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야
30년 가까이 함께한 친구였다. 대학 시절을 함께 보냈고, 웃고 떠들며 시간을 공유했던 소중한 인연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조용히 단체 카톡방을 나가버렸다.
특별한 말도, 이유도 없었다. 단지 이름 하나가 사라진 자리만이 남았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그는 우리 삶에서 천천히 희미해졌다.
처음엔 궁금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누구와의 다툼이었을까, 아니면 개인적인 사정이었을까. 하지만 아무도 속 시원히 답을 해주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궁금증도 무뎌졌다. 안부를 묻지도 않았고, 그의 소식을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마치 존재 자체가 우리의 기억에서 서서히 밀려나는 것처럼.
그러던 며칠 전, 그가 불현듯 임시 카톡방에 나타났다. "친구들 새해 복 많이 받고, 건강들 해라" 짧은 인사였다. 하지만 그 인사에 대한 반응은 없었다. 단 한 명도 대답하지 않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벽이 가로막힌 듯, 모두가 조용했다. 한때는 서로의 소소한 일상까지 나누며 웃었던 사이였는데, 이제는 그 짧은 인사조차도 낯설게 느껴지는 관계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때 문득 깨달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단순히 물리적인 거리가 아니라, 마음의 거리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한번 벌어진 마음의 틈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어지고, 무관심 속에서 더욱 단단한 벽이 되어간다.
그 친구가 왜 떠났는지, 왜 다시 돌아온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그가 사라졌던 시간 동안 그를 잊어버렸고, 그 역시 우리를 잊어갔을 것이다.
관계란 참 묘하다. 가까웠던 사람이 어느 순간 멀어지기도 하고, 오랫동안 연락이 없던 사람이 문득 그리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사이의 거리를 어떻게 좁혀가느냐다.
오랜 친구였다는 이유만으로,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는 안일한 기대만으로 관계가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서로가 서로를 궁금해하고, 안부를 묻고, 조금이라도 마음을 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관계는 천천히 사라지고, 기억 속에서 잊힌다.
우리는 어쩌면 너무 쉽게 누군가를 잊고, 너무 쉽게 거리감을 둔다. 하지만 한번 멀어진 관계를 다시 되돌리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나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는, 작은 용기마저도 쉽게 꺼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 친구의 새해 인사가, 혹시라도 다시 다가오려는 작은 용기였다면, 그 용기를 너무 가볍게 흘려보낸 것은 아닐까.
"친구를 얻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친구가 되는 것이다." <랄프 왈도 에머슨>
관계는 자연스럽게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가 함께 노력해야 하는 것, 그리고 가끔은 사라진 자리로 다시 돌아와 용기를 내어야 하는 것. 우리가 그 용기를 외면하지 않기를, 그리고 멀어진 관계들이 다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