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처음으로 한기를 느꼈다. 옷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은 어느새 결이 달라져 있었다. 얇은 외투를 거뜬히 뚫고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가는 차가운 바람. 그제야 깨달았다. 겨울이 왔구나. 그저 계절의 흐름이라기보다는, 나를 부드럽지만 분명하게 흔드는 겨울바람이었다.
목을 옷깃 속으로 잔뜩 움츠리고, 손은 자연스럽게 호주머니로 향한다. 발걸음은 이내 종종걸음으로 바뀐다. 마치 겨울이 나에게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몸과 마음이 그 추위 속에서 자연스럽게 변한다. 얼어붙는 공기에선 날카로움이 느껴졌지만, 묘하게도 그 바람은 따뜻한 말 한마디를 속삭이는 것처럼 다가왔다. "이제 겨울이다. 네가 누릴 수 있는 계절의 또 다른 얼굴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홈플러스에 들렀다. 매장 한쪽에 진열된 장갑이 눈길을 끌었다. 손끝의 차가움을 더는 무시할 수 없었으니, 장갑을 집어 들었다. 보드라운 감촉이 손끝에 닿자 이 겨울을 잘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기 전, 아내는 묵혀 두었던 솜이불을 꺼내 주었다. 이불의 묵직한 온기가 몸을 감싸자, 마음도 차분히 겨울 속으로 스며들었다.
오늘 하루를 돌아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도 사람답게 살면 좋겠다고. 겨울이 자신의 색깔을 이렇게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처럼, 사람도 자신답게 살아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겨울은 숨기거나 억지로 꾸미지 않는다. 차가운 바람은 그저 차갑고, 얼어붙은 공기는 그저 있는 그대로의 겨울을 말할 뿐이다. 그것이 불편할 때도 있지만, 결국 우리는 그 진심 어린 겨울의 태도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속에서 온기를 찾는다.
사람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가식 없이,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자신을 드러내며 살아가는 것. 때로는 차갑게 느껴질지라도, 그 진솔함 속에서 따뜻함이 깃들 수 있는 것. 그렇게 살아갈 때 비로소 우리는 사람답게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나의 겨울이 나를 겨울답게 대하듯, 나도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며 살아가고 싶다.
“사람답게 산다는 건, 자신의 계절을 솔직히 드러내는 것이다. 바람이 차갑다면 차가운 대로, 온기가 있다면 온기 있는 대로, 그 진심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