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나
아침 햇살이 데크 위로 내려앉으면, 내 앞에 먼저 길게 누운 존재가 있다. 바로 내 그림자다.
말 한마디 건네지 않지만, 그것은 분명히 나보다 먼저 앞서 나아간다. 한 걸음, 두 걸음. 그림자는 때로 당당하게 걷고, 씩씩하게 발을 옮긴다. 마치 오늘 하루를 향한 출사표처럼. 그 선명한 실루엣은 나를 이끌고, 그 너머의 오늘을 향해 의기양양하게 나아가는 듯 보인다.
그림자는 언제나 나를 닮았지만, 아침의 그것은 이상하게도 더 씩씩해 보인다. 나보다 자신감이 넘치고, 나보다 활기가 넘친다. 아직 마르지 않은 에너지와 남김 없는 의지로 오늘을 시작하는 내 마음을 대변해 주는 듯하다.
하지만 하루가 끝나갈 무렵, 그림자는 어느새 뒤로 물러난다. 해가 기울고 내 그림자가 내 등 뒤로 떨어질 때, 나는 뒤따라오는 그 모습을 문득 돌아보게 된다.
아침의 그림자와는 사뭇 다르다. 어깨가 축 처졌고, 발걸음은 무겁다. 어떤 날엔 내 그림자가 나보다 더 힘겨워 보인다. 말없이 나를 따라오면서도, “오늘도 고생 많았다”라고 조용히 속삭이는 듯하다. 하루의 무게는 말없이 그 그림자에게도 내려앉는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그림자는 단지 빛이 만든 실루엣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함께 살아낸 또 하나의 나라는 것을.
누군가는 그림자는 늘 나를 따라오는 존재라 말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때로는 나보다 앞서가고, 때로는 나보다 더 힘겹게 뒤따른다는 걸. 그림자는 나의 의지일 수도 있고, 나의 고단함일 수도 있으며, 내가 꾹 눌러 담은 감정일 수도 있다.
하루의 시작엔 앞서 달리는 의욕의 상징이었다가, 하루의 끝엔 겨우 나를 따라오는 지친 마음이 된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을 함께 걷는 존재. 조용하지만 늘 곁에 있는 친구처럼, 말없이 오늘을 살아낸 나의 모습을 대신 보여준다.
나는 그 그림자를 보며 문득 되묻는다. “오늘도 괜찮았니?” 그림자는 대답 없이, 그저 나의 걸음을 따라 걷는다. 말은 없지만, 오늘을 함께 견딘 그 모습만으로 이미 충분하다.
하루가 끝날 때면 나는 그림자에게도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내 모습 그대로를 닮은, 그 하루를 함께 걸은 존재에게. 비록 그림자는 빛에 따라 길이가 달라지고 방향이 달라지지만, 언제나 나의 일부로 함께 존재한다.
내일 아침이면 또다시 그림자는 나보다 먼저 길 위에 서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그와 함께 하루를 살아낼 것이다. 앞서 가든, 뒤따르든, 언제나 나와 함께 걷는 그림자처럼, 나도 스스로를 그렇게 지켜나갈 것이다.
한 줄 생각 : 그림자는 오늘을 견딘 또 하나의 나, 조용히 함께 걸어주는 내 삶의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