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퇴근길이었다. 언제나처럼 퇴근 메시지를 아내에게 보내고, 버스에 몸을 실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아내와 주고받는 카톡 메시지와 전화 한 통이 그날의 피곤함을 씻어주는 작은 위로가 되곤 했다. 어제도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었다. 집 근처에 도착하면 아내와 저녁 식사 약속을 하고, 함께 하루의 이야기를 나누리라 생각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그 순간,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속 장소에 도착했지만 아내가 보이지 않았다. 메시지도 읽지 않고,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렇게 열 번 넘게 전화를 걸었지만, 여전히 응답은 없었다. 머릿속이 갑자기 하얘지며 나도 모르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아내가 이렇게까지 연락이 닿지 않는 일은 한 번도 없었기에 불안감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설마, 무슨 일이라도 있나…"
평소에는 아내가 조금 늦어도 별일 아니겠거니 했을 테지만, 어제는 달랐다. 아내의 부재는 나를 초조함과 두려움 속으로 몰아넣었다. 혹시 내가 모르는, 말 못 할 힘든 일이 있었던 건 아닐까? 내가 무심코 한 말이 아내에게 상처가 되었던 건 아닐까? 한 가지, 두 가지, 별별 걱정과 불안이 마음속에 파도를 쳤다.
결국 참다못해 112에 전화를 걸고, 경찰에 신고를 했다.
“저… 아내가 1시간째 연락이 닿지 않아서요.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닐까 너무 걱정됩니다." 좀처럼 믿기 힘든 무슨 일이 언제 어느 때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그런 세상에 살고 있기에.
말을 마치고서도 믿기지 않았다. 내가 아내를 경찰에 신고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경찰은 위치가 확인되더라도 나에게 알려줄 수는 없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집으로 가야 하나, 아니면 혹시 모르니 지인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나 망설였다. 그때 불현듯 집 근처에 살고 있는 아내의 지인 동생 내외가 생각났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걸어 부탁했다.
“미안한데, 혹시 시간 괜찮으면 우리 집에 들러서 현관문 좀 두드려줄 수 있을까? 아내가 혹시 집에 있을지도 모르니까… 실낱같은 희망으로"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10분이 한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별의별 상상과 불안이 꼬리를 물며 가슴 한구석을 마구 찌르고 있었다. 그사이 신고를 받고 출동하는 경찰까지 확인 전화가 왔다.
"평소에 아내분이 우울증이나 정신질환이 있는 건 아닌가요? 그런 건 없어요. 평소에도 워낙 밝은 쾌활한 사람이라서.. 대부분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가까운 사이인데도 서로를 모르시는 경우가 있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여쭤본 거예요.." 무슨 일인가! 정말 내게 얘기하지 못한 지병이라도 있는 건가? 먹먹하고 눈앞이 흐려질 즈음,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형님! 형수님 집에 계세요. 피곤하셨는지 휴대폰을 무음으로 해놓고 주무시고 계셨나 봐요."
그 순간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한숨이 나오는 동시에 긴장이 풀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아내는 아무 일 없이 집에 있었고, 나의 불안과 걱정은 그저 헛된 것이었다. 곧바로 경찰에 전화를 걸어 번거롭게 해 드려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지인에게도 고맙다고 인사를 전했다.
천당과 지옥을 오갔던 1시간, 그 속에서 나는 아내의 존재가 내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금 깨달았다.
약속장소에 나온 아내에게 이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아내는 미안한 마음에 나를 꼭 안아주며 속삭였다.
"미안해. 나도 내가 이렇게까지 잠들 줄 몰랐어. 당신이 그렇게 걱정했을 줄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애틋함과 사랑이 뒤섞인 감정이 내 안을 가득 채웠다. 나도 모르게 아내를 더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괜찮으면 됐어.. 당신이 없는 세상은 정말 상상할 수가 없어. 오늘처럼… 다시는 이런 일 없었으면 좋겠네."
어제의 1시간은 나에게 너무나도 큰 깨달음을 남겨주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가 당연한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지만, 그것은 언제나 우리의 삶을 지탱해 주는 가장 큰 기둥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그 1시간이 없었다면 나는 이 소중한 깨달음을 놓칠 뻔했다.
“사랑은 늘 곁에 있어서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한순간의 부재가 그 존재의 소중함을 더 깊이 새기게 한다. 사랑하는 이의 존재를 매일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