼삼오오 모여 그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주인공이 도슨트에게 반 고흐는 어떤 작가였냐고 묻자, 그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가장 위대하며, 가장 사랑받는 작가라고 말한다. 그리고 대화를 엿들은 반 고흐가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이 에피소드의 결말은 워낙 유명해서, 드라마 자체는 모르더라도 결말만 편집한 장면을 본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아마 반 고흐와 그의 팬들에게 건넬 수 있는 최고의 위로가 아니었을까 싶다. 반 고흐가 오늘날 본인이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화가 중 한 명이자, 그의 그림이 가장 사랑받는 그림이라는 걸 알면 얼마나 행복해했을까.


극 중에서 도슨트는 반 고흐가 찢어질 듯한 아픔을 예술적으로 승화시켰고, 그렇기에 가장 위대한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나도 그의 말에 동의한다. 동시에 친구에게 반박하고 싶다. 삶의 고통을 예술로 치환하는 원동력이 피카소에게도 있었느냐고. 승화는 방어기제 중 하나로, 공격적인 욕구를 사회적인 가치를 위한 방향으로 전환시키는, 성숙한 방법이다. 사무치는 아픔을 누구도 다치치 않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 정의는 익숙하지 않더라도 예술가가 본인의 좌절이나 슬픔을 작품으로 승화했다는 예시는 어디선가 읽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반 고흐의 작품이야말로 승화의 결정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그가 정신 질환을 앓기 시작한 뒤 그린 그림을 보면, 지난한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이토록 위대한 작품을, 그것도 한 점에 그치지 않고 수십 점, 수백 점을 남긴 화가의 투혼에, 그 숭고함에 절로 고개 숙이게 된다.

반 고흐를 처음 만나게 해 주었던 <별이 빛나는 밤>은 그가 생 레미의 정신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그린 작품이다. 생 레미에서는 반 고흐가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물리적 자유를 허용해 주지 않았고, 실제로 주어진 시간과 공간이 제한적이었다. 반 고흐는 병실 창문 너머 본 풍경에 본인의 상상력을 더해 <별이 빛나는 밤에>를 그렸다. 특히 왼쪽의 사이프러스 나무는 반 고흐가 상상에 기초하여 그려 넣은 것이다. 그 시절 테오에게 반 고흐가 보냈던 편지를 보면 그가 발작에 시달리면서 괴로워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병마와 싸우면서도 이토록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다니. 다시 한번 반 고흐에게 깊은 존경심을 느꼈다.

반 고흐에게 그림이란 단순히 업이 아니라 승화, 그리고 자아실현의 도구였다. 개인에게 잠재되어 있는 역량을 스스로 찾아내어 그것을 발휘하고 목적한 이상을 실현하는 것. 자아실현의 경지에 다다른 이는 자신이 아닌 어떤 것을 가장하거나 어떤 부분을 숨기고 가면의 뒤로 숨지 않는다. 반 고흐는 테오에게 쓴 편지에서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오롯이 그림에 내던졌다. 덕분에 우리는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자신의 모든 감정과 삶을 바라보는 자세를 그의 그림을 통해 생생히 접할 수 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내가 좋아했던 반 고흐의 작품을 다시 찾아보면서, 그리고 그림을 보면서 내가 느꼈던 감정과 생각을 복기하는 작업은 무척 즐거웠다. 맞다, 그래서 내가 이 작품을 좋아했었지. 그때 이런 생각을 했었지. 어릴 적 좋아했던 장난감을 다시 마주한 듯이, 추억 속에 푹 빠진 채 그림을 감상하기도 했다. 누군가 반 고흐를 '광기의 화가'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나는 언제나 그를 가장 천재적인 화가이자, 떠올릴 때마다 치유받을 수 있는 작품을 남긴 화가로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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