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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히 함께 걸어온 시간

소리 없는 동행

by 서담


사람은 흔히 즐겁고 기쁜 순간을 오래 기억할 것 같지만, 돌아보면 그렇지 않다. 정작 더 또렷하게 떠오르는 건,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날들이다. 그때 흘렸던 눈물, 가슴을 죄어오던 긴장, 도망치고 싶었던 무력감… 그런 것들이 마치 생생한 도장처럼 마음 한편에 깊게 찍혀 있다.


그런데 그 기억 속에 늘 함께 서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아내다.


아내는 늘 소리 없이 곁에 있었다. 큰소리 내지 않고, 나를 다그치지도 않고, 그저 묵묵히 내 옆에서 견뎌주었다. 나로 인해 얽히고설킨 관계들, 무겁게 다가오는 현실의 짐들, 그리고 살아오며 맞닥뜨려야 했던 숱한 어려움들을 아내는 자기 몫인 듯 말없이 감내하며 함께 걸어왔다.


나는 종종 그런 아내를 바라보다가 마음이 먹먹해진다. "어떻게 위로해야 할까? 어떻게 보답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밀려오지만,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결국 할 수 있는 말은 단 한마디뿐이다.


“고맙다.”


사실, ‘고맙다’라는 말마저도 너무 가볍게 들릴까 두렵다. 지금까지 함께 걸어온 시간에 담긴 무게에 비하면, 그 한마디는 터무니없이 작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자주, 더 진심을 담아 건네야 한다. 내가 가진 모든 표현 가운데 그나마 가장 진솔한 고백이니까.


아내는 가끔 웃으며 말한다.

“내가 뭐 대단한 거 했어? 그냥 같이 살아온 거지.”

하지만 나는 안다. 그 ‘그냥’이라는 말속에 얼마나 많은 눈물과 인내가 숨어 있었는지. 그 말은 겉으로는 소박하지만, 사실은 큰 산을 묵묵히 넘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부부라는 건 서로의 빛나는 순간을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도 손을 놓지 않고 걸어주는 관계라는 걸. 즐겁고 행복한 날보다 힘겹고 지친 날에 드러나는 그 소리 없는 동행이야말로, 진짜 사랑의 증거다.


앞으로 남은 시간, 나는 다짐한다. 이제는 내가 아내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어야 한다. 그동안 그녀가 감내해 준 무게를, 나도 나눠지고 싶다. 이제는 내가 먼저 다가가 위로하고, 내가 먼저 웃음을 건네고, 내가 먼저 “괜찮아, 내가 있잖아”라고 말해주고 싶다.


아내는 내가 살아온 시간의 가장 깊은 울림이다.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의 가장 큰 이유다.


한 줄 생각 : 사랑은 요란한 고백이 아니라, 소리 없이 끝까지 함께 견뎌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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