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
집 앞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문득 발길을 멈추게 되는 순간이 있다. 처음 이 길을 만들 때 사람들은 분명 고민했을 것이다. 자연과 인간의 편의를 어떻게 조화롭게 이어 줄 수 있을까, 그 질문 앞에서 쉽게 나무를 베어내지 않았다. 대신 나무를 품었다.
데크 위로 둥글게, 혹은 조심스레 자리를 내어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그대로 살려 둔 길. 나무를 중심에 두고 길이 비켜가는 그 모습에서 자연을 함부로 넘지 않으려는 세심한 배려가 읽힌다.
길을 만드는 건 쉽다. 효율을 앞세워 반듯하게 뻗고, 장애물을 없애면 된다. 하지만 이 길은 그러지 않았다. 나무를 없애는 대신, 나무를 살아 있게 두었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조금 돌아가더라도 존재하는 것들을 존중한 길.
나무는 묵묵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아무 말 없이 제 자리를 지켜왔다. 그 오랜 시간을 베어내지 않고 길이 나무를 존중했기에 이곳엔 자연의 숨결이 그대로 살아 있다.
그 덕분에 숲길을 걷는 기분은 조금 특별하다. 인공의 구조물 위를 걷고 있지만, 나무 사이로 스미는 햇살과 발끝에 스치는 바람결이 마치 숲을 본래의 모습 그대로 거니는 듯 느끼게 한다.
걸음을 멈춰 나무를 바라본다. 굵어진 나이테만큼이나 이 자리에 머문 시간이 느껴진다. 아마 이 나무는 내가 없던 시간에도 이곳에 있었고, 내가 떠난 후에도 이곳을 지킬 것이다.
그 생각을 하면, 숲길을 걷는 나의 발걸음도 조금 더 조심스러워진다. 오래된 것, 살아 있는 것 앞에서 조금은 천천히, 조금은 작게 숨을 쉬게 된다.
어쩌면 삶도 이 길과 닮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속도를 내기 위해 베어내기보다는, 돌아가더라도 함께 살아가는 길. 눈에 보이는 편리함보다 조용히 지켜낸 자연스러움을 존중하는 마음.
이 길은 사람을 위한 길이지만, 사람만을 위한 길은 아니다. 사람과 나무, 자연과 인공이 서로를 존중하며 만들어낸 작은 공존의 길.
그 길 위를 걷는 동안, 나는 오래도록 자연과 함께 걷는 기분을 잊지 않는다. 그래서 이 길은 단순한 산책로가 아니라, 내게 작은 배움의 길이기도 하다.
서로를 위해 조금씩 비켜선 자리, 자연이 숨 쉬고, 사람이 걸어가는 그 길. 나는 오늘도 그 길을 따라 조금 더 다정한 마음으로 걷는다.
한 줄 생각 : 존중이 깃든 길은, 오래도록 걷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