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의 유산
대한민국에서 ‘군대’는 남자라면 누구나 지나야 할 일종의 의례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본 사람은 많지 않다. 특히 장교로 22년간 복무한 사람의 입장에서 군대를 말하는 경우는 더욱 드물다. 무엇을 말해도 자랑처럼 들릴 수 있고, 어떤 감정도 오해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말하지 않았다.
나는 22년 동안 현장에서 수많은 작전과 회의, 보고와 결정을 경험했다. 수백, 수천 명의 부하들을 이끌었고, 수많은 선택의 순간 앞에서 책임을 지며 살아왔다. 하지만 그런 시간 속에서 내가 쌓아 올린 건 ‘영광의 연대기’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 돌아보면, 내게 남은 건 실패의 기록들이고, 부끄러운 순간들이다. 그 실패들이 나를 리더로 만들었고, 인간으로 단련시켰다.
군 조직에서 장교란, 단순히 명령을 내리는 존재가 아니다. 상관의 지시를 절대적으로 이행해야 하며, 동시에 부하들을 지키고 설득해야 한다. 말단 병사와 부사관, 상급 지휘관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일은 때로는 전투보다 복잡하고, 보고 하나가 작전보다 무거운 책임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잘해도 티 나지 않고, 실수하면 모든 책임을 홀로 짊어져야 하는 자리. 장교는 리더이기 전에, 일상의 방패이자 타인의 실드가 되어야 하는 존재였다.
나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병사에게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신뢰를 무너뜨렸고, 부사관과의 판단 차이 하나가 조직 전체의 동력을 흐트러뜨렸다. 상관의 눈치를 보느라 그릇된 판단을 하고, 부하에게 불합리한 명령을 내린 뒤 죄책감에 시달린 날도 있었다. 이러한 시간들은 전역 후에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이야기를 기록하고자 한다. 군대를 갔다 온 사람은 많지만, 장교로서의 삶은 분명 다른 궤도를 가진다. 그 차이를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꼈기에, 이제는 그것을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겪은 실수와 고난의 순간들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위안이 될 수 있고, 앞으로의 리더십을 고민하는 사람에게 하나의 거울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리더십을 훈련장에서만 배우지 않았다. 병사의 눈빛에서, 부사관의 짧은 한숨에서, 그리고 상관의 말 없는 압박 속에서 배웠다. 결국 ‘좋은 장교’란, 실수를 감추지 않고 책임지는 사람이며, 조직보다 사람을 먼저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늦게나마 깨달았다.
이제야 말할 수 있다. 나는 완벽한 장교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부족함을 통해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발버둥 쳤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군대가 내게 남긴 진짜 유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