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위에 피어난 꽃
요즘 세상에서 바느질을 한다는 것은 조금 낯선 광경이 되었다. 옷에 구멍이 나거나 해지면 대부분은 그냥 버려버린다. 빠른 세상 속에서 새것으로 갈아입는 게 더 쉽고 간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집에는 여전히 오래된 풍경이 살아 있다. 작은 바늘과 실, 그리고 아내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세심한 손길이 그것이다.
아내는 옷소매에 작은 실밥이 풀려나온 걸 그냥 두지 않는다. 자칫 흠집처럼 보일 수 있는 그곳을 그녀는 오히려 새로운 포인트로 살려낸다. 손끝으로 곱게 실을 꿰고, 바늘이 오가며 만들어내는 작은 문양은 마치 꽃처럼 피어난다. 버려질 뻔한 옷이 아내의 손끝에서 앳지 있는 새 옷처럼 다시 태어난다.
“당신, 이거 그냥 버리려고 했지?”
아내는 작은 미소를 띠며 대답한다.
“솔직히, 좀 그랬지. 그런데 이거, 새 옷보다 더 멋있네. 오히려 더 값져 보여.”
아내는 웃으며 다시 손끝을 바쁘게 움직인다. 지갑의 해진 부분도, 모자의 풀린 실밥도, 장갑의 작은 구멍도 그녀에게는 결점이 아니라 기회다. 그 위에 작은 꽃이나 패턴을 수놓으면, 그 물건은 더 이상 낡은 것이 아니라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작품이 된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는 아내라는 사람이 가진 힘을 다시 느낀다. 아내는 단순히 바느질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품고 다시 살아나게 한다. 낡고 해진 것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일. 그것은 비단옷과 물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 가정이 그랬고, 나 역시 그랬다.
힘들었던 순간, 지쳐 쓰러지고 싶었던 날들에도 아내는 늘 곁에서 작은 위로를 건넸다. 그것은 대단한 말이나 거창한 행동이 아니었다. 소박하지만 다정한 손길, 잔잔하지만 깊은 위로의 눈빛이었다. 덕분에 나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마치 풀린 실밥이 다시 매만져져 제 기능을 되찾듯이, 나도 아내 덕분에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
“당신은 참 신기해. 어떻게 그렇게 뭐든 손에 닿기만 하면 달라지지?”
내 말에 아내는 가볍게 웃으며 대답한다.
“그냥… 버리기 아까워서. 고쳐 쓸 수 있는데 버리는 게 더 아깝잖아.”
아내의 그 말이 오래 남았다. 버려지는 게 아까워서, 손끝으로 시간을 들여 다시 살려내는 마음. 그것은 옷을 대하는 태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삶을 대하는 태도이기도 했다. 누군가에게는 하찮아 보일 수 있는 것들을, 아내는 결코 하찮게 여기지 않는다. 고쳐 쓰고, 살려내고, 새롭게 빛나게 한다.
그녀의 바느질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사랑의 표현이고, 삶을 대하는 철학이다. 그래서 나는 종종 바느질로 피어난 작은 꽃문양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우리 삶도 이렇게 덧댐과 수선 속에서 더 단단해지고, 더 아름다워지는 게 아닐까. 흠집 없는 완벽한 삶보다, 상처 위에 새겨진 꽃이 더 빛나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아내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작은 꽃을 보며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 꽃은 단순히 옷을 살려낸 것이 아니라, 나에게 삶의 태도를 일깨워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 꽃들을 볼 때마다 새삼 깨닫는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오늘도 아내는 작은 실밥을 정리하며 내게 묻는다.
“이거, 예뻐 보여?”
나는 웃으며 대답한다.
“예쁘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꽃이네.”
그 꽃은 단순한 바느질이 아니라, 아내의 마음이었고, 우리 삶의 또 다른 빛이었다.
한 줄 생각 : 사랑은 완벽한 새것에서 피어나는 게 아니라, 해진 곳을 정성껏 꿰매는 손끝에서 자란다