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가 나는 밀밭

자살

by 경조울

<까마귀가 나는 밀밭>은 반 고흐가 자살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으로 잘못 알려져 있다. 그가 이 그림을 그리고 그 자리에서 바로 자살했다는 것이다. 뚝 끊겨버린 중간의 길과 주변을 나는 검은 까마귀 떼들, 그 위로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 검푸른 하늘, 이 그림은 마치 자살을 앞둔 화가의 다잉메시지처럼 음산한 분위기를 풍긴다. 정말이라면 극적인 결말이긴 하지만 사실 이를 뒷받침할 증거는 없다. 연대기에 따르면 그는 이 그림 뒤에도 일곱 작품을 더 그렸다고 한다.


빈센트 반 고흐, <까마귀가 나는 밀밭>, 1890, 유화, 103X50cm, 반 고흐 미술관, 파리, 프랑스

누구나 잘 알듯이 1890년 7월, 반 고흐는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만약 반 고흐가 정말로 양극성 장애를 앓았더라면 자살 사고는 오랜 벗처럼 그의 곁을 지켰을 것이다. 실제로 양극성 장애 환자들은 훨씬 더 자주, 구체적으로, 그리고 강하게 자살 사고를 느낀다. 양극성 장애 환자 중 20-60%가 살면서 한 번 이상 자살을 시도하며, 그 중 4-19%가 결국 자살로 삶을 마감한다. 거기에 알코올 같은 물질 사용 장애가 동반된 경우 자살 위험은 훨씬 더 높아진다(Pompili, 2009). 반 고흐는 당시 양극성 장애에 대한 제대로 된 진단이나 치료를 받지 못했고, 알코올 중독까지 함께 앓았으니 자살 위험이 훨씬 더 높았을 것이다.


자살 사고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삶의 역경이 있을 때, 도저히 버티기 힘들 때'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상상보다 자살 사고는 더 차분하게, 집요하게, 그리고 항상 존재한다. 언제든 불타오를 수 있게 쌓아놓은 마른 장작 더미처럼. 자살을 생각만 하지 않고 계획하고 급기야 시도를 하기 위한 매 단계에 스트레스, 죄책감, 수치심, 무기력 따위가 단지 성냥개비 역할을 할 뿐이다. 그리고 자살 사고가 빈번해 질 수록, 그로 인한 공포와 자책도 점점 사그라든다. 나는 이 과정을 '마음의 면역력'이 떨어지는 단계라고 표현한다. 처음엔 자살을 떠올리는 게 두렵고 끔찍하게 느껴지지만, 언젠가부터 '죽고 싶다'는 생각이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다.

양극성 장애로 진단 받은 뒤,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 전까지 약 10년 동안, 자살 사고는 미친 개처럼 내 뒤를 쫒았다. 일상 속 사소한 사건에서도 불쑥 자살 충동을 느꼈다. 친구와 싸웠을 때, 시험을 망쳤을 때...... 반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자살에 대한 언급이 종종 보인다. 동생이 걱정할 까봐 직접적인 언급을 꺼렸을 상황까지 고려한다면, 그도 빈번한 자살 사고에 시달렸을 것이다.


너의 사랑이 없었다면 그들은 아무런 가책 없이 나를 자살로 몰아넣었을 테고, 내가 비겁하든 아니든 결국 나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겠지.
1889년 4월, 반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양극성 장애의 우울 삽화를 겪을 때는 하루에도 열 두 번씩 자살을 생각했기에 자살 사고를 안고 사는 것이, 그러면서도 주변에 자살 사고를 들키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지 누구보다 잘 안다. 양 발목에 무거운 추를 매단 채로 물에 가라 앉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쳐야 하는 기분. 그렇기에 자살 사고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자살하지 말라'는 조언은 그저 공허한 울림일 뿐이다. 자살 사고를 이겨내기 위해 환자들은 현생의 고통을 매일, 아니 매 순간 이겨내야 한다.

자살하기 직전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반 고흐는 우울함, 무가치함, 죄책감을 호소하며 그림을 그릴 때 '붓이 손가락에서 떨어져 내릴 것만 같다'라고 적었다. 아마 그 무렵 반 고흐는 더 잦은 자살 사고와 계획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눈을 뜨고, 그림 도구를 챙겨 밀밭으로 나가고, 천근만근 무거운 붓을 들어 붓질을 하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까마귀가 나는 밀밭>은 반 고흐의 작품 중에서도 꽤 큰 작품이다. 평소 반 고흐의 빠른 작업 속도를 감안하더라도, 이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상당한 시간관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 작품에도 반 고흐가 사랑했던 파랑과 노랑이 여실한 대조를 보여주지만, 비슷한 색채 대조를 활용한 <밤의 카페테라스>나 <별이 빛나는 밤에>에서 느낄 수 있는 서정성이나 아름다움이 아닌 섬뜩함, 비장함, 음울함이 느껴진다.

이 그림을 볼 때마다 나는 작품의 위대함에 감탄하기 보다 가슴이 아프다. 비록 이 작품이 반 고흐가 그린 마지막 작품은 아니지만 그가 자살할 무렵 그린 작품 중 하나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반복되는 자살 사고와 계획 속에서도 살아 남기 위해 분투했던 화가의 노력이 붓질의 결마다 느껴지는 듯 해서 속이 아려온다.



<참고 문헌>

Pompili M, Rihmer Z, Innamorati M, Lester D, Girardi P, Tatarelli R. Assessment and treatment of suicide risk in bipolar disorders. Expert Rev Neurother. 2009;9(1):109-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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