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보다 과정
산책길을 걷다 우연히 멈춰 선다. 데크 사이를 비집고 올라온 야생초의 연둣빛 잎 하나. 평범하게 지나칠 수도 있었던 이 작은 생명체는, 그 존재만으로 나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자리에, 아무도 환호해주지 않는 그 자리에서, 조용히 그리고 담대하게 햇살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나는 데크 아래를 들여다본다. 어림잡아 2미터 가까이 되는 그 아래에서, 식물은 지주의 어둡고 습한 공간을 따라 줄기를 올리고 올려 끝끝내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는 단 한 잎만, 그렇게 바깥세상과 마주한다. 그것은 어쩌면 숨어있을 수도 있었고, 편안하게 그늘 아래 머무를 수도 있었던 운명이었다.
그런데도 이 야생초는 어째서 굳이 자신을 드러냈을까. 무엇이 그로 하여금 위험을 무릅쓰고 햇살 한 줌을 선택하게 했을까. 저 위를 걷는 수많은 발걸음이 언제 그 연약한 잎을 짓밟을지 모르는 곳에서 말이다.
나는 그 조그마한 잎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우리 삶도 이와 같지 않은가. 대부분의 시간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라고, 버티는 시간이다. 타인의 눈에 띄지 않지만, 그 어둠 속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향해 나아간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우리 안의 한 가지 용기가 빛을 향해 팔을 뻗는다.
햇살은 언제나 위에 있다. 하지만 그 햇살을 만지기 위해선, 불편함과 불확실함을 뚫고 올라서야 한다.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어쩌면 생명을 건 모험일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길을 택한다. 어쩌면 그것이 ‘살아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 잎을 보며 문득 내 삶의 어떤 순간들이 겹쳐졌다. 조용히 준비하던 시간들, 말없이 기다리던 날들, 그리고 용기 내어 세상에 나를 드러냈던 그 몇몇의 장면들. 떨리면서도 단단했던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 이 자리에 선 나도 있는 것이다.
삶은 매 순간 선택의 연속이다. 그늘에 머물 것인가, 햇살을 향해 나설 것인가. 때론 숨어 있는 것이 안전하고, 남들 눈에 띄지 않는 것이 편안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음속 어딘가, 진짜 나를 향한 열망이 있다면,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한 잎을 내밀게 된다. 위험을 알면서도, 상처를 감수하면서도.
그 초록 잎은 누군가에게는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적어도 나는 그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다시금 스스로를 돌아본다. 지금 나는 어디에 머물러 있는가. 나는 내 안의 빛을 따라 나아가고 있는가.
언제 밟힐지 모르는 자리에 서 있으면서도, 그 잎은 떨지 않았다. 오히려 햇살을 온전히 머금으며 잎맥 하나하나를 더 푸르게 펼치고 있었다. 그 당당함이, 그 조용한 용기가, 내게 작은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된다.
삶은 결과보다, 그 과정 속에 담긴 용기가 더 깊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언젠가 누군가가 나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더라도, 햇살을 향해 내민 그 단 한 잎의 순간을 스스로 기억할 수 있다면, 그건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이 아닐까.
한 줄 생각 : 햇살을 향해 용기 내어 내민 단 한 잎, 그건 누군가의 삶 전체보다 더 위대한 순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